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잡는 일이란
작은 등에 부끄러움을 업는 것이다
길을 걷다 문득, 스쳐간 감정을 잊지 않으려
허겁지겁 휘갈긴 내 작은 등짝이란
다시 적어내려고 보면 왜 이리도 부끄러운지

그땐 꽤 괜찮았는데
머리를 긁적이다가 버린 문장이 수 십개
못난 등짝을 타고 태어나
이름조차 모른 채 버려진
말뭉치 핏덩이들이 애처롭다.
좋은 등짝이라면 어화둥둥이라도 했으랴
적어도 보자기를 싼 등에는 업혀봤으리라

또 뒤쳐지는 하루
스스로 돌아봄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록
네 덩치가 커져가는건 왜일까
너희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펜을 잡는 것 조차 부끄러워 곱추가 될 즘
너는 겉잡 수 없이 불어난 벽처럼
별 볼 일 없는 날 막아서고 말겠지

펜 마저 놓고 말면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야심한 밤에 부끄러운 글을 적는다.
내세울 것 없는 거지 꼴로 세상을 헤집더라도
등짝 하나는 우뚝 펴고 살리라.
널 다시 바라봄에 부끄러움이 없을 날
마침내 나는 너를 품에 안고 말리라
보잘 것 없는 등짝에 적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