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 URL: https://humoruniv.com/novel34741 URL 복사 |
박효신 - 동경
-----------------
지겹도록 듣던 엄마의 잔소리를 오늘도 들었다
직장도 멀쩡하고 얼굴도 멀쩡한데 연애는 왜 멀쩡하게 못하냔다
서른이 가까운데 데리고오긴 커녕 사귀는 여자 하나 없냐고 구박이다
아니 엄마 그래도 나도 나이가 있는데 한번도 없었겠어? 썸은 있었다!
...아니 진짜로
그리고 얼굴이 멀쩡해보이는건 엄마눈에만 그런걸지도 몰라
-
뭐 나라고 연애감정이 없는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미치게 하고싶지
맨날 커뮤나 단톡에서 xx나 xx 외쳐대는데 왜 없겠나
아 연애말하는거다
-
그래도 궁색한 변명을 해보자면 맘에 드는 여자가 없어서 그렇다
얼씨구 주제에 뭘 따지냐고 물을수도 있는 발언이긴 한데,
거기엔 또 내 거창한 사연이 있다
아니, 진짜라니까?
여자가 만날일이 없다거나 아는 여자사람이 없다거나 그래서가 절대 아니다
딴건 몰라도 직장은 멀쩡하다 그래서 꽤 소개는 자주 들어온다.
...결말이 안좋아서 그렇지.
-
거창한 사연이라고 했지만 그냥 흔하디 흔한 짝사랑얘기다
주절주절 혼자 넋두리하는거니 상관없겠지
내 대학시절 때인데
난 그떄 왜 그리 재수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는지 모르겠다
하긴 현역때나 재수때나 성적이 그대로였으니 그럴만도 한가
그래도 용케 그 성적에 이름있는 대학을 붙었었다
당시에 난 꽤나 내 잘난맛에 사는놈이었고
내가 재수같은걸 했다는걸 좀 쪽팔려했다
그래서 그런지 입학 오티때도 동기들의 그 설레고 풋풋한 분위기는 안중에도 없었다
근데 사실 그건 얼굴이 되야 설레고 풋풋한거지 뭐 맞잖아?
못생긴놈들은 칙칙하고 푹푹하지
여하튼 그날, 그 오티날에
3월 봄
예년보다 일찍 벚꽃이 폈던 그날에
그 녀석을 만났다.
-
이거 참,
글이라도 막 화려하고 느낌있게 표현하고 싶긴한데
내 글솜씨도 그렇고
사실 운명처럼 첫눈에 반하고 그런건 아니었다
녀석은 오히려 내가 좀 싫어하는 타입에 가까웠지
기센여자 특유의 여우같이 올라간 눈꼬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그나마 괜찮았던 귀엽게 웃던 입꼬리
나에게 다가오던 녀석의 발소리
예압
아 이거 의도치않게 라임 맞추다보니 중독되네
-
오티가 있던 그 강의실에서
녀석은 구석자리에 멍하니 있던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상하게 그때 기억은 꽤 길어 지금도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분명 오티날이라서 나도 나름 꾸민다고 꾸몄을텐데 말이지
왜 내가 입은옷은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녀석이 입은옷은 전부 다 기억이 나는거지
츄리닝바지에 두툼한 흰색 후트티를 입고
마치 집앞 편의점을 나온듯한 아디다스 슬리퍼
거기에 웃기게도 두꺼운 수면양말까지
그리고 그걸 보고 웃던 나
왜 기억나지?
알수가없네.
-
사실 뭐 녀석이 내 타입이든 아니든간에
얼굴부터가 대선배는 아니었다
역시나 알고보니 맞선임
아니
뭐라하더라?
맞학번..? 맞선배?
하여튼 재수한 나랑은 동갑이었다
하긴 키부터도 애 같았거든 내 가슴팍 언저리였으니
그래서 그런지 다가와서 장난치는 녀석이랑 좀 편하게 대화했었다
의외로 과에서 내 소식이 알려졌었던 것 같았던게
내 이름을 알고있길래 놀랐다
재수생이라서 그랬었나?
혹시 잘생겨서는..
