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가 끝이구나.”
“…….”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역겨운 탕녀의 손가락이 내 턱 끝을 훑고 지나가도 손가락 하나 꿈쩍 할 수 없다니.


말라비틀어진 대지는 검은 피로 적셔지고, 동료들과 끔찍하게 증오했던 마왕의 시체는 식어갔다.


흐릿한 눈동자 안에는 죽음이 다가온다.




사랑하는가족들을 떠나보내고, 한 자루의 낡은 대검을 들고 여행을 떠났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오직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항상 죽음의 두려움에 손을 떨면서도 검을 놓지 못했고, 고열과 정신착란에 흔들리면서도 검을 휘둘렀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나를 피했고, 악을 처단하기 위해 검이 부러질 때까지 모든 것을 베어냈다.




끝없는 싸움은 고독했다.


슬픔 앞에 무릎을 꿇었던 적도 있었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길을 잃어 버린때도 있었다.




그때 지금의 동료들을 만났다.


형제같은 사람이 생기고, 쓰러질 때 나를 지탱해 줄 사람이 생겼다.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기도 하였다.




몇몇은 스쳐 지나가고, 몇몇은 새로운 인연이 되어 다가왔다.


동료들을 만나고 잃어가며, 웃고 때로운 울며 싸워갔다.




싸우는 적은 점점 강해져만 갔고, 두려움에 떨며 다가오지 못 하는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광인이라 불리던 나는 용사로 불리게 되었다.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용사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왕을 쓰러트렸을 때.


내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도, 형제같던 사람도, 나를 응원해주던 사람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책임도, 증오도, 감정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제야 후련하게 검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마왕의 첩이자, 몽마들의 주인인 서큐버스 퀸.


분명히 죽었을 그녀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내 앞에 서 있었다.


“마왕님을 죽였구나.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어.”




유일하게 사랑했는데.


감각이 무뎌진 턱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그녀가 중얼거린다.


그녀의 표정은 슬퍼 보이기도 했고, 기뻐보이기도 하여서 감정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너는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죽으려 하는구나?”


턱을 쓰다듬던 손가락이 천천히 목젖을 훑고, 가슴팍을 훑고, 점점 더 아래로 내려온다.




“원래대로라면 통하지 않았겠지만.”


-쿵!
멈추어가던 심장이 거세게 한번 박동했다.


몸속으로 스며드는 역겹고 끈적거리는 마력이 혈관을 타고 역류한다.


근육이 다 터져 나가 움직일리 없던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사타구니 쪽으로 마력에 의해 강제로 움직여진 혈류가 쏠린다.


곧이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던 팔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타구니 쪽으로.




“나는 너가 그렇게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행복하지도 않고,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면서, 비참하게 죽었으면 싶어.”


의식을 걸치지 않은 채로, 성욕도,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로.


저주받은 마력에 의해 강제로 움직여지는 팔이 음경을 쓰다듬는다.




그때 내 눈앞으로 툭 하고 떨어진다.
그건 싸늘하게 식어 버린 여성의 머리였다.


‘세르아….’


내가 일생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죽는 날까지 서로 함께하자 맹새 했던 사람.


사고를 멈췄던 뇌가 꿈틀거린다.


울컥 입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와 세르아를 적신다.


“……제발.”
“아직도 말을 할 수 있었구나?”
“멈춰…제발….”


뚝 하고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나와 핏물을 닦아낸다.


“미안 하지만 그럴 순 없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길 원하거든.”


팔은 끝도 없이 움직이고, 시야는 희미해진다.


어둠이 가까워진다.


“영혼 속 까지 널 저주해.”


여인은 속삭였다.




**




“후우 여기가 좋으려나…?”


뻘뻘 흘러내리는 구슬땀을 닦아내며, 소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수백 년 전 마왕과의 전투가 벌어졌다는 성터.


지금은 저주받은 땅이지만, 금지된 마법을 배우는 흑마법사에겐 숨기 적합한 장소였다.


“뭐? 나는 아직 이르다고? 두고 보자 스승님…!”


꿀밤을 맞고 욱신거리는 머리를 문지르며,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못한 소녀는 결심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멋진 언데드를 사령해서, 스승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소녀는 고개를 돌리며 코를 킁킁 거렸다.


죽음의 향기가 진동한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린 뒤, 소녀는 등에 메고 있던 지팡이를 끙끙거리며 꺼내 들었다.


검은 마력이 지팡이에 모인다.




[일어나라.]


주문을 외우자, 지팡이에 모여 들었던 마력이 어디론가 쑤욱 빨려 들어간다.


그걸로 끝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휘이잉 바람 부는 소리만 들린다.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팡이 끝을 쳐다 봤다.


분명 마력의 구성도 잘했고, 실패했을 때 일어나는 폭발도 없었다.


