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수의 자료를 통해 승현이 알아낸 건 무엇일까요?

더불어 유재훈의 과거에 대한 또 하나의 사실이 밝혀지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분위기가 짙어져만 가는군요..

언능 들가봅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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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둠의 문（cafe.daum.net/balcknovel）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mypre




21




드르르르르르르르....드르르르르르...
주희의 핸드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밝은 붉은빛이 폴더에서 흘러나와 어두운 주희의 방안을 음산하게 밝힌다.
폴더의 듀얼 액정에는 김승현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다. 1분정도 정신없이 흔들리던 핸드폰은 다시 조용해졌다. 정신없이 반짝이던 붉은 듀얼 액정에는 김승현이라는 이름 대신 '부재중 전화 12통' 이라는 메시지만이 남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의 잔상이 꿈틀거렸다.
벌써 그녀는 11시간째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불룩한 배 때문에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침대 구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미친듯이 고함을 지르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던 아이들도 더이상 주희의 방문을 두들기지 않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안정이 되어 잠자리에라도 든 건지 아니면 탈진해서 주희의 방문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것들 따위는 주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차피 며칠 안에 죽어갈 목숨이기 때문이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그녀의 옆에 놓인 핸드폰이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다시 반짝이는 붉은 조명이 방을 희미하게 밝히며 미미한 다이나믹함을 방안에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이나믹함과 더불어 주희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어둠 속 방구석에서 어떤 사람의 형체가 맺혀 갔다.
주희는 힘겹게 얼굴을 돌려 발신자를 확인했다. 이번엔 김승현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 주희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어 작은 목소리로 발신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최...기....영..."
주희는 폴더를 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이주희씨...저 최검사입니다."
"네...안녕하세요..."
핸드폰으로 나지막한, 그리고 지친 듯한 두 남녀의 목소리가 교환되었다.
"별일 없는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네...아직은 이쪽엔 별일 없어요. 수사는 어떻게 되가죠?"
"수사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어떻게 되가는 지는...아시지 않습니까."
"네...?"
최검사의 목소리에 대답하던 주희가 방구석에 맺혀가는 희미한 형체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나직한 웃음소리가 그녀의 마음속으로 전달되었다. 주희는 서서히 몸을 떨기 시작했다.
...크크크크....
"수사는 전혀 감을 못잡고 있습니다. 살해 현장에 남겨져 있던 건 시체뿐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그렇군요..."
"주희씨..."
최검사의 말투가 진지하게 변했다.
"지금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가 아닙니다."
"네?"
"우리도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른다구요."
"무슨..."
"놈은 우리들과 자신을 본 사람, 혹은 사건에 관계된 사람을 모두 죽여 가고 있습니다. 직접 그때 있었던 사람들은 양손 가위로 찢어 죽이고 있고, 다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은 급성 심장마비로 모두 죽어 가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요..."
"여보세요?"
"네..."
"주희씨?"
"그렇군요..."
"주희씨! 내말 듣고 있는 거에요?"
"그래요..."
"이봐요! 주희씨! 정신 차려봐요! 지금 놈이 언제 우리한테 덮쳐들지 모르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빨리 피하지 않으면!"
"네..."
주희의 목소리는 어두운 심연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화를 붙들고 있는 그녀의 손에 점점 힘이 빠져 가고 있었다.
"여보세요? 이봐요! 주희씨!"
딸깍...
핸드폰을 닫은 주희는 힘없이 침대 구석으로 그것을 내던졌다. 체념과 공포가 뒤섞인 그녀의 마음 속에서 모든 것은 점점 귀찮게 여겨지고만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바싹 마른 조그만 사람의 형체가 둥둥 떠있었다. 주희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그것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힘겨운 한 마디가 새어나왔다.
"제발..제발 그만해요.... 그만하라구요......."
다시 그것은 주희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어둠 속에는 흐느끼는 주희만이 남아 있었다.
"흐흑...흑..."




22




옷을 챙겨입고 외출 채비를 한 승현은 자신의 ef소나타에 올라탔다. 어젯밤에도 관리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관리인은 퇴근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임시 휴가를 요청했다. 어제 유재훈이라는 인간의 과거를 알아본 그는 도저히 이대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새로운 사실의 입수에 의한 호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애증이 섞인 복잡한 감정은 이제 그로 하여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제대로 인식하기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언제나처럼 출근 시간대의 도로는 지독히 막혔다. 그렇지만 지금 승현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승현은 앞쪽만을 바라보며 씹어뱉듯 뭔가를 중얼거렸다.
"주희는 왜 거짓말을 한 걸까...."


