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왔습니다 왔구요....으헤헤헤

이제 종착지가 눈에 보이는군요...

마지막 두 편에서 과거의 묻혀진 사실들이 모두 드러납니다.

이번엔 대부분의 복선이 여느 소설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숨겨져 있었던 거 같습니다.

보통 범인의 정체에 대한 작은 실마리들이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 등을 통해 암시되는 게

우리에게 익숙한 복선의 형태일 텐데요.

이 글은 주인공이 무언가를 홀로 생각한다거나 대화 내용 등을 통해

이 소설의 메세지가 무엇이고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소설 줄거리도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기보다는 어떤 결말이 나올지를

그리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주로 궁금하게 하고 있지요^^

그럼 이런 궁금증들을 풀러 가보시죠..

솔직히 예상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시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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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둠의 문（cafe.daum.net/blacknovel）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mypre



"아악!"

일어서던 승현이 다시한번 피바다 속에 뒹굴었다. 주희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비명을 질렀다. 승현의 온몸은 이제 피바다 속에서 그의 일부가 된 듯 붉게 변해 이미 죽어간 경찰들의 시체보다 더욱 참혹한 모습이었다.

안에서 이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 통에도 대체 밖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인지 집밖에서 대기중인 경찰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12명의 경관들이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가는 동안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밖에서는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것도...저놈의 짓인가...'

승현은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힘들게 일으켰다.
유재훈은 완전히 형체를 갖추어 천천히 자신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양손 가위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옆에 있는 주희가 덜덜 떨며 승현의 피투성이 옷깃을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거실은 지독히도 넓었고 현관문은 아직도 몇 미터 너머에 있었지만 이제 괴물은 바로 몇발짝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승현은 절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발 아래에 뭔가 있었다. 방금 떨어져서 현관문 쪽으로 날아간 골프채였다.

'이거...이거면...그래...또한번 부서져 봐랏!'

승현의 머릿속으로 며칠 전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승현은 몸을 숙여 골프채를 집어들고 다시 몸을 굴리면서 유재훈에게 달려들었다. 옆에 서있던 주희의 비명소리와 승현의 기합 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이야앗! 죽엇!"

"꺄악!"

"큭큭..."

낮은 자세로 승현은 눈을 꽉 감은 채 골프채로 유재훈의 배 부분을 가격했다. 부웅 소리를 내며 골프채가 휘둘렸다. 그렇지만 골프채에 어떤 것도 부딪치지 않았다. 눈을 뜨는 승현에게 두걸음 정도 뒤로 떨어져서 비웃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재훈의 악마같은 모습이 보였다.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보다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의 승현은 궁지에 몰린 쥐였다. 이번에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승현은 다시한번 기합을 내지르며 골프채를 높이 쳐들고 유재훈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케케..."

쾅!

주희가 비명을 질렀다.

"아악! 승현씨!"

이번에도 승현은 바닥이 미끄럽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골프채를 쳐든 자세 그대로 승현은 흥건한 피가 이제는 조금씩 말라가고 있는 바닥으로 볼썽사납게 구르고 말았다. 얼굴이 정통으로 바닥에 부딪쳐 승현의 얼굴마저 이제 피로 흥건했고 안그래도 충격을 받은 머리에 더욱 강한 충격이 가해져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으으으...으윽..."

승현은 한참동안 신음을 흘리며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앞에 유재훈의 가느다란 다리가 있었다.




28




"크크크.....드디어...."

쉰 목소리로, 그러나 사방에 퍼지는 듯한 울림을 가지고 괴물이 입을 열었다. 승현은 잠시 웬지모를 생소함을 느꼈다. 유재훈이 웃음소리 외에 뭔가 다른 말을 하는 걸 들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드디어 너희들만 남았구나..."

"...뭐..뭐라고?"

"큭큭..."

유재훈이 고개를 돌려 승현과 주희를 잡아먹을 듯 쏘아보았다. 순간 그들은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제길..뭐야...'

승현은 뒤에 있는 주희를 돌아보고 싶었으나 고개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원래...공포나...욕심이 아닌 것들로 움직이는..."

느릿느릿 유재훈이 말했다.

"인간...들은...먹을 수가...없지..."

