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 적은 많았다.

학창시절 야자를 째다 붙잡혀서 귓볼을 세게 꼬집힌 체

선생님 죄송합니다. 했었던 기억이 있다.

군대에서

"야 신병, 너가 보기엔 내가 더 잘 생겼냐 아니면 김뱀이 더 잘 생겼냐?"

지옥 같은 이지선다의 기로에서 남은 군 생활을 생각하며 나는 임상병의 손을 들어주었고

생활관에 홀로 남아 김병장에게 연신 죄송합니다를 연발해야 했었다.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들어갔던 중소업장에서 발주를 실수하는 바람에

사수에게 죽도록 까이면서도 죄송합니다.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미안한 적은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였던 김씨와 돈 문제로 죽도록 싸웠을 때도

미안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긴 너무나도 어려웠었고

내 연애상담을 곧이곧대로 믿어 첫사랑을 날려버린 후배한테도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살면서 얼마나 더 죄송할 일이 많을 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미안할 일은 얼마나 더 많을까?

그 때, 나는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안하다는 말의 무게를 이해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