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부 시리즈 – 유월양의 시점（묘성이랑 친해지기）

3년간의 중학교 생활이 끝나고 3월의 봄이 오면 새 학기가 시작된다. 고등학교는 기존에 내가 다니던 완산온누리중학교와는 5km 쯤 거리가 있다. 원래라면 지역 내의 고등학교로 가서 중학교 친구들과 평화로운 고등학교 라이프를 즐길 예정이었지만 부모님께서는 그 학교가 탐탁치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지원서를 작성하려 집에 고등학교를 물어보러 갔을 때에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내가 다닐 고등학교가 정해져 있었다. 이전 중학교로부터도 멀고 집 근처와도 동떨어진 고등학교를 보낸 걸로 보아 두 분은 내가 중학교 시절 나날이 성적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을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느라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셨을 것이다. 또한 내가 앞으로 가게 될 고등학교는 우리 지역 내에서 가장 학원가가 발달한 지역인 동신동이다. 학부모들의 학구열이 완강한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과 함께 내가 생활하면 이에 물들어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라고 기대함과 동시에 그 지역 내에 있는 유명 학원으로 나를 보내 나의 수험까지의 고등학교 3년을 성공적으로 이룩시키고자 하는 부모님의 욕심일 것이다. 이런 점만 보면 두분의 학구열도 동신동의 여타 학부모들과 차이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불만인 점은 나의 의사는 일체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처음에 부모님들께서 학교를 정했다며 집 주변의 학교로는 보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셨다. 나도 뾰루퉁한 표정으로 왜 집 주변 고등학교로 보내주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빠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하기를 “이 주변에서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너가 공부할 때 부담감을 느낄까봐 그러지” 라며 허울좋은 말로 넘어가려 하였다. 이 말은 거짓말은 아니다. 우리 집 근처에는 우리 지방을 대표하는 교육청이 존재하며 아버지는 그 교육청에서 근무하시고 계시기에 이 주변의 교육은 아버지가 진작에 다 한번씩 만나봤거나 아니면 건너건너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교육청에서 교육하는 만큼 아빠의 교육관은 분명하다. 항상 ‘사람은 분위기에 물든단다? 그러니까 항상 내가 생글생글 웃고 다니는거야, 우리 딸이 언제나 남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길 바라니까’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 교육관이 나의 친구 관계에 까지 퍼진다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은근 오묘하게 아빠는 나의 주변 관계나 수업에 집중하는지 여부를 자세히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중학교까지 이르는 나에 대한 교육 환경은 공부에 적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나를 그 고등학교로 보내는 것이다. 아빠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는 항상 웃는 얼굴로 완곡하게 답하는 바람에 옛날부터 그 말을 거역하기 어려웠다. 웃는 얼굴에 침을 못뱉는다는 표현보다는 배고픈 새벽에 방에서 나왔는데 거실에 걸려있는 웃는 불상 그림을 보고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놀라고만 있는 그런 기분이다. 나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물었다 “그럼 어디 고등학교로 가길 바라는데” “ 완산동신고등학교로 가는건 어떻게 생각해 딸?, 완산동신고등학교는 아빠가 일하는 데랑도 멀고 너도 거기서는 지금보다 더 편하게 공부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이 말도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좀 거부감이 드는 것은 분명했다. 내가 아에 갈 일이 없었던 동네이며 학교 주변에 친구들과 놀만한 장소도 마땅히 부족하고 아파트, 공원 그리고 편의점만 가득한 동네로 가는 것은 영 내키진 않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말에 반발해봤자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말을 더 잇기보다는 대충 수긍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방으로 들어갔었다. 그날 따라 하늘에 걸어놓은 달 모양 전등이 불을 끄지도 않았는데 심하게 어두운 것 같았다. “잘 할 수 있으려나” 어린 나이에 한숨만 많아지면 인생이 고달파진다는데 벌써 절반 쯤 글러먹은 게 아닐까 란 생각을 했었다.