"무슨...무슨 말이냐!"

"큭큭....김승현변호사...지금 당신 뒤에 서있는 여자가....왜...아직까지 살아있는지 아나?"

"?!"

'내 이름은 어떻게 알지?'

"크크...줄곧 널 쫓아다녔다. 니 이름도 하나 모를 줄 알았나?"

"뭐라고?"

승현은 당황했다.

"내가 세상에 등장하게 된 후로...저 여자는...죽음에 대한 공포나...김수산이란 놈의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나와...김승현변호사 당신에 대한...연민으로 움직여 왔지..."

"무슨 말이야!"

'연민이라니?'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유재훈을 향해 승현은 소리질렀다.

"그리고...네놈도...죽음에 대한 공포나...돈에 대한 욕심 따위는 없었다. 네놈은 저기 있는 주희때문에 움직였지? 주희에..대한 바보같은 사랑 말이야..."

"...."

놈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읽을 수 있는 것일까? 승현은 잠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때...그때 일은! 정말 사고였어요! 그건...그건..."

뒤에서 갑자기 주희가 소리질렀다. 유재훈이 빙글거리는 눈을 그녀에게 향했다.

"그래서...그게 어쨌단 말이냐? 주희야?"

"당신은...당신은....당신의 복수는!"

"...날...이렇게 만든 건...그 사고가 아니다. 그 사고를 있게 만든 인간들의, 그놈들의 두려움과 욕심 그 자체였단 말이다...난 돌아온 뒤에도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욕심을 향해 움직였고 날 본 뒤에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것이...그것이 바로 내 복수의 대상이었다!"

"흐흑..."

주희는 다시 흐느낄 뿐이었다. 승현은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볼썽사납게 엎어진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승현을 내려다보며 유재훈은 다시 쉰 목소리로 말했다.

"대부분의...사람들은...공포와 두려움으로 움직인다. 그런 인간들은 내가 먹기도 쉽고 조종하기도 쉽지. 문제가 되는 건 너희같은 놈들이야...나를 보고도 두려워하지도 않고...죽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고...인생을 즐겁게 해주는..욕심 따위에도 지배되지 않거든..."

승현은 유재훈이 자신에게 이따위 알 수 없는 말을 주절거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주희가 뒤에서 흐느끼며 뭔가 말했다.

"흑...죄송...죄송해요....원장님...흐흑...."

'원장님이라고?'

승현은 뒤돌아볼 수 없었지만 주희의 목소리에서 풍겨나오는 애절함, 그리고 처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원장님이라니?

"큭큭....모두...죽였으니....이제...내...복수도...여기까지다...."

"뭐라고?"

"날...이렇게...만든...놈들...을...모두 잡아먹었다....그리고 날 본 놈들도...날..이렇게...만든 것을... 내면에...갖고 있는 놈들은....모두 죽어야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천천히 잦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칠판을 긁는 듯 기분나쁘던 유재훈의 목소리가 갑자기 나직한, 그리고 장중한 목소리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승현은 당황스러웠다.

"난...너희들을...죽일..수 없다...너희들은 내 복수의 대상이..될..수 없어...내가...이렇게...되도록..만든...것을...너희는...갖고...있지..않기...때문이다..."

"흐흑...흑...."

주희의 목소리와 유재훈의 느릿느릿한 기분나쁜 목소리가 묘하게 섞여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승현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해불가능한 일들과 말들에 지독한 혼돈과 두통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승현에게 분명한 느낌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눈앞의 미이라 형상의 괴물에게서 느껴지는 무엇보다도 강한 처절함이었다. 그것이 승현의 머릿속에서 고개를 쳐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말라빠진 주름투성이의 괴물에게서 끔찍함이 아닌 어떤 애증과도 같은 처절함을 느낀다는 것은 정상적인 건 아니었지만 원래 이 괴물이 생전에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살아 있는 성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승현으로서는 당연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알고 있겠지만...나는 원래...인간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나는...인간을 사랑했고, 그들 안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사랑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참을 수 없었던 배신 이후에도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다..."

