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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학기말이다 보니 과제와 프로젝트가 밀려서 할 것들이 많아지네요.
지난화들이 이전페이지로 넘어가서 이제부터 링크를 걸겠습니다.
이전화들을 먼저 보신 후에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봄비 #1

봄비 #2





나는 공중에 떠있었다.



사실은 떠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어깨에 빈틈없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남자의 어깨는 여전히 넓고 단단했다.



그 때
'지민아'
하고 그가 나를 불렀다.



'나 여기에 있어'
크게 대답했지만
남자는 듣지 못했다.



나는 남자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고
그가 좋아했던 영화의 제목을 외쳐보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와 그의 어깨 사이에 빈틈이 생겼고
아주 멀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가는걸 보면서
나는 희미하게 남아있던 몸을 지워버렸다.



- 푸른밤, 그리고 정엽입니다. 꿈일기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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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굿모닝~"

"으음..."



여느때와 다름없이 시끄러운 알람소리에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든 생각은
오늘이 토요일이었으면 좋겠다는거였다.
지난 주말의 기억들은 모두 꿈이었다고.
기분 나쁜 악몽을 꾸었을 뿐이었다고.



하지만 핸드폰 액정에 선명하게 써져있는
'월요일'이라는 글자와
아직 지우지 못한 채로 남아있는
그녀의 마지막 메세지에
나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영부영 일어나 학교에 가려다가 난 다시 털석 주저 앉았다.



'맞다. 오늘부터 시험기간이지.'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고
다시 냉큼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군대가기 전 망쳐놓았던 학점을 어떻게든 수습해보려고
지금까지 매일 열심히 해왔다.
원래대로라면 난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겠지.



그래도 오늘만큼은,
오늘 하루 만큼만은,



그냥 쉬고 싶었다.



어제 너무 긴 하루를 보내서였을까.
혜정이를, 주말의 일들을 생각할 새도 없이
다시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잠을 자고 있었을까.
귓가에 알람이 아닌, 하지만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띠링, 띠링"



잠을 방해받은 나는
신경질적으로 메세지를 확인했다.



-00은행 10주년 기념 고객사은 이벤트!
......



"뭐 거지같은..."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고 메세지를 지우려는데
보낸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5시 30분?'

시간과 함께 어제의 약속이 떠오르면서 나는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6시였지 약속이. 젠장...'



확 치미는 짜증을 누르면서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 옷이나 걸치고
삐친 머리는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나가려는데
문득 현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어제부터 깎지 않아 거뭇거뭇한 수염,
목이 늘어난 스웨터,
엎드려 자서 부어있는 눈에 껴있는 눈꼽은 양념.
서울역 노숙자가 한명 서 있었다.



'하아... 이건 그래도 좀 아닌거 같다.'



핸드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한 15분정도 늦을 것 같아.
교수님하고 면담하고 있는데 더 늦게 끝날거 같네.-



거짓말을 하면서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이와중에도 어떻게든
이미지 관리 하려는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어쨌든 난
간단하게나마 세수를 하고
옷도 나름 깔끔하게 갖춘 후에야
집을 나섰다.



헐레벌떡 택시를 잡아타고 가고 있는데 메세지가 왔다.
'정새봄'이었다.



-저 0000에 있을게요~-



'휴... 그래도 다행이다. 화내지 않아서.'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곧이어 걱정이 되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술 친구를 해달라고 불러놓고
심지어 지각이다.



'날 뭐라고 생각하려나.'



쓴웃음을 지으면서 택시에서 내려 전화를 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것이 나와 그녀의 첫 통화였다.



"여보세요?"

약간은 발음이 어눌한,
하지만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귀여운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어.. 어디있어?"

난 늦어서 미안한 마음에 멋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0000이에요. 오빤 어딘데요?"

늦은 건 개의치 않는 듯 물어왔다.



"나도 0000 앞에 있는데?"

"아! 그럼 제가 나갈게요!"

여전히 밝은 목소리의 그녀가 말했다.



"아니, 저기 내가 들어 갈..."

하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진 상태였다.



'아... 이런 분위기에서 위로 받을 수나 있나.'



난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그녀가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하얀 피부의 그녀가
생각보다 꽤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난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말했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새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얘기했다.

"아니에요. 오빠 오랜만이네요?"



여전히 밝게 웃는 그녀를 보고 조금 미안해졌다.
뜬금없이 불러내 신세한탄을 하려는 것도,
늦은 주제에 거짓말을 한 것도.



"그러게. 밥 먹었어?"



새봄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도 안 먹었어. 그럼 내가 늦었으니까 저녁 사줄게."

어차피 내가 불렀으니 사려고 했었지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말했다.



우리는 내가 평소에 자주가던 고기집으로 갔다.
나는 고기가 나오기도 전에 술부터 들이키면서
주말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술을 마시게 된 것 부터,
일어나보니 경찰서인 것,
일요일에 혼자 처리해야만 했던 많은 일들,
그리고 혜정이의 마지막 문자.



그녀는 거의 들어주기만 했다.
아니, 내 얘기에 집중해주었다.



술이 한 병쯤 들어갔을 때였나.
한참을 털어놓은 나는
내가 그녀를 술친구로 부른 이유를 비로소 이야기했다.



"너 혼자 부른건,

네가 시헌이랑 사귀면서

시헌이가 술 먹고 변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을텐데,

처음 봤던 모습도 그거였고.

그런데 그래도 잘 사귀던 모습이 생각나서.

너라면 뭔가 해줄 말이 있을 거 같아서."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난 사랑같은 거 잘 믿지도 않고,

막 죽고싶다 그런 생각도 많이 하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냥 저 술먹고 난리치는 시헌오빠라면

날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술 먹고 난리치는 모습에 딱! 반한거지 헤헤헤"



'이건 무슨 말도 안되는...'



이런 중2병 말기 환자 얘기나 들으려고 나온게 아니었다.
시간만 버렸다는 생각을 하고 술을 들이켰다.
술기운을 빌어서 좀 더 솔직한 마음을 꺼내었다.



"헤어지고 하루도 안 지나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아... 시험공부해야 되는데.'

그래도 사귀던 사람하고 헤어졌는데 어떻게 이 와중에

시험공부 생각을 하냐.

단 하루조차도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슬퍼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더라.

이런 내가 너무 싫더라."



말을 끝내자, 술기운이 올라왔는지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하려고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그녀가 아까와는 다른 말투로 말해왔다.



"솔직히 말하면

나 눈 위에 꼬맨 상처있는거 그것도 시헌오빠가 그랬던 거고

하도 그런식으로 많이 싸우고 그래서

친구들도 주변에서 계속 왜 만나냐고 헤어지라고 많이 그랬어...

그런데 나도 술 많이 마시고 실수도 하고 그랬고

몇 번씩 헤어지자고 했다가도 술 먹고 기억 안난 적도 있고

다음날 깨보니 시헌오빠한테 부재중 전화 수십통 와 있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계속 사귀게 된 것 같아."



조금은 횡설수설이었지만,
그녀가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에
고마웠다.



그리고
역시나 술기운 때문인지
나는 조금씩 혜정이의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위로는 못해줄지 몰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치유가 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