새학기가 된 고등학생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당연히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3월 2일 오늘 은 처음 학교에 가는 날이다. 학교는 8시 20분까지 도착해야했지만 빨리 아무 자리나 차지해두고 짐을 먼저 푼 다음에 학교를 둘러보고 싶었기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했다. 평소에는 부스스하게 일어나는 아침이지만 어제 새학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서 그런지 잠보다는 첫날에 대한 온갖 걱정들과 기대들을 망상으로 풀어내면서 새벽 3시쯤 잠에 든 것 같았다. 엄마한테 미리 아침 일찍 깨워달라고 말해놓고 알람을 5시 반부터 30분 간격으로 맞춰놨기에 분명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눈을 뜨자마자 나는 잔뜩 놀라서 바로 핸드폰으로 눈을 옮겼다. 다행이도 시간은 6시 5분으로 평소보다 50분은 일찍 일어났기에 스스로도 놀라웠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아침 밥을 준비하는 엄마한테 자랑스럽게 일찍 일어난 나를 칭찬해주라며 양 손을 허리춤에 대고 아침 인사를 했다. “엄마! 나 일어났어!” “으구 우리 월양이가 웬일로 이 시간에 일어났대” 엄마도 살짝 놀란 듯 한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셨다. “그럼 나 밥은 씻고 나서 먹을게!” “그랴, 그렇게 해” 하며 남은 식사 준비를 이어나가셨다. 엄마는 고향이 서남지방이라 그런가 특히 사투리가 심했다. 오랫동안 듣다보니 나도 어느새 정겨워져서 가끔 따라하곤 하는데 엄마처럼 부드럽게 나오진 않았다. 학교갈 준비를 다 마치고 고등학교 교복의 깃 까지 다 정리한 후에 방으로 들어가 전신거울을 보니 나도 어련한 고등학생이 된 거 같아 들뜬 기분이었다. 엄마는 아직도 어린 애가 괜히 들떠서 저런다며 말하셨지만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나는 중학교 애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괜시리 걸을때도 가슴을 펴고 걸으려고 노력했다. 그 행동이 퍽 우스웠는지 엄마는 나를 유치원생 보듯 비웃곤 하셨다. “다녀올게” 라고 말하고 나서 집을 나와 버스에 탔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얼마 없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와 비슷한 또래같아 보였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교복을 입은 사람은 아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 근방 사람들 중 동신동까지 가는 사람이 있을 리가 전무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으리랴. 30분이 걸려 도착한 학교는 중학교는 생각보다 더 커다래서 주눅이 들었다. 교문 앞에는 “신입생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기에 나는 그래도 신입생답게 풋풋한 표정으로 정문을 지났다. 나처럼 학교에 일찍 와서 자리를 잡고자 하는 학생들인지 한명 두명 씩 부모님의 차에서 내렸다. 아이들이 책에서 내릴 때마다 부모님의 걱정에 발목이 잡혀 차 문이 열린 후로도 30초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저 아이들도 나와 같은 1학년일 것이다. 게시판에서 나의 고등학교 첫 반이 될 곳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1학년 1반, 1학년들 중 우선이 되는 반이라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1학년 교실은 학교 본관 건물의 2층에 위치했다. 학교의 중심이 되는 건물답게 4층 높이에 중학교보다는 1.5배 정도 길어보였다. 1학년 1반은 계단을 오르고 나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나오는 교실이여서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도중 벽에는 학교폭력 방지 포스터라던지 금연 캠페인 등의 포스터들이 잔뜩 붙혀있었다. 교실 앞에서 서서 내가 가장 먼저 왔겠지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당당하게 교실 앞문을 열었다. 당연히 내가 먼저 왔겠지라 생각했던 내 생각은 거의 틀렸었다. 