주문을 외자마자 뭐든 튀어나와야 정상이었는데.




“어...뭐가 잘못된 건가? 이럴 리가 없는ㄷ…호에에엑?!!”


-쿠구궁!
땅속을 해집고, 거대한 형태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온 건 거대한 체구의 해골이었다.


“아, 안녕 하세요…?”
“…….”


지팡이를 들고 바들바들 떨면서도, 소녀는 해골을 훑었다.


‘미쳤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뼈의 손상도 하나 없이 깨끗하고, 키는 2미터도 넘어간다.


심지어 이상한 무늬가 있는 녹슨 갑옷을 입고 있는데, 죽기전에 최소한 기사단장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반신도 튼실한 게 달려 있….




“호에에에엑?!!!”


소녀는 펄쩍 뛰며 고개를 획 돌렸다.


“아니야…잘못 본걸 거야…내가 실수 한 거겠지….”


불안에 벌벌 떨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덜렁덜렁


“뭐야?! 왜 달려있는 거야?!!!”


질색팔색을 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분명 죽어 썩어 없어져 있어야 했던 음경이 매달려 있었다.




소녀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음경만 달려 있는 해골이라니, 이런 건 스승님한태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건 덜렁덜렁 거리는 남자의 성기.


‘처음 본 건데…! 처음 본 건데…!’


난생처음 본 남자의 성기가 시체의 것이다.


차라리 눈을 도려내고 싶었다.




최대한 시선을 위로 놓은 채로 해골을 바라봤다.
해골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
“어쩌지 진짜…?”


음경이 달려 있는 스켈레톤이라니.


저딴걸 스승님한태 데려갔다간 최소 궁디팡팡 일주일은 확정이었다.


최대한 좋은 방법은 해제시켜 버리고 모르는 척 하는 건데, 그것도 좀 문제가 있다.


가벼운 마법같지만 수십 개의 마법이 뒤섞이며 만들어지는 최상위급 마법이 ‘강령술’이다.


그리고 소녀는 몰래 훔쳐본 스승의 책에서 강령술을 쓰는 법을 배웠지만, 해제하는 방법을 배우진 못했다.




“어…일단…손을 움직여 볼래요?”


마력이 섞인 목소리로 해골에게 명령을 내리자, 끼기긱 하며 해골의 오른쪽 뼈가 끼기긱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희망이 조금 보였다!’


다행히 명령권은 자신에게 있었다.


활짝 소녀의 얼굴에 미소가 핀다.


‘처박아 놓자!’


스승님에게 들키지 않게 어디 먼 곳에다가 처박아 놓자.


나중에 해제술을 배운 다음에 강령술을 해제하면 완벽 범죄였다.


“좋아…이제 가만ㅎ…어??”


소녀의 말이 멎는다.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해골의 손이 저절로 움직여서 점점 내려갔으니까.


“이게…무슨….”


해골은 자위를 시작했다.


“이게에에 뭐야?!!!!”


소녀가 비명을 지른다.




**


“진짜…이게 뭐야…나한태 왜 그러는 거야…훌쩍.”


소녀는 쭈그려 앉아 고개를 다리 사이에 푹 파묻었다.


스승님의 말을 듣지 않고, 함부로 행동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해골은 여전히 자위하고있다.


눈물이 찔끔 흘러나온다.




-바스락!
흙이 짓밟히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소녀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짐승이 으르렁거리며 소녀를 노려보고 있다.




이곳이 금지된 땅이 된 이유.
마족들의 피와 마력을 핥아먹은 마수들이 살고 있었으니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벌떡 일어난 소녀는 양손으로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지팡이 끝이 덜덜 떨려온다.


‘망했다.’


강령술에는 고도의 연산과 마력이 필요하다.


이미 자위하는 해골 덕분에 모든 마력을 쓴 상태였고, 맨손으로 짐승을 상대하기엔 소녀는 너무나 나약했다.


“——!!”
“히이익…!!”


순식간에 내달려오는 마수에게서 소녀는 눈을 꽉 감았다.


‘스승님! 불경한 제자 먼저 갑니다!!!’






그 순간, 까득 해골의 턱뼈가 움직인다.


“누가!!!”
“호에에에엑…!!!”


갑작스레 소리를 내지르는 해골.


그 고함 소리에 공기마저 떨려온다.


-철컹
어느샌가 해골의 손에는 검은색 대검이 들려 있었다.


두려울 정도로 어둡고 불길하다.


“나의!!! 자위를!!! 방해하는가!!!”




마수는 단숨에 반 토막 나서, 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크하하하핫!!!”


해골은 다시 자위를 시작했다.


그 꼴을 멍하니 보고 있던 소녀는 생각했다.


‘미쳤다….’


아무래도 내가 단단히 미친 해골을 소환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