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까마귀가 있었다.
그것은 별명일 뿐 날 수 있다거나 부리나 깃털이 있다거나 피부가 까맣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아리실도 빼앗긴 동아리가 있었다. 앙금이 없는 팥빵 같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공간이 없을 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모임을 가졌다. 사람이 모인다면 그것은 동아리실로 부르기에 충분했다. 술집이어도, 자취방이어도, 기숙사 로비여도, 모텔 방이어도.
까마귀는 정기 모임에 소설을 낸 적이 없었다. 까마귀는 언제나 연작 시를 써 내곤 했다. 대부분의 시를 내게 먼저 보여주었다. 내가 문학을 전공하고 있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소설을 써 냈지만 비판 당하기 일쑤였다. 주로 내용에 관한 비판이었다. 선정적이고 잔인하다. 매번 "그렇구나" 하고 넘겼지만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모두가 원하는 글을 쓰는 건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까마귀의 시는 평가가 좋았다. 까마귀는 다른 부분은 몰라도 언제나 시에 관해서는 올곧았다.
"시의 언어는 살아 있는 말이어야 돼. 무한화서에서도 그랬다구." 나는 그녀가 읽던 이상복의 책을 빼앗아 몇 장 읽어 보았다.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다시 돌려줬다. "이게 무슨 말이야?" 하고 물어도 그녀는, "그건 마음으로 읽지 머리로 읽는 게 아니야." 하며 설명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설명할 수 없으면 이해하지 못 했다는 거야." 하곤 했지만 그녀는.
"시론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라며 핀잔을 줬다.
그러시겠지.

한 번은 까마귀의 시가 혹평을 받았다. 기억을 더듬어 옮겨 적어 보자면.

내가 입을 벌리면 너는
단무지를 넣어 줘
내가 엉덩이를 내밀면 너는
바지를 올려 줘
내가 손을 내밀면 너는
과자를 쥐어 줘

뒷내용은 적당히 야한 느낌이었다. 청소년의 끈적끈적한 뭐 그런. 까마귀가 의도한 것이었고 나는 그 느낌을 충분히 느꼈다. 그러나 나머지 부원들은 전근대 시대에서 방금 돌아왔는지 야하거나 잔인한 내용이 등장하면 눈에 불을 켜고 비판하기 일쑤였다. 왜 시가 야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든가, 무슨 의미로 이런 단어를 썼는지 모르겠다든가. 그러나 그들은 문학에 있어서 맹인모상과 다를 게 없었다. 어설픈 지식으로 비판하려니 그 비판들에 무게라든가 가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문학은 남이 이해하지 못할 때 비로소 작동한다. 남을 이해시키기 위한 작업은 아니다. 남을 위한 문학은 정치인이나 기업인의 거짓말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까마귀는 그날 밤 방언이라도 터졌는지 동아리를 욕했다. 나는 까마귀가 그렇게 말을 빠르게 할 수 있는지 몰랐었다.

수요일에는 공강이 여섯 시간이었다. 아홉 시 수업이 열 두 시에 끝나고, 다음 수업은 18시였다. 시간표를 작성할 때는 그냥 쉬지 뭐, 하는 마음이었지만 실제로는 영 아니었다. 기숙사에 갔다가 또 나와야 한다는 불편함. 시간을 떼울 것도 마땅하지 않았다. 할 만한 것을 찾아보다가 까마귀에게 연락을 했다.

"무슨 강의 듣는다 했지?"
"나 현대 문학."
"그럼 나 청강해도 돼?" 왠지 재미있어 보였다.
"이따 내 옆에 앉아 그러면."

현대 문학은 두 시에 시작해서 세 시 반에 끝났다. 강의 동안 나는 까마귀의 옆모습을 보거나 교수의 "에.... 그리고 또...." 같은 말버릇 횟수를 세고 있었다. 혹은 책상 밑으로 손을 넣어 까마귀의 무릎을 간질였다. 까마귀는 정색을 하며 싫어했지만 이내 내 무릎에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강의를 아예 듣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