응 나도 아닌거 안다
-
녀석은 갓 들어온 신입생에게도 자연스레 장난칠만큼 요즘말로 인싸였는데
그 꼬맹이같던게 은근히 인기가 많았다
물론 이성적으론 아니었고
남자선배들에게도 귀여움을 받긴 했지만
여자 선후배들한테 귀여운 언니동생으로 유독 인기가 많았다
이건 잡소리긴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본인의 친누나 두명이 둘다 키170 전후이고
둘다 내가 극혐한다
녀석이 다르게 보인건
그래서일까
-
대학때는 난 꽤나 여기저기 불려다녔다
아 오해가 있을수 있는데
난 아싸기질이 남다르다
혼자 겜하고 밥먹고 하는걸 선호하는데
이상하게 남자 동기（동생）들이 날 맨날 끌고다녔다
그러다보니 계속 노는무리에 끼게 되었는데
다행히 축복받은 부모님의 유전자로 술자리에서 선배들한테 져본적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선배들의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았다
...대부분 남자선배들이었다
차라리 잘생긴 얼굴이란 유전자를 줬으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엄마..?
-
녀석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번 신입생 1학기 종강 날
흔히들 논다는 선후배들끼리 노래방을 갔었다
꽤나 많은 인원이었는데
선배들의 이쁨（술）을 받았던 나와
귀여움을 받았던 녀석은 두 부류의 인싸 선배들의 가운데 앉게 되었다
한쪽은 노래가 메인이고
내쪽은 술이 메인이었다. 하.
그러다보니 서로 정반대에 앉게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였던것 같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소맥의 향연속에서
이쁘게 휘어지는 눈으로 웃으며 얘기하던 녀석이 보였는데
하필 내 앞에 있어서 계속 내 눈을 잡아갔고
5:5로 탄 극악의 비율의 소맥잔을 내리면 또 다시 녀석이 보였다
그리고 난 그때 너의 눈이 여우가 아닌
아기고양이 같다고 생각했다
-
그렇게 한창 술을 먹으면서도 중간중간 녀석이 선배들이랑 하는 얘기가 조금씩 들렸다
학생회였던 녀석이라 대부분은 과행사에 관련된 말인데다
워낙 시끄러워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었는데
그 중에 꽂히듯이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녀석이 웃으면서 가수중에 박효신을 좋아한다고,
그의 동경이란 곡을 좋아한다는 말.
다들 알겠지만 아싸들은 노래방과는 거리가 멀다
그 중 나같은 진성 겜돌이 아싸들은 더욱 더 멀었는데
그날부터 대학로 코인노래방은 나에게서 매일 2천원을 뜯어갔다
남자들은 알겠지만 박효신 그새긴 얼굴도 잘생긴데다 목소리도 잘생겼다
심지어 목소리톤으로 곡이 쉬운것같은 블러핑까지 주는, 말하자면 남자들의 주적같은 놈이다
x놈
내가 그거 따라하겠다고 안해본짓이 없었다
간신히 좀 비슷해졌나 싶었을때 창법 변하는거보고 찾아갈까 고민 많이했다
이제는 꽤나 따라왔는데,
이제는 제일 자신있는것 중 하나가 노래인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는지 녀석에게는 들려주지 못했다
난 오늘도 집앞 코인노래방에서 그 곡을 불렀다
-
녀석은 우리과를, 전공을 굉장히 좋아했다
내가 알기론 꽤 성적이 좋았음에도 전공에 맞춰서 우리학교로 왔다고 들었는데
학교에 맞춰서 전공을 선택한 나랑은 정반대였다
사실 반쯤은 와서 전과나 복수전공을 생각했었는데
녀석이 쪼르르와서 본인의 꿈을 알려주겠다고 신나서 떠들던 그때였는지
아니면 전공이 너무 좋아서 같은일 하는 사람을 만나고싶다고 말하던 그떄였던지
어느순간 나도 이 일이 좋아져버렸고
녀석 떄문에
1학년때 2점대였던 내 학점이
4점대로 졸업해서 결국 이쪽으로 취업까지 해버렸다
사실 1학년땐 미치는줄 알았다 아니 뭔질 알아야 공부라도 하지
관심도 없던거라 전공수업 들어갈때마다 하나도 못알아들어서
전공 기초책 사들고 고3때로 돌아간듯이 매일 독서실 다녔었다
그해는 유일하게 내 롤티어가 플레 밑으로 떨어진해였다
-
녀석은 학교생활에도 꽤나 열심히였다
개냥이같은 녀석이 실실웃어대며 학생회니 동아리니 여기저기 잘 어울렸는데
개냥이라서 그런지 전공을 절반정도 개판치더라
교수님하고는 어울리기 싫었나보다
그 날도 그랬다
그 해 겨울
난 여전히 자취방에서 전공기초책과 치열한 사투를 이어가고 있었고
녀석은 그 날도 학생회모임에서 거하게 한잔했던 날
유난히 춥던 그 밤에
걸려온 전화로 덜덜떨리는 녀석의 목소리를 듣고 급하게 뛰쳐나갔었다
뜨근하게 올려놓은 보일러덕에 밖의 날씨는 생각치 못한채 반바지에 후드티 하나를 걸친채로.
