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를 이끌고는 정말 쉬지도 않고 수영을 했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온전히 수영에 집중한 것처럼, 앞만을 바라보고 몸을 움직였다. 쓸모없는 동작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팔을 휘두르고 발을 내젓는 동작에서 일종의 신성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양 손으로 튜브를 꽉 쥐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수영도 할 줄 모르는 본인이 어떤 행동을 하던, 그녀에겐 방해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튜브에 매달리기가 익숙해졌을 무렵, 그는 한 손을 튜브에서 때어내고는 슬그머니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 헛웃음을 치며 머리를 내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망가져버린 시계가 아닌가. 아무리 정신을 집중하고 시계를 들여다봐도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다. ‘대체 왜 이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거야’ 그는 머릿속으로 생각하고는 다시 양 손으로 튜브를 붙잡았다. 그녀는 여전히 기계처럼 수영을 하고 있었다.
섬이 보이기 시작한 건 고장 난 시계가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말대로 섬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곳이었다. 나무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생명채도 일절 보이지 않았다. 뾰족하게 솟아있는 돌과 조금의 모래, 그리고 새 몇 마리. 섬은 오직 그런 것들로만 이뤄져 있었다.
그녀가 섬 위로 올라서자 새들은 푸드덕거리며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깍 깍 거리며 섬 위를 날아다녔다. 여긴 우리 구역이야! 어서 꺼져! 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경고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몸 위의 튜브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그런 뒤 모래사장에 대자로 누워 가쁜 숨을 몰아셨다.
그는 자리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머리를 조금만 돌려도 섬의 각 극단이 보였다. 바다 위를 수영하면서―정확히는 그녀에게 끌려가면서―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의 기대를 걸어봤지만 역시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작은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말했잖아.” 그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섬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곳이라고.”
“그래…… 절실하게 알 것 같네.”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멍하니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시계는 10시 2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손목시계를 풀어 한 손에 쥐었다. 깨진 유리 사이로 바닷물이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는 조금 고민하다가 이내 손목시계를 바다 위로 힘껏 던졌다. 첨벙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시계는 가라앉았다.
“분명 후회할 텐데.”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모래사장에 대자로 누웠다. 서늘한 바람이 한차례 그의 몸 위를 스쳐갔다. 그는 몸을 움츠리며 하늘을 바라봤다. 샐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별이 보였다.
“이제 어쩔 거야?” 그가 별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 어쩔 도리가 있을까? 술이나 마시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그런 거지.” 그녀 주머니에서 맥주캔을 두 개 꺼내며 답했다.
“바뀐 게 하나도 없네.”
“일단 땅에 몸을 맞대고 있긴 하잖아.”
“그게 중요한 거지?”
“그럼. 적어도 상어를 만날 일은 없잖아.”
“그리고 물고기도.”
“그렇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그녀는 맥주를 마시고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직장 생활에 대해,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에 대해. 그녀는 삼일 전에 이 섬에서 표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친구가 운전하는 경비행기가 바다 위로 불시착하고, 그녀는 그 충격으로 비행기에서 튕겨져 나왔다.
