처음 당신을 만난 후 계절 덕분에 온도가 두 달이 지나서야 영상 언저리에 고개를 빼꼼하고 치켜올렸을 때에 말입니다. 덕분에 손발이 시려도 떨어져 나갈 것 같지 않았을 때에 나는 그 두달 육십 하고 며칠의 시간동안 단 한순간도 당신을 잊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매번 당신을 생각하고 상상하며 꿈속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거리를 당신과 함께 걷는 꿈을 꾸곤 했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지난 첫사랑과의 기억을 잠시 잊은 채 당신에게만 몰두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그 마음은 한겨울에도 한풀도 꺾이지 않는 끈끈한 매듭과도 같은 감정이었습니다. 아마 그때에 나는 필사적으로 당신에게 구애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당신과 한번이라도 더 만나고 싶어서 있던 스케줄도 다음으로 미루고 없던 스케줄을 당신과의 만남으로 채우며 생전 채워본 적이 없었던 달력을 당신과의 만남과 기억들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꽤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공유하던 날과 당신이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던 날 그리고 당신과 약속을 잡은 날짜 , 외식을 했던 날 등등등 당신은 모를 나만의 추억들을 일기장처럼 잘 정돈해서 언젠가는 보여줘야지 하고 꾸미고 있었습니다. 의외로 당신에게 들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의외로 당신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남에서 당신은 분명 당돌하고 기가 센 모습으로 나를 반겨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으나 그날에 당신은 굉장히 붉어진 볼을 하고 있었고 눈도 마주치지 못했으며 손을 아이처럼 떨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첫 만남과는 다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당신의 정돈되지 못한 마음에 한참을 웃었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마치 고양이를 마주한 생쥐의 모습이었습니다. 눈을 치켜 올리며 무언가를 시도할 때마다 조언을 구하고 동의를 구했습니다. 마치 당신의 행동들은 쌍둥이 동생 혹은 언니가 대신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당신은 차라리 쌍둥이었다면 쌍둥이를 대신 보냈을 정도로 이상하게 오늘은 떨린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말에 나도 같이 가만히 서서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참 간만에 느껴보는 부끄럽고 뜨거운 민낯이었습니다. 우리는 광주 타워를 올랐습니다. 그리 높은 높이는 아니었지만 광주 중심가에 유일하게 우뚝 서있는 산이었기에 광주 시내 외에 풍경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당신은 연신 목도리로 코를 가리며 기침을 했습니다. 그런 당신을 걱정하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후에 우리는 다시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점심이 살짝 지난 오후에 우리는 함께 적당히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러 차를 한잔 마시고 두달 언저리 동안 쌓여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내 온도는 외부 온도를 훌쩍 뛰어 추위에 경직되었던 폐가 사르르 녹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드름이 녹듯이 이마와 목 줄기에서 땀이 흘렀습니다. 당신은 고목이 겉껍질을 벗듯이 겉 외투를 벗더니 화장을 고쳐야겠다며 배시시 웃곤 니트를 곱게 접어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먼저 사과합니다. 두터운 겉옷에 가려진 가녀린 목과 쇄골과 여리디 여린 어깨에 나는 마음을 뺏겨버렸습니다. 순간 첫날 당신이 내 시야 앞에 두드리던 핑거 스냅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떨리는 숨을 내쉬었습니다. 혼절 할 것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당신은 몹시 아름답군요. " 그리곤 혼자 바보같이 웃었습니다. 당신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리곤 공손이 마시던 차를 두 손으로 작게 집곤 싱그럽게 웃었지요.

사랑은 어쩌면 그렇게 특별한 행위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새가 밀겨울을 훑어 흩어진 밀알 속에서 행복을 찾듯 내내 당신을 그리며 겨울을 보낸 나와 같이 어쩌면 당신도 이 긴 겨울 속을 나를 그리며 보냈을 것을 상상을 하니,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소박한 행위 속에서 각자의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자리 중에도 들었습니다.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는 동안에도 당신의 이야기는 신기하리 만큼 잘들어왔습니다. 내가 아마 당신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당신을 그리는 동안에도 당신은 나에게 주문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주문은 사랑이었겠지요. 오늘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내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