나보다 먼저 온 여학생 한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여는 소리에 흠칫하며 내가 있는 곳을 바라보아 얼굴을 바르게 볼 수 있었다. 잘 정돈된 검은색 긴 생머리에 옆머리에는 푸른 색 별 모양 머리핀을 하고 있었으며 검은 눈동자는 작은 눈임에도 불구하고 강아지처럼 해롭지 않은 눈웃음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었으며 흰 얼굴이였지만 확실하게 핏기가 돌고 있어 건강해보였다. 1학년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2~3학년이라고 생각 될 만큼 성숙미라는 것이 느껴지는 그 아이는 가방은 의자 뒤에 매어둔 채 책상 위에 책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니 내가 오기 전까지는 책을 읽고 있었던 듯 했다. 내가 놀란 표정으로 멈춰있으니 그 아이는 내가 왔다는 걸 알아챘으니 관심이 떨어졌는지 다시 책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할 일이 친구를 사귀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는걸 다시금 깨닫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손으로 살짝 뺨을 두드렸다. 그러자 만약 처음 본 이 아이와 친구가 된다면 첫 날부터 친구를 사귀고 시작하는게 아닌가? 그렇다면 신학기 1학년의 고민은 첫 날부터 문제 해결이잖아!! 같은 생각을 하며 그 아이의 옆 자리에 똑같이 가방을 의자에 걸어둔 뒤 어깨를 톡 톡 손으로 두드렸다. “혹시 너도 1학년 1반이야?” 그 아이는 자신에게 말을 걸지 몰랐던 듯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응, 너도 우리반인가보네” “맞아, 근데 너는 왜이렇게 오늘 일찍온거야? 학교는 8시 20분까지 오는건데 지금은 7시 45분인걸, 엄청 빨리온 거잖아, 혹시 이유라도 있어?” 내가 말을 쏟아내자 그 아이는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대답해주었다. “나는 이 근방에 살기도 하고 어제 새벽에 읽다 만 책이 있어서 그거를 읽으려고 일찍이 왔어” “그렇구나! 동신동 사람인가보다 신기해! 아 내 이름은 월양이야 주월양 그래서 그런데 혹시 네 이름이 뭐야?” “위묘성! 성이 위고 이름이 묘성이야, 이름이 좀 특이하긴 한데 듣다보면 외우기는 어렵지 않을거야” “음! 위씨도 있구나 뭔가 위씨라고 하니까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거 같다” 나는 순간 말을 뱉은 순간 묘성이라는 그 여자아이의 눈이 나를 살짝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차, 또 말실수를 한건가. 평소에도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말로 질러버리는 편이라 항상 주의에 주의를 했지만 첫날부터 또 실수를 해버린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묘성이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응 신기하지, 그건 그렇고 앞으로 잘 부탁해 월양아” 라고 말했다. 분명히 말투 자체는 밝았지만 말씨의 끝부분이 건조하고 음이 내려간 것으로 보아 대화를 더 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아 ‘나도 잘부탁해’라 말하고는 서둘러 교실을 나왔다. 이전에 아빠 차를 타고 나중에 가게 될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겉으로는 둘러본 적이 있지만 안에서 이렇게 자세히 둘러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학교는 1학년 1반부터 7반까지 7개 반에 반마다 26명 정도의 학생이 배치되는 듯 하였다. 전체 건물 자체는 흰 시멘트와 옅은 황토색 타일로 펼쳐진 평범한 고등학교의 느낌이 났다. 그저 벽을 새로 바른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옅은 시멘트 향기가 났지만 새롭다는 느낌도 들어서 그럭저럭 맘에 들었다. 2학년이나 3학년 교실은 내가 가보기엔 아직은 두려움이 앞서기에 2층만이라도 둘러보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1반을 기준으로 쭉 앞으로 향하면 5반까지는 쭉 왼쪽에 교실이 배치되어 있었고 나머지 두 교실은 5반 옆에 있는 계단에서 앞으로 쭉 가면 과학실과 함께 있었다. 과학실의 간판은 바뀐지 얼마 안되었는지 반이 쓰여진 다른 간판들보다 더 빳빳한 종이가 껴 있었다. 