도착해보니 녀석은 만취한채 어떤 빌라앞에 기대있었고
무슨일이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녀석은 씨익 웃으며 한마디 했다
'추워서'
지금 다시 생각해도 화나네 이 녀석을 진짜 확
후.
그제야 안도하며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겨울도 반바지를 입고 뛰어온 날 새하얗게 웃으며 반겼다
내 얼굴색도 만취한 녀석의 색과 별로 다르지않았다
그때
녀석의 웃음이 조금만 덜 이뻤으면 되돌아갔을텐데
내 어깨로 기대는 녀석이 덜 약해보였으면 그런짓은 안했을텐데
난 반팔티 위에 하나 달랑 걸쳐놓은 후드티도 녀석에게 덮어주고 등에 업었다
또 등신같은 나란놈은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내 자취방을 내비두고
한참 거리가 있는 녀석의 집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등에 업힌 녀석은 꽤나 가벼워서
걷다보니 그리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건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군대가기 전 휴학신청하러 간 날 과사무실.
내가 들고있는 신청서를 우연히 보고
녀석은 좀 놀란듯 싶었다
나도 놀랐었다
다른것보다
난 그떄 빡빡이였으니까
...참 타이밍 안맞네
근데
한가지 아직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는게 있다
그때
왜 녀석은 사무실로 들어가는 날 붙잡았던걸까
왜 같이 좀 더 다니자며 말하고,
왜 날 바라보며 이쁘게 웃어주던 걸까
왜 하필 그 날 그 시간에 내 앞에 와서
좀 더 나아진 사람으로 너의 앞에 서고 싶었던 나를
흔들리게 한걸까
그래, 아니었겠지 맞아
좋은 녀석이니까
그저 사람을 좋아하고
웃는게 해맑고 이쁠뿐인 녀석이니까
녀석에겐 그저 아무 의미없는 흔한 인사.
그러니 나도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홀로 지워내왔지만
그건 연필이 아닌 볼펜이었나보다
칠해진 검은 잉크는 잘 지워지질 않았다
-
그게 벌써 7~8년 전 얘기다
내 짝사랑은 참 징하게도 오래가는 것 같다
아침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할때도,
퇴근해서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마지못해 받는 소개팅에서도
너가 떠오른다
소은아
요즘 잘지내는거 같더라
승진했다는 소식 들었어 축하한다
이번 사업아이템 괜찮더라
난 잘 지내고있어
알지? 나 능력 좋은거
차도 한대 뽑았어 SUV로
니가 멍뭉이 닮았다고 좋아하던 그걸로
후-
날이 춥다
이렇게 노트북앞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보면 말이야
문득 궁금해질때가 있어
너는
아직 날 기억하는지
내 이름은 생각나는지
가끔씩이라도 떠오르는지.
너로 인해 만들어진 수많은 내가
수없이 많은 너를 그리고 있다는걸 아는지
만약에 말야
언젠가
내가 걸어가는 길위에 너가 있다면
너가 펼쳐놓은 길 끝에서 널 만난다면
그때의 내가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
 |
|
 |
|
|
110
0
0
7,986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게시물에 상관없는 답글이나 추천유도성 답글을 달지 마세요.
스포일러성 답글이 신고되거나 발견되면 이유불문 삭제 혹은 정학처리 됩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 CTRL+C 로 복사하고 CTRL+V 로 붙여넣으세요!
대표이사 이정민 |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이정민 | 민원, 운영자메일, 관리안내 | 통신판매업신고 제 2010-서울강남-01011호
Since 1998.8.24, Copyright (c) 2025 humoruniv.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