“마치 용수철처럼, 잠시간 몸이 붕 뜨더니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지. 일순간 첨벙 하는 소리가 귀 바로 앞에서 들렸고, 난 잠시 정신을 잃었어.” 그녀가 오른손을 위로 잠시 들어 올리더니, 땅바닥으로 내다 꽂았다. 그녀의 손을 중심으로 바닥의 모래가 출렁이며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니까, 저런 모양 이었다 이거지. 난 속으로 생각하며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의 눈앞에 보이던 건 짙푸른 물 뿐이었어. 그 위로 생선 몇 마리가 길을 잃어버린 외계인을 관찰하듯 나를 바라보며 유영하고 있었고, 해초 같은 것들이 바다 속을 힘없이 떠다니고 있었지. 슬쩍 머리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은색의 경비행기 몸체가 수많은 기포를 뿜어내며 천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어. 유리 너머로 친구의 얼굴이 보였는데 정신을 잃었는지 전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더군. 친구의 긴 머리가 위로 솟아 경비행기의 윗유리에서 하늘거렸고, 입이나 코에서 작은 기포들이 친구의 생존을 증명하듯 이따금 튀어나왔어. 난 입을 벌리고 소리쳤지. 어서 정신을 차려! 거기서 빠져나오란 말이야! 하지만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어. 한 움큼의 바닷물만 입 안 가득 들어올 뿐이었지.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저 가만히 있다가, 이내 온 몸을 움직이며 수면 위로 올라왔어. 그러고는 멍하니 경비행기가 뿜어내는 기포를 바라봤어. 기포가 더는 올라오지 않을 때까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옅은 미소를 띄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뒤 경비행기에서 떨어져 나온 구호물품을 들고 이 섬까지 헤엄쳐왔어. 사실 이 섬으로 헤엄쳐 온 것도 아니야. 그냥 아무렇게나 몸을 움직였는데, 이 섬이 보였다고 말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몰라. 아무튼 그렇게 이 섬에 도착해서 멍하니 삼일을 보냈지. 구호물품 상자를 열어서 안의 물건을 모래사장에 쫙 나열하고는 필요에 따라 왼쪽 오른쪽으로 나눴어. 사용 방법이 적힌 용지와 간단한 모스부호가 적혀있는 작은 소책자를 정말 닳아버릴 때까지 읽고 또 읽었어.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흐린 눈으로 바다를 바라봤어. 그리고 울었지. 굳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작은 소리로 울었어. 내가 왜 그랬을까? 어차피 사방이 뻥 뚫려있고, 사람도 없었으니까 마음껏 큰 소리로 울어도 됐을 텐데.”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맥주캔을 기울였다. 하지만 맥주는 남아있지 않았다. 텅 빈 캔 속에서 희미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캔을 모래사장 위에 올려놓고 정면을 바라봤다. 정말 질릴 정도로 짙푸른 바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너를 만난거야.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가라앉아버린 크루즈선의 아마도 유일한 생존자.”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그가 답했다.
“나도 알아. 실제로는 실망했는걸.”
“뭐?”
“그야 그렇잖아. ‘가라앉은 크루즈선의 유일한 생존자’라기엔 너무 평범하잖아. 수영도 못하고.”
“수영을 못하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잘하면 분명 도움이되. 남의 튜브를 잡고 매달리듯 움직일 필요도 없고.”
“그건…… 그렇지.” 그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정말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네.”
“너무 그렇게 풀죽지는 마. 기회가 되면 수영 정도는 가르쳐줄 수 있어. 아까도 말했지만, 나, 수영을 꽤 잘하는 편이거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습관적으로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곳에 더 이상 시계는 없었다. 시계는 지금쯤 바닷물을 잔득 머금은 체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중일 것이다. 어쩌면 배고픈 생선의 뱃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똑 딱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시간을 역류하면서.
“정말이네.” 그가 말했다.
“?”
“벌써 후회하고 있어. 시계를 바다로 던져버린 거.”
“말했잖아. 분명 후회한다고.”
“어차피 고장 난 시계였는데 말이야. 시간도 거꾸로 흘러가고, 움직임도 느리고.”
“그럼에도?” 그녀가 물었다.
“응. 그럼에도 말이야.” 그가 모래사장 위의 맥주 캔을 쥐어들며 말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은 조금 감성적이게 변하나봐. 그깟 시계가 뭐라고.”
“흐음……” 그녀가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3년 동안 차고 다닌 시계였어. 입사선물로 친구에게 받은 시계였는데, 그렇게 이름 있는 브랜드는 아니었어. 그래도 외견은 꽤 마음에 들었지. 착용감도 편했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맥주 캔을 바다 위로 힘껏 던졌다. 그러고는 손을 털었다.
“이것도 후회할까?” 그가 물었다.
“아니. 맥주 캔에 후회하면, 그건 정상이 아닌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