과학실의 내부는 잠겨 있어 열지는 못했지만 자물쇠만큼은 기존에 남아도는 것을 썼는지 군데 군데에 녹이 슬어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는 반으로 돌아오는 길에 처음 올라온 계단 앞에 1학년 교무실이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시계는 벌써 8시를 가르키고 있는 다는 것을 보고는 얼른 마지막으로 구경갈 1학년 교무실로 향했다. 우리 학교 교무실은 학교 본관이랑 앞쪽으로 붙어있는 별관에 층마다 있는데 1층은 교장선생님이 계시는 교장실 등과 행정실 등이 있으며 2층, 3층 4층으로 올라가면서 각 층에 맞는 학년 교무실이 존재한다. 교무실의 내부를 둘러보기엔 1학년 치고 너무 비행적으로 보일까 몰래 교실 문 위에 뚫려있는 부분으로 까치발을 들고서 바라보니 머리가 빈 40대 후반 쯤 보이는 선생님, 주름이 살짝 지어계시고 꽃무늬에 하늘거리는 옷을 입으신 여선생님 그리고 새로 부임하셨는지 각이 진 정장을 입고 온 남자 선생님과 하얀 맨투맨 상의에 컴퓨터로 뉴스를 보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보였다. 저분들 중 누가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될지 모르지만 나와 같이 새로 이 학교에 온 거 같아 보이는 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서로 잘 모르기에 학교 생활 동안 알게 된 이야기들을 나누는 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막 학급회의에서도 선생님도 먼저 “오늘 회의 주제에 앞서서 궁금한게 있는데 여기 매점은 혹시 몇시에 여는지 아는 사람?” 같은 재밌는 농담도 할 것 같다싶어 기대가 되었다. 슬슬 다시 자리로 돌아가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엊그제 머리를 새로 자른 듯한 짧은 투블럭에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인지 모를 후줄근한 교복을 입은 남학생 한명이 핸드폰을 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2층에서 교실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아 1학년임이 분명했다. 평범한 남학생인가 싶어 별 신경을 안쓰고 나도 반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그의 뒤를 따라간 순간 그의 가방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가방 끈에 자그마한 병아리 인형을 3개 정도 달아둔 채 가방 뒤편에 햄스터 모양 sd 캐릭터 스티커와 사막여우가 하품하는 스티커들이 초보 운전자들이 자동차 뒤편에 붙이는 스티커들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나는 순간 넋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혹여나 저 아이가 우리반이면 대체 어떤 아이일까 궁금하여 그 아이가 어디까지 갈지 발소리를 따라 쭉 이어가보니 그 학생은 문 앞에서 작게 가슴 앞에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더니 문을 열고 조용히 3반으로 들어갔다. 작은 동물들을 가방에 두르고 다니는 천주교 신자라니 나중에 한번쯤 꼭 말걸어봐야지 다짐하고 나도 교문을 열었다. 반 안에는 묘성이만 있던 전과는 다르게 10명 정도가 도착하여 있었고 그 중 몇 명은 같은 학교를 나왔는지 벌써부터 이야기꽃을 피워나가고 있었다. 내심 부러웠지만 이제부터가 학교 생활 시작이니 나도 곧 저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다짐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놨던 자리에 다시 앉으니 아직 묘성이 옆에는 같이 이야기하는 친구가 없음을 깨달았다. 오호라, 그럼 내가 먼저 이 아이와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정복감이 들어 얼른 이 아이와 다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아까의 결례가 있었던 만큼 나는 우선 입학식이 마무리 된 뒤에 다시 묘성이에게 이야기를 걸어보자 생각했다. 아침부터 별 일이 많았지만 앞으로도 더 다양한 학창 생활이 나에게 펼쳐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벌써부터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