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살도 체 빠지지 않은 중학교 무렵
학교 별관 골목에는 늘 양아치 형들이 있었다.
우리는 점심시간이면 별관 근처 공터에서 소화 겸 공놀이를 자주 하곤 했다.

공이 바닥에 두번 튕기면 가까이 있던 사람이 아웃되는 간단한 룰을 가진 공놀이에 모두가 열중한 가운데
나는 친구를 골탕먹이려 녀석에게 힘껏 공을 찼지만 별관 골목으로 공이 흘러들어가 버렸다.

아차..
싶었다. 그 골목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무서운 형들이 허구한날 담배나 뻑뻑 피워대는 장소로 유명했기 때문에,
우리처럼 비행과는 일절 관련이 없는 무리는 급한 일이 있더라고 골목을 가로지르지 않는게 불문율이였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공은 야속하게도 그 공은 기세라도 얻은 지 쌩 하고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씨... 얘들아 저 공 버리면 안되냐?"
나는 친구들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되겠냐? 얼렁 가서 줏어와. 저번에도 너가 날려먹었잖아"
재촉하듯이 쏘아붙이는 말에 하는 수 없이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 씨... 제발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마음으로 잔뜩 움츠러들어 공을 찾아보지만
나무젓가락으로 담배 꽁지를 잡고 쪼그려 앉은 형들 사이로 공이 흘러들어갔었던 것이다.

무섭긴 하지만 공을 두고 나올 수도 없기에, 나는 형들에게 공을 달라고 부탁했고
형들은 의외로 순순히 공을 넘겨주나 했지만 이내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 여기. 대신 너도 한대 피우면 보내주고"
낄낄. 들리는 웃음소리는 라이언킹의 하이에나 웃음소리 같았다.

쫄았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손에 쥐어진 담배를 보니 왠지 나도 좀 노는 무리에 속한 것만 같은 기분에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막연히 있었던 일진 형들을 향한 동경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우리 반 맨 뒷자리의 경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나를 고양시켰다.

하나 둘 셋.
눈을 질끈 감고 타오르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빨대 빨듯 있는 힘껏 연기를 빨았고, 이내

"켁..켁!!"

깨끗했던 내 폐는 비명을 질렀다. 목은 불을 지른 듯이 작열감이 들고
연기는 기침과 함께 외마디 비명으로 토해냈다.

양아치 형들의 비웃음과 아이 다루듯 하는 말투가 들렸다.
아픈 것 보다는 쪽팔렸다. 담배 하나 제대로 못 피워서 노는 무리에 끼기나 하겠나?
거기에 장난감이 된 것만 같은 수치심에 나는 공을 껴안고 도망치듯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친구들은 왜 이리 오래 걸렸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태연하게 굴었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담배 냄새에 추궁당한 있었던 일을 불었고
쥐뿔만한 자존심 때문에 담배 하나 제대로 피우지 못해 켁켁거렸다는 말은 빼고 나의 무용담으로 만들어 친구들에게 들려주었었다.
한동안 나는 마치 호랑이 굴에서 정신 차려 돌아온 영웅 취급을 받았다. 이런 취급이 썩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때 켁켁거렸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아직도 머쓱한 부분이 있다.



스물 초
대학생활에 회의를 느껴 도망치듯 입대한 군대에서
숱한 흡연자들을 봐왔다.
훈련소에서는 다들 눈이 돌아가서 조교들이 들락날락하는 장소에 꽁초를 주우러 다니던 훈련병도 더러 있었다.
생활관 창문 너머에서 불어오는 담배 연기의 물결이 일렁이면 동기들은 다들 창문에 코를 박곤 했다.
사람이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대에 와서는 작업만 했다 하면 담배를 피러 가던 고참들이 생각난다.
체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또 담배를 피우러 가는 고참들이 비흡연자 입장에서는 참 미웠었다.
행정병이였던 동기도 불만을 토로했다. 일과시간에 행정반에 있으면 선임들은 거진 십여분에 한번씩 담배를 태우러 가서
자연스럽게 잔업을 자기가 도맡는다고 말했다. 나는 동기와 함께 그들을 대차게 힐난했다.

