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에 도착하자 익숙한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띄었다.

둘 다 OT때부터 알게된 동기인데, 우리과에선 제법 유명한 커플이다.

"여어,휴대폰 충전하러왔냐?"

사내녀석, 김형식이라는 녀석이다.

도서관에 누가 휴대폰 충전하러오냐?

...가끔 내가 그러긴했다만...

"너네는 연예를 왜 이런데서하냐?"

"둘다 시끄러, 매너없는것들."

여자는 박정은, 놀랍게도 우리과의 대표이다.

솔직히 이 둘이서 사귄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적잖게 놀랐었다.

형식이 녀석과는 제법 친했던 나조차도 상상도 못했다.

그것도 그럴것이 서로 별로 아는채도 안하던 녀석들이었다.

내가 봤을때는 그냥 서로 인사만 하는 정도?

그런데 뒤에서는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니...아마 나말고도 다들 놀랐을껄?

뭐, 그런 이유때문에 우리과에서 유명한거지만...

하여간 박정은이 경고한 것처럼 이 곳은 도서관, 잡담이나 나눌 장소는 아니다.

나는 녀석들과 멀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책을 꺼내서 펼치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뒤에 평소듣던 음악을 재생했다.

그럼...어디 한번 해볼까?


...
..
.



한 동안은 책에 집중한채로 시간을 보냈다.

두 시간쯤지났나...싶어서 시간을 보니 세 시간은 벌써 지나가있었다.

이쯤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형식이가 내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간만에 봤으니, 잡담이나 나누자는거다.

박정은은 그대로 앉아있는 것을 보니, 둘이서만 보자는 것같다.

나로써도 그게 편하긴하다.

친구애인이기전에 나랑 그녀는 서로 그렇게 친한 관계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별로 좋은 관계라고는 말 못하겠다.

과대표인 그녀와 대학 생활에서 우리 과의 단체행동에 대부분은 불참하는 나랑은 마찰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사이랄까?

뭐, 지금은 그래도 형식이 덕에 많이 나아지긴 했다만...나로써는 억지로 친해질 생각없다.

가까운 야외벤치에서 녀석이 언제 뽑았는지, 캔커피 하나를 건넸다.

"왠일이냐? 갑자기 왠 공부?"

"자격증, 따놓으면 편하자너"

치익, 푸슉!

캔커피를 따서 한모금 마시고 녀석에게 물었다.

"연애는 할만하냐?"

"엉?...푸후후훗, 그거야 뭐...솔로인 네녀석은 절대 모를 그런 행복을 매일 느끼는 중이지."

...빌어먹을 자식

"...너 나랑 술먹고 클럽간거 꼬바른다?"

"헤헹, 안 무섭네요. 나없으면 둘이 인사도 안하는 것들이?"

음..반론불가군.

"근데 너야말로 뭔 공부냐? 시험도 다끝났잖아"

"에...그거 뭐라더라? 동아리 작품 전시회? 거기나가는 출품작때문에..."

"아? 너네도?"

"...? 너네도라니? 왜 네가 소속된 동아리가 있다는 듯한 말투지?"

"나 동아리있어."

"...여자 후리기 동아리 뭐, 그런거냐?"

한대 쥐어박으려고 했지만 녀석은 예상했다는 듯이 곧바로 피했다.

"뭐..나도 최근에 깨달았는데, '음악 합주 연구부'였나? 하여간 예전에 가입했던게 있었어."

"흐응, 그러냐...근데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다만...너 진짜 여자 안 사귈거냐?"

"...시비거는거지?"

"아,아니 자식아, 넌 솔로라고 놀려되면 일일히 발끈하는 놈이 막상 소개팅 시켜준다면 싫다고하고... 대체 뭐가 문제냐?"

에...그랬나?

"...넌 나한테 소개팅시켜 준다고 한 적 없는데? 다른놈들은 몰라도."

"앙?...아, 그랬나? 그럼 너 소개팅할래? 안 그래도 네놈에 대한 선배들의 요청이 뜨겁다."

"싫어"

"하..망할놈"

솔직히 소개팅같은거...음, 귀찮긴하다.

"나이 속여서 나이트에서 웨이터 짓도 하던놈이 여자가 어려운 것도 아닐테고... 생긴것도 말짱한게... 하, 보고 있는 내가 다 답답하다."

그거야 돈을 많이 주니까 그런거고...

"시끄러, 임마 내 맘이다. 난 이래뵈도 로맨티스트라고"

"큭큭, 로맨티스트는 무슨, 염병하고 자빠졌네."

녀석은 실실 쪼개면서 도서관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벌써가냐?"

"그래, 너랑달리 마마님이 기다리셔서."

...썩을자식, 아주 그냥 연애한다고 소문을내라.

"...연애라...후우"

솔직히 나랑은 조금 거리가 먼 두 글자라 생각했다.

아니, 지금와서 생각해도 별다른 차이는 없다....,하긴 그러니까 솔로겠지?

그런데 과연...내 속사정을 알고서도 사랑해줄 여자가 있으려나?

이미 곯아서 썩어가는지도 모를 상처를 내비추면 분명 다 도망갈꺼라 생각한다.