유재훈의 목소리는 이제 숙연할 정도의 기분좋고 낮은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승현은 갑자기 자신을 뒤덮고 있던 지독한 혼돈이 걷히는 것을 느꼈다.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모든 것을 알게 된 느낌이랄까?

"이제...이제...난 다시 돌아간다...김승현 변호사...내가...나를 본...당신을...죽일 수 없게 만들었던...그...주희에 대한 사랑으로...내가 이렇게...된 후에도...유일하게...사랑했던...저..아이를...지켜주길...바란다..."
순간적으로 승현의 온몸의 마비가 풀렸다.

"헉!"

신음소리를 내며 승현은 눈앞에 서있을 유재훈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모습이 며칠 전 보았던 것처럼 푸슬푸슬한 가루로 변해 가고 있었다.

푸스스스스...

땡그랑!

동시에 그의 손에 높이 들려 있던 양손가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눈부신 빛이 그의 주변을 감싸며 순간적으로 승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알 수 없는 배경과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어떤 환상이 승현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29




고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이는 한 키가 작은 아이가 여러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꽤나 질 좋고 비싸 보이는 아이의 옷이 사정없이 구겨지고 찢어져 있었다.

"아악!"

"김수산 이새끼 죽여!"

"사기꾼 종자새끼!"

"개 씨발놈아! 너네 아빠가 우리집에 뭔짓을 했는지 알어!"

아이는 정신없이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아이들에게 두들겨맞고만 있었다. 린치를 당한 지 꽤 된 듯 아이의 몸과 얼굴이 시퍼런 피멍자국과 상처들로 가득했다. 저항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듯 아이는 바닥에 엎드려 맞고만 있었다. 그때 멀리서 한 키 큰 아이가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아이는 그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너희들 뭐야! 수산아!"

"엇!"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본 여러명의 아이들은 누구의 목소리인지 확인하는 순간 줄행랑을 쳤다. 저수지에서 수영하다 쥐가 나서 익사한 성수를 비롯해 저 녀석을 건드렸다가 이상한 사고를 당해 피 본 녀석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튀어!"

어지럽혀진 운동장의 한구석에는 맞던 아이만이 신음소리를 내며 굴러다니고 있었다.

"으으으..."

"수산아! 괜찮아?"

"으..끄윽..."

키 작은 아이는 몸의 안팎에 심한 상처를 입은 듯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키 큰 아이는 잠시 쓰러진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후 중얼거렸다.

"이 불쌍한 녀석이 아버지 죄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바보같은 놈들...."

"으으으..."

"수산아...기다려...곧 괜찮아질거야..."

키 큰 아이는 키 작은 아이의 가슴에 두 손을 가만히 갖다 대더니 눈을 감았다.
키 큰 아이의 이마에 붙어 있던 큰 갈색 사마귀가 흰 빛을 내며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고통스러워하던 키 작은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평안을 되찾아갔다. 아이의 온몸에 나있는 상처들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키 작은 아이는 힘겹게 입을 열어 키 큰 아이에게 말했다.

"고마워...재훈아..."


어른이 된 키 큰 아이, 유재훈은 한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황혼이 보육원을 둘러싼 산 아래로 내릴 무렵 원장실에서 재훈은 수화기를 얼굴에 대고 누군가와 한참동안 통화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전화를 받고 있는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래..수산아...자꾸 신세져서 미안하다...이번까지만 빌리고 다음달 이자는 꼭 넣어 줄께."

"짜식아! 우리사이에 무슨 그런말을 하냐. 천천히 갚아도 되니까 애들이나 신경써. 다음달중에 한번 보자."

"그래..."

끼익...

힘없이 대답하는 유재훈의 귀에 원장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원장실 문을 열고 재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장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석양 빛이 아이를 비추고 있었다. 보통 아이였다면 그것이 더욱 예쁘게 보였겠지만 온몸의 멍과 상처는 아이의 모습을 비참하게 보이게 만들 뿐이었다.

"수산아...아무튼..이만 끊어야겠다."

"그래 재훈아! 힘내 짜샤!"

재훈은 아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모든 것이 자신의 앞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이었지만 견딜 수 없는 마음 속의 어떤 감정은 전혀 사그러들지 않았고, 오히려 인간과 아이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불쌍한 아이는 벌써 이번달만 다섯번째 그를 찾아오고 있었다.

