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도 실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자네는 해고될 수밖에 없네.” 

 

그 말은 A씨를 바쁘게 움직이게 하는, A씨를 가장 절망에 빠트리게 하는 말이었다. 유원지의 앞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알바생 A씨는 마땅한 항의 조차 해보지 못하고 울상만 지은 채 관광객들에게 전단지를 건넸다.


그러나 A씨의 사정을 몰라주는 관광객들은 평소처럼 무심히도 전단지를 밀어내는 것이었다. A씨는 그들이 전단지를 받지 않는 이유를 자신이 너무 안일해서, 혹은 전단지가 매력적이지 못해서, 혹은 관광객들이 바빠서 등을 이유로 생각했지만, 그런 것들은 점점 A씨를 비난하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바뀌었다. 외모가 좀 더 나았더라면, 키가 좀 더 컸더라면 미소를 띄며 받아주지 않을까.

잘생긴 알바생이 갑자기 튀어나와 같은 전단지를 내놓은 상황은 다행히도 없었지만,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상은 자꾸만 커져갔다. A씨는 평범한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한 때 배우를 꿈 꿀 정도로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던 본인이, 전단지조차 제대로 건네주지 못하자 스스로가 점점 싫어지려 했다. 

 

A씨는 한 때 성형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연예인처럼 완전히 매끈한 얼굴은 아니더라도, 그들과 좀 더 닮게, 적어도 10명 중 4명에겐 멋있다는 소리를 듣게끔 변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도 없고 겁도 많은 A씨는 그래도 썩 모난 얼굴을 아니지 않나, 합리화하며 조용히 생각을 접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막 전단지를 받은 꼬마가 자신의 전단지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자 다시 머릿 속에 스멀스멀 번져갔다. A씨는 처량하게 앉아 전단지를 주웠다. 낮은 곳에서 보니 버려진 전단지는 꽤 많았다. A씨는 자신을 밀치며 지나가는 관광객 사이로 전단지들을 모았다. 밟힌 것, 구겨진 것, 물에 젖은 것... 어느 하나 성한 것은 없었다. 전단지를 모아 이걸 어떡하나, 생각하던 A씨는 유원지의 전단 뭉치 속 다른 전단지를 발견하게 된다. 

 

‘소문 출몰 지역’이라고 적힌 전단지는 별 다른 홍보도 없이 위치와 ‘주의: 너무 오래 머물지 말 것.’ 이라는 빨간 글씨만이 적혀 있었다. A씨는 처음에는 단지 신기한 유원지 홍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이런 식의 홍보가 잘 먹히는지, 이러는데도 사람들이 모이는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끝내 이곳을 한 번 방문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자신에게 소문이 붙는다면 더는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소문 출몰 지역‘에 가 본 A씨는 아무 것도 없자 놀라며 괜스레 지도 어플을 여러 번 켰다. 여기가 맞을 텐데. 분명 현재 위치와 전단지에 적힌 위치는 맞아 떨어졌다.조금 시선을 높여보니 ‘소문 출몰 지역’ 이라고 적힌 표지판도 있었다. 파란 표지판 양 옆으로는 ‘철거 반대’, ‘재개발 구역’ 이라고 적힌 플랜 카드가 반쯤 부서진 담에 걸려 있었다. 키가 낮은 담들 너머로는 허름하고 무너질 것 같은 집들이 늘어져 있다. A씨는 그 풍경들을 보며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마케팅의 일종이라 생각하며 해프닝으로 넘겼다. 

 

하지만 유원지 앞으로 돌아온 A씨는 뜻밖의 괴소문들에 사로잡혔다. 처음에는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A씨를 보며 ‘대형 기획사 소속 연습생’ 이라고 수군거렸다. 몇 몇은 싸인을 부탁하며 다가오기도 해서, A씨는 전단지의 뒷면에 싸인을 해주며 건넸다. 그러나 그 소문은 곧 ‘여배우 B와 스캔들이 났던 직장인’으로 변질되었다. 가끔 여학생 무리들이 다가와 사실이냐고 물었다. A씨는 잘 모르겠다며 얼버무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해외에서 여자를 강간한 놈’ 낙태를 강요한 쓰레기‘ ’반사회단체의 리더‘ 라는 말이 나돌았다.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지더니 A씨를 둥글게 감싸며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여성혐오자, 인종차별주의자, 쓰레기, 인간 말종. 한 시간도 안되서 A씨에게 붙은 별명들이었다. A씨는 그런게 아니라며 제발 말이라도 들어달라며 애워했지만 소용 없었다. 이윽고 A씨에게 소리치는 시위대가 생겨났다. 그 외침 속에서 A씨는 정말로 자신이 차별주의자일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전혀 아니었지만 시위대의 거센 목소리에 A씨는 생각을 마치지 못하고 줄행랑 쳤다. 

 

집으로 도망친 A씨는 아직도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는 시위대가 남아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A씨는 문득 현관에 놓인 네모난 거울을 보았다. 거울 안에는 정말로 여자를 강간한, 부모를 학대하는., 아이를 괴롭힌, 지독히도 끔찍한 악마의 얼굴을 한 A씨, 아니, A‘씨가 들어 있었다.

이게 나야? A씨는 얼굴을 매만지기도 하고, 손을 들어 머리를 만지기도 했다. 거울 속의 A’씨는 A씨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고 있었다. A씨는 죄책감을,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들의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인간 말종이라고 평가했다. A씨는 지독한 혐오감에 자신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할 악마라고 생각했다.



A씨는 구석에 놔둔 쥐약을 들어 한 번에 삼켰다. 그리고 5분도 되지 않은 채 화장실로 달려가 그것을 게워냈다. 그럼에도 혐오감은 가시지 않았다. 나같은 놈은 죽어야 해. 여러 번 다짐한 A씨는 이번에는 커터칼을 가져와 힘주어 손목을 그었다. 푹 익힌 고기의 살점을 자르듯이 부드럽게 베이는 살점에 A씨는 억, 소리를 냈다. 곧 피가 흥건히 쏟아졌다. 마찬가지로 A씨는 5분도 견디지 못하고 옷을 벗어 팔목을 소매로 묶어 지혈했다. 그리고 아찔해진 정신이 돌아올 때쯤, 그는 흥건해진 것은 피가 아니라 자신의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번에도 실패한 A씨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절박하게, 천장에 갈고리를 걸어 올가미를 맸다. 그러나 이번에는 밧줄이 끊어져 A씨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A씨는 손으로 바닥을 치며 이마저도 실패한 자신에 분노했다. 하지만 더는 자살을 시도하지 못하고 A씨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고서야 깨어난 A씨는 화장실로 가 얼굴을 닦았다. 세면대에 달린 거울을 들여다보자 이번에는 악마 A‘씨는 온데 없고,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한 A씨가 들어있었다. A씨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A’씨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자신이 들었던 소문들을, 별명들을 생각하다가 곧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실제의 일도 아닌 소문만을 갖고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에 웃음이 나온 것이었다. A씨는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며, 다시 전단지를 받고 유원지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