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주륵주륵 쏟아지는 날이었다.

집에는 가야하는데 고맙게도 반친구새끼들이 내 우산을 지껏마냥 가져가버린탓에

모두들 집에 돌아가고 아무도없는 학교 구령대에 쪼그려앉아 비 그치기만을 기다리고있었다.

턱괴고 빗방울 뚝뚝 떨어지는것만 쳐다보다가 천둥치는거에 깜짝깜짝 놀라고 이짓만 한 40분정도지속하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비가 그칠것같지가 않아서 결국 교복이 젖건말건 집으로 죤나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가방은 머리위로 올리고 튀어나갈 준비가 딱 끝났을때

갑자기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애타게 불러대더라.

자세히보니까 학교에서 친구하나 없던 나에게 유일하게 잘해주던 그 일찐년이었다.

새하얀 우산을쓰고 저멀리서 뚜벅뚜벅 웃으면서 걸어오더니

"왜 집에 안가냐? 우산없어서 못가고있는거야?"

라면서 은근 짜증나는 비웃는투로 말하더니 우산없으면 같이가자고 말하더라.

솔직히 저게 나로써는 엄청나게 좋은제안이긴 했지만 아직도 그 일찐년에대한 신뢰감이 그닥 있던게 아니었기때문에 어떻게할까 하면서 죤나 망설이다가

홀딱비맞고 젖는것보단 백배낫다고 생각하게되서 쭈뼛쭈뼛 우산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일찐년이 우리집 어디있냐고 물어보길래 대충 길만 말해주니까

지네집도 그쪽에있다고 딱 잘됬다고 좋아하더라. 그렇게 딱 이것만 이야기하고 서로 입다물고

단둘이서 5분정도 저벅저벅 걷는데 진짜존나 어색하고 불편하더라. 게다가 우산이 작아서

걸을때마다 일찐년과 어깨가 툭툭 부딪혔는데 혹시 그것땜에 일찐년이 싫어하고있진 않을까해서

슬며시 쳐다봤는데 그딴건 신경도쓰고있지 않다는듯 죤나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걷고있더라.

그래서 나도 그딴건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걷는데

역시 난 친구하나 없었고 그런상황이 처음인데다가 대상이여자인탓에 어색함을 숨기려해도 숨길수가없더라.

그런 기분때문에 내가 일찐년과 거리좀 벌리려고 슬금슬금 옆으로 빠지면서 걸었는데

갑자기 일찐년이 내 교복 팔소매잡고 끌어당기더니

"비 다맞잖아 바보야~" 라고 진짜 순진하게 베시시웃으면서 내 얼굴 쳐다보니까 갑자기 가슴속이 두근 하고 울리더라.

대체 이 의미모를 두근거림은 뭐지 하면서 죤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있는데

갑자기 머리에 딱 스쳐지나가는게 하나 있더라. 줄곧 물어보고 싶은거였다.

이 일찐년은 왜 나한테 잘해주는건지 그래서 10분뒤쯤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다른애들은 죄다 날 싫어하고 눈도마주치기 싫어하는데 어쨰서 너는 나한테 잘해주는거냐' 라고.

그랬더니 그 일찐년이 내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얇게 미소짓더니

"내 스타일이니까" 이러더라.

진짜 그거 딱 듣는순간 시간이 멈추는 기분이었다.


집에가서도 생각났고 밥먹을때도 그 일찐년이 했던말이생각났고, 또 그 말때문에 설레임에 새벽내내 잠도못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