"또...엄마가 때렸니?"

"흑...원장님..."

"이리오렴 주희야..."

아이가 달려와 재훈에게 안겼다. 재훈은 그를 꼭 끌어안고 한참동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아이의 몸과 마음에 나 있던 모든 상처가 천천히 치유되어 갔다.


"이것...이것까지두요?"

"밖에 나가 계시라고 말씀드렸을텐데요."

"그래도...이건..이건..."

아이들이 타고 놀던 마지막 장난감이었던 미끄럼틀에마저 차압 딱지가 붙여졌다. 보육원의 복도를 따라 이런저런 시설물들에 차압 딱지를 붙이고 있는, 그리고 재훈을 귀찮아하는 기관 공무원들을 따라다니며 재훈은 애원의 눈빛을 그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채무초과 상태에 다다른 그의 재산 중 돈이 될만한 것들은 하나도 그의 소유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재훈은 그들이 들이닥친 아침에 수십번 친구 수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밖에서 어떤 차의 주차 소리가 들려왔다. 차문이 시끄럽게 닫히고 누군가 차에서 내린 사람을 안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여기가..마지막 남은..."

"됐어 됐어. 건물은 허물면 될 꺼고...뭐 여기있는 시설 다해봤자 얼마나 나오겠어?"

"그러면 여기는..."

"뭐 여기서 나온 건 자네 담배값이나 하라구..."

밖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재훈에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나갔다. 검은 벤츠가 보육원 정문앞에 서있었다. 뱀같은 눈초리로 보육원의 정원을 살펴보고 있는 그는 오랜 친구 김수산이었다.

"너...너는..."

"어이 유재훈! 오랜만이구만!"

"너..너..네..네가..."

재훈은 신음소리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탐욕스러운 친구의 눈을 마주본 그의 눈 위의 이마에 붙은 갈색 사마귀가 조금씩 검은 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일...내일이요...제발..."

주희는 전화기 안의 굵은 목소리를 향해 애원하고 있었다.

"내일이고 뭐고! 씨발...나도 말이야! 인생 갈데까지 간 놈이라고! 경찰에 신고한거 다 아니까! 오늘 저녁까지 입금 안되 있으면 그냥 애새끼 데리고 집으로 확 쳐들어가서 불질러버릴 거라니깐!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냐고!"

"안돼요...제발...내일까지만...."

"말귀를 못알아듣는구만! 염병할!"

딸깍...

전화가 끊겼다. 주희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주위의 경관들과 최검사를 둘러보았다. 기분나쁜 표정으로 최검사는 씹어뱉듯 말했다. 전파를 역추적하던 경관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의 말을 이었다.

"제기랄...이새끼 지능범인데요..."

"또 공중전화 통화지 역추적에 실패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최검사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주희를 안심시키려는 듯 최검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능범이라고 해도...일단 상당히 심리상태가 불안한 놈 같습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할 테니까 마음 놓고 계세요..."

"제발...아이를...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안심하세요."

옆에 있던 성준은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앉아 있던 한 늙은이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떤 새낀진 몰라도...한푼도 못준다고...내가 어떻게 이 돈들을...긁어모았는데...차라리 죽이라고 해..."


10여년의 세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
흰 옷을 입은 늙은 남자가 강남역 주변을 걷고 있었다. 품에는 두살정도 되어 보이는 갓난아이를 안고 있다.
화려한 복장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재훈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슬픈 과거에 대한 회상에 잠겼다.

친구에게 믿을 수 없는 배신을 당한 뒤 자살로 육신을 잃었지만 재훈의 신념만은 남아서 실체를 가지고 10여년간 많은 사람들을 구해 왔다. 인간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말 그대로 그의 모든 것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가끔 그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느끼곤 했다. 자신이 신념 그 자체로 육신을 얻을 수 있도록 변하게 된 계기가 친구의 배신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동안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그는 막 검은색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들을 잠재우고 불쌍하게도 유괴된 아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평창동에 있는 아이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이의 천진한 눈동자에서 그는 아이의 집을 알 수 있었다. 재훈은 경찰차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는 평창동의 집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