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매번 맞닥뜨린 삶의 문제 앞에서 [무스 에스 자인?] [에스 무스 자인?] 지껄이는 건 상관 없다 이거야. 다만 이제는 사랑이니, 이별의 아픔이니 하는 허섭한 담론들은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 때문에 첫 눈에 반했느니, 운명의 상대인 걸 단박에 알아차렸느니 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상투적 표현들을 노래하는 진정한 현대의 호메로스 앞에서 나는 흘러나오는 조소를 참거나, 그냥 천장으로 눈을 돌려버리거나. 아니면 꽤나 우스꽝스러운 외견이지만 둘 다 해버리곤 하는 거지. 사랑을 믿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보위처럼 소리를 지르긴 해. [나는 사랑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사랑했노라. 그리고 얻은 추잡한 파편들. 아아, 재에서 재로.]

그래서 역사에서 ‘이름 붙여진’ 우리 성인들 중에 진정한 성인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뿐이야. 반 쯤 헐벗은 알제리 처녀들을 맘껏 즐기다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궁극적인 진리를 깨닫은거지. 아. 사랑놀이도 더럽게 지루하네, 애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총각이니까 사제라도 되어볼까. 그러곤 훌륭하게 성부 성자 성령이니, 태양이니 이런 것들을 휘갈겼어. 고갈되어 버린 성애 욕구 덕에 하느님을 섹스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가능했던 거야. 근데, 이 자비로운 아브라함의 신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천국으로 올려보내줬을까? 천만에. 아프리카 사람을 그 장엄한 천당에 발을 들여놓게 했겠어? 창조 이전 최초의 인종차별주의자께서는 [너는 유대인이 아니라서 안된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겠지만 대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너는 간음하였노라. 그러므로 지옥에서 오천만년.]

우습게도 천당에는 갈보들과 백치들이 드글드글 할거야 （그리고 헬레나를 유혹한 비열한 파우스트 박사도!） 우리의 자비로운 신은 그런 신실한 사람들을 좋아하거든.（신실함은 바보멍청이의 동의어지） 하여 지옥에는 누가 있느냐. 아름다운 우리 성인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전능한 나를 의심없이 믿지 않고 다섯 가지 길을 들며 뽐낸 죄. 오조억년.）, 성 안셀무스 （잘난척한 죄. 사형.） 그리고 순수한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들. 그럼 살인자와 사기꾼과 미치광이들은? 걔들은 여기에만 있어, 이 세상에서 제일 현명한 부류들이지, 천국 지옥이 따로 있어? 아아, 재에서 재로.

가끔 카타콤을 누비는 꿈을 꿔, 다만 서기 2세기의 기독교도나 필립 왕을 피해서 숨어버린 성당 기사단 같은 숭고한 역할이 아닌, 알비 지방에서 나고 자란 멍청한 농노의 자식인 카타리파 동아리원으로. 나는 삼위일체니 그리스도의 육화니 이런 것들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냥 엄마 아빠가 이 세상을 만든 건 나쁜 신이란다. 성모 마리아니 예수니 하는 놈들은 다 더러운 것들이니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매일 같이 말하던 걸 믿었을 뿐이야. 이게 왜 고기 반찬을 못먹는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13세기 농노가 고기를 먹을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친구들은 화형주에 오르거나 십자군에게 목이 베였고 나는 겨우 살아남아 카타콤을 누비는거지. 근데 꿈 결말이 뭐였더라.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거 같았는데.

하던 얘기로 돌아오면, 첫 눈에 반했다는 말은 상투적인 너무나 상투적인, 범인들의 연애를 신화화하려는 작업이라는 거야…
고백하자면, 지난 달 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어. 호메로스가 옳았네. 트로이는 존재하더라고. 서두르자. 세피로트의 나무가 자라나게 되면 카발리스트는 그의 신비주의적 입장을 저버릴 수 없을 테니까. 사랑이라는 낮은 것은 케테르의 것이 아니야.


…


지난 주에 J와 자유의지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 서구 사회 속 자유의지에의 집착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때 난 뭘 마셨지, 기억이 잘 안나네. 아무튼 J는 두 시간동안 가만히 듣다가는 대뜸, [안돼!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아! （사이）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 만들어진 거겠지?] 하곤 눈을 감았어. 옆에서 우리 사장님은 [나는 그런 거 듣기 싫어] 하고는 톰 요크를 따라 춤 추더라. 귀여우셔라.

그러곤 다시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서구 사회의 자유의지 역사에 대한 강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과 데이비드 흄의 강변, 신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 따위를 듣다가 （물론 지극히 아퀴나스적인 논증으로 바꾸었지만） J는 대뜸 다시 [신은 존재하는 거였구나!] 소리 쳤어. 크크.
YWHW. 한 명 당신의 신실한 신자로 올려보냅니다. 비록 저는 당신을 믿지 못하지만, 제 공을 치하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는 지옥에 한 자리 마련해주시길. 아니면 그 아래 층이라도.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