뭐, 그래도 괜찮다는 여자가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거절할 것이다.

내 스스로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놈인지는 그 누구보다 내가 잘알기에...

지금 뒤집어쓰고 있는 가면도 조금만 들쑤시면 분명 부서질껄?

남들이 보면 '난 나만의 아픔이 있으니까 연애따윈 하지않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크큭, 그건 무슨 중2병같은 마음가짐이란 말인가?

...그래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그런 사람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전부 다 이해하고 전부 다 감싸주고...그래도 날 바라봐줄...

음...생각해보니, 뭔 개소리지?

복잡해지려는 생각을 지우려 담배 하나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려고 라이터를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내 입가의 담배를 휙하고 낚아채갔다.

"누구...? 엉?"

고개를 들어보니, 유라가 내 담배를 낚아채간채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냐? 담배내놔."

"끊어."

...갑자기 뭔 소리냐, 얘는?

"하아? 끊으라니...담배?"

"그래, 이딴거 펴봤자 좋을거 없다며, 네가 말했잖아."

"음..그건 미성년자가 피웠을때에만 해당되는 거란다."

"시끄러, 내가 바본줄알어? 애초에 이런걸 왜 피는거야?"

"네가 뭔 상관이냐? 담배나 내놔,"

"끊.으.라.고. 그 정도 의지도 없어?"

녀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담배를 반으로 접어버렸다.

"..."

...이 망할 꼬맹이가 진짜...

안그래도 복잡한 심정이라 짜증이 확 치솟았다.

...후우...됐다, 얘한테 짜증내봤자 뭐가 남겠나.

"네가 뭔 내 애인이냐? 나이도 어린게 잔소리는..."

유라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빨게졌다.

하여간 알기 쉬운녀석이다.

"그,그건..! 아,아니지만...시끄럿! 끊으라면 끊어!"

"너도 이거 핀다고 나한테 사달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건 어제 말했잖아? 이젠 안 핀다고!"

"말보루 아이스 블라스트 1미리... 큭큭, 해줄꺼야, 말꺼야. 얼어뒤지겠는데. ㅋㅋㅋ"

내가 실실쪼개면서 말하는 이유를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던 녀석이 어느 순간 다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나로써는 워낙 쇼킹한 기억이라 음절 하나하나까지 전부 기억하고있다.

"그,그건...!"

"크크킄ㅋㅋ, 그 때 무서워서 나도 쫄았었지,ㅋㅋㅋㅋㅋ"

"시,시끄러웟! 그만해!"

퍽퍽!

녀석이 분에 못이겨 발로 차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아,아야! 아,알았어 크큭, 안한다고! 아악! 야, 진짜 아프다?!"

처음에는 맞을만 하던것이 점점 강도가 세진다.

..어억, 얘 무슨 운동배웠나?

"죽어, 죽으라고!"

"자,잠깐 너,너 근데 여기 찾아온 이유가 뭐야?"

얼른 화제를 돌려야한다.

...안 그럼 진짜 죽겠다.

"죽..!..아, 이유?"

"어,어어 그,그래. 왜 여기까지 찾아왔냐고"

훗, 하여간 단순한 고딩이다.

"...너 지금 내가 단순하다고 생각했지?"

...독심술도 배웠나?

"에이, 무,무슨 소리니?"

"흐응...방금 안도하는 눈빛이 왠지 마음에 안들었어."

...그냥 그런 이유였냐.

"하여튼...언니가 심심하다고 너 데려오래."

...근데 왜 날 불러?

"내가 무슨 장난감이냐?"

"아니 뭐..., 저녁 먹을 시간도 됬고...어쩔거야?"

...애초에 왜 직접온거냐?

"휴대폰의 존재는 잊어먹었니?"

"시,시끄러! 그,그냥 대학교 구경도 하는 김에 지,직접 온거라고!"

아, 그러세요.

저녁이라...흐음.

"음...가볼까? 오늘 할 분량은 다했으니..."

뭐어...집중은 거의 못했지만...

"응! 헤헤"

그러자 유라가 제법 귀엽게...는 아니고 멍청하게...도 아니고 귀여우면서도 멍청하게 웃었다.

"근데 너 진짜 여태까지 공부한거야?

"그럼 뭐했게?"

"주구장창 잔게 아니라?"

"바보야, 공부하면서 자는 시간은 수업 시간뿐이라고."

"...그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원래 인간은 하지말라고 하는것일수록 하고 싶어지는거야."

"지랄하네"

"...너 오빠한테 말하는 싸가지가 그게 뭐니?"

"니,니가 왜 내 오빠야?!"

"그럼 내가 니 동생이냐? 오빠라고 불러봐."

"시,싫어! 멍충아!"

"어쭈? 아주 은혜도 모르고 까부는구나?"

"신고할거야!"

"...대체 뭘?"

나올 때와는 다르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동방으로 향했다.

혹시...나도 조울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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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약간 바뀔수도 있겠습니다만...아직은 그럴 생각없고...

일단은 경험에다가 창작을 덧붙인거니까...음, 그럴려니까 오히려 더 복잡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