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날개가 났다.

"뭐야 이거."

일어나보니 허리 쪽에 꽤 커다란 날개가 돋아있었다.

"어이가 없네"

셔츠를 입으려 했지만 날개가 거치적거려 대충 맨몸에 패딩을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날개 때문에 패딩이 들떠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지금 시각은 오후 3시, 서둘러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인천 4센터 가는거 맞죠?"
"네. 전화번호 찍고 타시면 됩니다."

원인재역 앞에는 새벽임에도 버스가 줄줄이 서있었다.
다 나같이 가엾은 노동자들을 태우는 버스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도,
자격증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팔다리만 달려있다면 물류센터에서 일할 자격은 충분했다.

"처음오신 분들은 이쪽으로 오시고 와보셨던 분들은 PDA 받으시고 업무 시작하시면 됩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부턴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귀찮다던지, 하기 싫다던지 하는 잡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여기 갇혀있어야할 10시간이 말그대로 지옥이 된다.

"삑"
"삑"
"삑"

센터내에선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일어 거의 없다
들리는 경우엔 대부분 좋은 일이 아니다.

굳이 입을 열 이유도 없고
그냥 조용히 내 할 일을 하는게 좋다.

# # #

"달칵, 치익!"

일이 끝나면 전철역 앞 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를 하나 뽑아마시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퇴근 버스를 타고 역 앞에서 내리면 문이 열리기 까지 1시간 남짓의 시간이 남기 때문에 그냥 앞에서 죽치고 앉아 기다려야 한다.

"춥다.

문득 등에 난 날개가 생각났다.
10시간 넘게 패딩에 짓눌려서 그런지 날갯죽지가 뻐근했다.

멍하니 계단에 앉아 있는데 뒤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역이 열리는 소리겠지만 첫차까진 시간이 있을 것이기에 그냥 더 앉아있기로 했다.

"어으 춥다! 춥죠? 그죠?"
"아..네..."

한 여자가 내 옆에 와서 앉으며 말했다.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였다.

이 시간대에 역에 오는 사람은 대부분 나처럼 피곤에 찌들어 있는 부류였고
다른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은 없었기에 깜짝 놀랐다.

뭐지 장기밀매업자인가

"혹시 학생은 요즈음 무슨 생각하면서 살아요?"

사이비 종교구나

"...뭘 생각하면서 살아요. 사는 거 그냥 사는거지."

난 옆에 앉은 여자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충 내뱉었다.

"그럴 것 같더라, 앞으로는 생각 좀 하면서 살아요. 날개도 뭣도 없으면서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하지말고."
"...!"

난 깜짝 놀라 여자쪽을 쳐다보았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며 자리를 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