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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축할 만한 일이 있는 날이다.
며칠 전 330-350ml 맥주 6캔에 만원 상품을 샀었다. 좋아하는 코젤도 샀는데, 산 그날부터 먹고 싶었다. 그런데 뭔가 타이밍이 맞지 않는 날들이 지나갔다.
아이들 자고 열시쯤 나와서 맥주 한 캔 먹고 얼른 빨래 개고 씻고 스트레칭하고 자야 하는데 아이 옆에서 잠들어버려 열한시쯤 아이방에서 나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오늘은 정말, 맥주를 먹을 수 있겠다 싶은 날이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코젤을 먹고 싶은, 스스로에게 해방감을 만끽하도록 해주고 싶은 날이기도 했다.
지난 4월, 혈육이 사고를 쳤다.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를 싫어하는 혈육인데 나도 그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다. 작년 어느 날, 나에게 연을 끊자고 했다. 이유는 들었지만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데에 대한 근거를 이야기해줬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서로에게 지독히도 안 맞는 인간 군상이었구나 싶었다.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어차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관계를 호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도 그게 편할 수 있겠다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갑자기 연락을 해와 구구절절 설명을 하며 돈을 달란다. 뜬금 없이 우리집 가정사도 도와준다. 관계 회복을 원한다기보다는 돈이 필요한 것 같았다. 사실 지난해 절연하자는 이야기에 한동안 인간에 대한 불신에 시달렸다. 그에 대해서는 지금도 마찬가지라, 내 일을 도와주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아무튼,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돈이 굉장히 급한 것 같았다. 그냥 나오기 어려운 돈이지만 오죽하면 나한테 손을 벌릴까 싶어 입금했다.
며칠 후 또다시 돈이 필요하단다. 큰 돈이지만 아직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입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돈을 달란다. 기분이 쎼하다. 지금껏 보낸 돈도 꽤 되는데 이번에도 그만한 액수를 달란다.
옵션 거래를 한다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떼일 각오로 준 돈이긴 했지만 진짜 떼이겠다 싶었다. 혹시나 싶어 엄마와 또다른 혈육에게 연락했다. 엄마가 큰 액수의 카드론을 받아서 건네줬단다. 이자가 7퍼센트를 넘는다. 내가 가진 대출은 이자가 3퍼센트대다. 일단 엄마돈을 갚았다. 이제 내가 가진 여윳돈으로 해결이 안되어 약 2천 7백만원의 빚이 추가로 생겼다. 다행히 또다른 혈육에겐 연락하지 않았단다. 나보다 관계가 더 소원해 다행이다.
상태가 안 좋아보여 만나자고 했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약속을 미루는 것 같다. 그냥 무작정 찾아갈까도 싶었지만 나도 아이들 때문에 시간을 오래 쓸 수 없다.
난 돈 나올 구멍이 없다. 대출 만기는 9월이다. 2천 7백만원을 4개월 안에 갚아야 하는데 나는 현재 백수다. 혈육이 6월에 천만원을 엄마에게 갚겠다고 했단다. 신뢰가 가지는 않았지만 일단 거기에 기대보기로 한다.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다. 이제 절대 돈 건네지 말라고. 이제 나도 여유가 없어 엄마를 도와줄 수 없다고. 엄마도 깨달은 바가 있는지 그러고마 했다.
혈육으로부터 간간히 돈이 들어왔다, 총 6백 6십만원. 때때로 돈이 필요하다고 급하다고 연락이 왔다. 나와 엄마에게서 나온 돈은 이미 날린 듯 하다. 어느날, 구구절절 사연을 보냈는데 정말 급한 것처럼 보였다. 메시지 말미에 딱 1억만 달란다. 딱 1억이라니. 웃음이 나왔다. 더이상 답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연락이 온다. 죽어야겠다는 둥 어미의 가슴을 후벼파는 얘기를 해서 엄마가 견디기 힘든 것 같았다. 여기저기 손 벌리던 엄마는 결국, 외삼촌의 말대로 아빠를 소환했다. 아빠는 혈육과 관계가 많이 안 좋다. 아빠가 해결해 주었다. 대신 아빠는 평생 빚 없이 살았다는 자존심에 상처가 났고, 몇 주간 지독한 우울에 시달렸고 지병인 잇몸병이 악화되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 8월이 되었다. 내가 가진 2천만원의 빚은 해결되지 않았다. 은행에 가서 대출 연장에 대해 상담했는데 거절당했다. 무슨 생각인지 자산관리 어플을 설치했고, 다행히 내가 잊고 있던 돈이 있었다. 그리고, 절대 손대지 않기로 다짐했던 돈에 손을 대기로 했다. 부족한 것은 엄마가 도와주기로 했다. 무튼 2천만원을 해결했다, 오늘. 오늘은 축제다.
아이 방에서 잠들었다가 열두시 무렵에나 깨어나 나왔다. 오늘도 타이밍이 별로라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두시 반, 남편이 깨운다. 아이가 잠을 잘 안잔단다. 아이를 재우고 보니 초저녁에 푹 자기도 했고, 오늘같은 날을 그냥 넘기기 싫어 코젤을 먹었다.
씁쓸한,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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