군대에서 담배 안 피웠냐고 묻는다면 피우지는 않았다고 답하지만 사실 피우고 싶었던 적은 많았다.
선임의 권유도 있었고, 군 생활 중 힘들었을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야간 훈련 중 뼈 빠지게 고생하고 난 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방에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를 피우던
동기 녀석을 보고는 그거 참 맛있겠다. 생각도 했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 병 월급을 생각하며 참아냈다.

부조리함이 휩쓸고 간 군 생활이 끝나고
복학을 한 시점에서
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고독이였다.
학창 시절과 군 시절에는 다들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싫어도 어울렸지만
모든 활동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대학에서는 사람을 사귀려면 그 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유가 너무나도 어색했고
내향적에, 말이 거의 없는 나에게 다가올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학기를 거의 혼자 보내면서 나는 사람은 혼자 사는 동물이라고 믿었다.
굳이 사람을 사귈 필요도 없다고 되뇌이며 생활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하게 된 타지 생활은 결국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위화감.
이목이 집중되면 뒷목에 경련이 왔다.
인간관계를 하며 내가 간파당하는 느낌이 들 때면 미칠듯이 불안해져서
사람과 눈을 마주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동안 믿어왔던, 사람은 혼자 산다는 이론은 결국 너무나도 쉽게 논파당했다.

이 현상들은 나를 갉아먹었고 더 깊은 열등감의 늪으로 끌어내렸다.
도저히 스스로는 메울 수 없는 커다란 크기의 구멍에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았는데 그 때 눈에 들었던 것이 담배였다.
양아치 형들이 한숨 내쉬며 피우던 담배. 고된 훈련에 욕지거리 하며 동기가 태웠던 담배.
아버지가 피웠던 담배를 생각하며 나는 처음 담배를 샀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던 가을 저녁이였다. 가로등이 깜빡깜빡거리던 거리를 걸으면서
담배를 태울 자리를 모색하다가 굳이 담배 처음 피우는 티를 들키기 싫어서 아무도 없는 공터로 향했다.
담배곽의 비닐을 뜯는 것도, 한 대 꺼내서 집어 올리는 것도, 불을 붙이는 것도 모두 어색해서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이였다면 분명 웃었을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세게 쥐어서 부러진 한 대를 뒤로 하고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를 들이마셔 폐에 집어넣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의외로 마냥 괴롭진 않았다. 다만 연기 때문에 눈물이 조금 나오고 장기가 더럽혀지는 느낌에 약간의 위화감이 들었다.
별거 없었던 체험에 몸을 일으키자
세상이 핑 돌았다. 삐가리라고 하더라. 고급스럽게는 니코틴 펀치.
니코틴 청정 구역이였던 내 몸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니코틴에 일으키는 거부반응 때문에
나는 넘어질 뻔 한 몸의 균형을 잡고 다시 앉아서 5분을 보냈다.
실소가 나왔다.

담배를 태우고 나서부터는 왠지 모르게 공황증상 비슷한 것들이 조금은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의학적인 근거라고는 하나도 없고 단지 기분 탓일 건데.
어쩌면 하나의 루틴이 된 걸 수도 있겠다. 담배 태우는 행위를 통해서 증상이 나아진다고 굳게 믿어서
실제로 그렇게 된 걸 수도.

이후로 나는 담배를 태우지 않으면 또 그 증상들이 찾아올까 무섭기도 했고
그때 느꼈던 삐가리의 몸이 붕 뜨는 느낌에 매료되어 하나의 습관이 생겨버렸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주변은 이미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터에서 혼자 담배를 태우게 되었다.
참 특이한 루틴인 것 같다. 일어나서도, 흔히 말하는 식후땡도, 잠 자기 전도 아니고
하루 딱 한 대 피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담배 하나로 풀어낸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