승현이 예전의 등기부 목록으로 추정한 유재훈과 김수산의 과거는 정확하게 맞아들어갔다. 84년 당시 유재훈은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보육원의 재정 문제로 인해 상당히 어려운 상태였다. 김수산은 자신이 소유주로 있었던 '천일 종금' 이라는 금융회사를 통해 유재훈에게 상당한 액수의 금액을 빌려주었고 그것을 갚지 못한 유재훈은 김수산에 의해 급격히 경제적 파멸의 길을 걸어갔다.
84년 보육원이 넘어가고 마지막 재산이었던 부동산이（승현이 등기부 목록에서 확인한 바로 그 부동산이었다.） 말도 안되는 헐값으로 경매에 부쳐져 완전히 유재훈이 빈털터리가 된 후 그는 어디론가 실종되었다. 1999년 다시 나타나서 사망하기까지 유재훈의 기록은 아무 데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립 탐정은 유재훈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여러가지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식적인 기록은 아니었다. 여러 잡지들과 기사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어떤 사람을 소개한 기록들에서였다. 기사들에 등장한 그는 기묘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런 능력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재훈의 주변 인물들이 그가 실종되기 전 볼 수 있었던 그의 특별한 능력과 일치했던 것이다.
승현이 유재훈의 기록을 읽으며 당황했던 것은 이 시점부터였다.
한국 심령학회 부회장이자 아이들을 끔찍히 좋아해서 스스로 보육원까지도 운영하고 있던 그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였지만 그는 치료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유재훈은 여러 사고들로 인해 다친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 한번은 실수로 보육원 옥상에서 굴러떨어진 아이가 있었는데 그는 몇 번 상처를 어루만짐으로써 그 아이의 짓이겨진 왼쪽팔을 멀쩡하게 되살려냈다고 한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에게 힘든 과거를 지닌 아이들의 마음 속의 상처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심리 치료사의 능력보다도 탁월했다.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유재훈이 운영하던 보육원에 들어왔던 많은 아이들은 그와의 상담 후에는 언제나 밝은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것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는 자신의 재산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1984년에 김수산에게 사기를 당해 모든 재산을 빼앗기면서 그는 보육원을 잃고（그곳은 지금 산업 폐기물 처리장으로 변해 있었다.） 어딘가로 사라졌다.
유재훈의 실종 후에 전국 각지에서 놀라운 치료 능력에 대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스테리 잡지나 관련 서적들이 흔치 않았던 터라 그에 대한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여러 잡지의 여름 특집호 등에 간간히 실려 있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1990년에 강원도의 어느 농촌 마을에서 삶을 비관해 농약을 먹고 자살한 어느 중년의 농부가 있었다고 한다. 근처를 지나던 어떤 흰 옷의 사나이가 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의 가족들이 목격했는데 놀랍게도 그는 먹은 농약을 모두 토해내고 다시 살아났다.
인상 착의와 여러 그가 보여준 능력들을 볼 때 그는 수년전 경상도 울산에서 보육원을 운영하며 기적적인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소문으로 떠돌던 어떤 사람일 것이라고 잡지는 추정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흰 옷의 치료 능력을 가진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는 10여년간 단속적으로 여러 언론에 실려 있었다.
그리고 한 잡지는 그 흰 옷의 사나이를 알고 있다는 어떤 신부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그 신부는 직접 인터뷰를 거절했다. 다만 그가 서울의 한 작은 성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문과 그 신부로 추정되는 어떤 사람에 대한 간결한 정보만이 나타나 있을 뿐이었다.

한편 그의 성장 과정 역시도 승현의 머릿속 한 구석을 강하게 두들겼다. 유재훈은 울산의 지주의 아들이었으며 그곳 토박이였다.
그런데 승현이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에서 살짝 벗어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유재훈의 출생지는 울산이었다. 그리고 그가 거쳐간 학교들은 울산 동성 초등학교, 방의 중학교, 그리고 학성 고등학교였다.
자료를 읽던 승현의 눈에 그 학교들은 상당히 낯익었고 그는 한참동안 어디선가 본 듯한 그 학교들의 이름에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곧 그 학교들이 자신의 이복형 김수산이 거쳐온 학교들과 완벽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김수산과 유재훈은 철천지 원수였지만 동시에 같은 곳에서 태어나 10년이 넘게 같은 학교를 거쳐왔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승현은 유재훈이 죽기 전 저질렀던 유괴 사건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유괴범이 부유한 집안의 갓난아이를 납치했고 아이의 집 주변에서 협박전화를 걸다 마침 현장에 출두한 사건 담당 검사에게 적발되어 체포되려던 중 사살된 것으로 사건은 간단히 마무리되어 있었다.
유재훈이 1999년 유괴하려다 살해된, 그리고 어린 나이에 불쌍하게 목숨을 잃은 세살배기 아이의 이름은 김세헌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김수산의 손자였으며 그의 셋째아들 김성준과 그의 아내 이주희의 첫째 아이였다.
주희는 분명히 자신의 첫아이는 교통 사고로 죽어갔다고 말했다.
마지막 기록을 확인하고 정신을 잃어버린 승현은 깨어난 뒤 어제 밤새도록 주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승현은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주희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던, 아픈 사람을 신비한 능력으로 치료할 수 있었던 천사에서 끔찍한 살인귀로 변해 버린 유재훈이라는 사람에 대한 복잡한 생각 때문에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독한 혼돈 속에서 그는 유재훈이란 자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여러 행적과 그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느끼고 있었다.
사립 탐정은 친절하게도 유재훈을 도왔다는 신부에 대한 신상명세서까지 정확하게 조사해 두었다. 신부는 그에 대한 정보가 게재되었던 1995년 12월 당시 서울의 예진 성당에 근무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박순철이었다.
승현은 지금 그를 찾아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