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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부터 보고 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수가 늘어나면 전편들의 링크를 띄우도록 하겠습니다.









봄비는 아련하다.



여름의 비는 너무 많이 와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가을의 비는 반대로 너무 오지 않아 사람들을 애태우고
겨울의 비는 하얗게 변해 하늘을 수 놓지만



봄비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내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그래서 더 아련한 연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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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책을 폈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연필을 들었다.



하지만
책 속에 나란히 놓여 있어야 글자들은 춤을 추었다.
춤추던 글자들이 모여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었다.



-병신-



책 속에서 춤추던 글자들이 머리 속을 뛰어다니기 시작할 때쯤
나는 서랍을 뒤져 남아있는 담배가 없나 찾아보았다.



'맞다... 끊겠다고 다 갖다 버렸지.'



포기하고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머리 속을 뛰어다니던 글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난 역시 쓰레긴가'

'혜정이는 날 왜 버려뒀을까'

'손... 엄마, 아빠한테는 어떻게 감추지'

'어제일이 못 견딜 정도로, 날 그렇게 바로 떠날 정도의 일이었나'



나는 그냥 이러다 차라리 잠이라도 들면 한결 나을거라 생각했지만
2시간이 지나도록
나는 전날 술에 만취한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보이지 않게
아주 멀쩡히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차 나는
가장 이기적인 생각만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 날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
다음주부턴 시험기간인데 공부도 손에 안 잡히잖아.'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자
나는 벌떡 일어나 마치 굶주린 사람처럼
핸드폰의 친구목록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내 손이 먼저 멈춘 곳은 가장 친한 친구들.
승재와 시헌이었다.



'하아... 연락해볼까'



-야 내일 술이나...-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은 문자를 치던 내 손을 붙잡았다.

'이 새끼들, 분명 헤어졌다 그러면 금방이라도 날 보고 낄낄거리고 웃을텐데...'



나는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진지한 위로를 받고 싶었다.
마음이 통하는 위로를.



다시 친구 목록을 뒤적이는데
한 명, 내 눈을 사로잡은 사람이 있었다.



'정새봄'



사실 난 그녀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만난 적이라고는 다섯번이 넘었나 넘지 않았나 가물가물했고
그나마 둘이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친구 시헌이의 여자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작년 봄인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갔던 쪼인트 엠티에서 였다.



그래 아마 처음 전화를 걸었던 것도 시헌이었을 거다.



"야, 너 쪼인트 엠티갈래? 00여대랑 가는건데 사람이 부족하다."



나는 그 당시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차리고 등록금이라도 벌기 위해 공사판을 전전하고 있었다.
당연히 여자는 사치였다.



"누구누구 가는데?"

심드렁하게 물어봤다.

"정욱이도 오고 진우도 올 거 같고..."



고등학교 졸업한지 어느 새 6년이 넘었다.
6년을 넘은 세월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
하지만 언제 들어도 익숙한 이름들은
쪼인트 엠티를 가는 것도 괜찮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갈게. 나 가도 되는거 확실하지?"

대타는 싫었다.

"어... 맞을 거야! 그럼 그 때 보자."



그리고 찾아 온 그 날,
쪼인트 엠티에서 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 그냥저냥 시간을 보냈다.
하나만 빼면.



평소에는 누구보다도 착하고 상냥하지만
술을 많이 먹으면 조금 폭력적인 성향이 되어버리는 시헌이가 일을 냈다.



"다 꺼지라고!"



자기가 맘에 들어한 여자 한 명을 붙잡고
시헌이는 방을 온통 휘저으며 친구들과 여자들을 경악케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고등학교 때 이후로는 거의 마주할 일이 없었으니
시헌이의 이런 술버릇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나 말고는 없었다.



엉거주춤하게 서서 시헌이를 말리려다가
친구들은 날아드는 주먹에 맞고, 물리기를 반복했다.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다.



'에휴...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나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다 나가. 내가 재워 놓을게."



그 때 부터 시헌이를 재우는 과정은 손쉽게 진행되었다.
나는 시헌이가 날 때리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먼저 시헌이가 잡고 있던 여자의 손부터 놓게 했다.



그 때 나는 시헌이가 잡고 있던 여자의 얼굴을 처음 제대로 보았다.



그녀가 바로 '정새봄'이었다.



쪼인트 엠티내내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그녀는
통제가 안 되는 시헌이에게 손을 잡힌채 울상이었다.



난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고
밖으로 내 보냈다. 친구들은 그녀를 부축했다.



대략 1시간에 걸쳐 시헌이를 재운 뒤
나 역시 피곤함을 느끼고 곧 이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틀 후?
나는 시헌이로부터 자기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는
사과와 감사의 인사와 함께
가장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 새봄이하고 사귀게 됬어."



마시던 술을 뱉을 뻔했다.

"뭐? 걔는 뭔데 너 그런걸 보고도 사귀냐."



시헌이가 그 때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냥 자신도 어이 없는지 웃었던 것 같다.



하여간에 이 알 수 없는 커플들은
그 후에도 술만 먹으면 치고 박고 싸웠다.
나는 그 장면을 직접 보기도 했고
주변을 통해서 너무도 자주 들어왔다.



'그래, 끼리끼리 잘 어울리는구나.'



나는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항상 싸우는데도
그런데도 잘 사귀는 것처럼 보이는 둘을 보면서
신기해 할 따름이었다.









'정새봄...'

나는 여전히 친구목록의 그녀 이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라면,
그렇게 많은 난장판을 다 받아주었던 그녀라면,
내가 무엇 때문에 지금 답답해하고 있는지 알아주지 않을까.



혜정이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도 알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날 진심으로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부어있는 오른손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면서,
문자를 쳐 내려갔다.



-혹시 자니?-



한 동안 답장이 오지 않자
나는 '그러면 그렇지. 친하지도 않은데...'
라고 생각하면서 잠을 청했다.



그 때였다.



"띠링"

-아직 안 자요~-



나는 다행이라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원래 친구들한테 하려고 했던 말을 했다.



-내일 나 술 친구 좀 해줄 수 있어?-



보내면서도 나는 '이게 되겠냐 멍청아'라는 생각을 했다.



"띠링"

-네~ 몇 시 쯤에요?-



황당했다.

'얘는 안 되는 게 도대체 뭘까?'



-6시쯤 00에서 보자.-

-네! 그 때 봐요~-



핸드폰을 덮고 몸을 눕히려는데 한 가지 빠트린 걸 깨달았다.



-시헌이나 승재한테는 말하지 말고-

웃음이 나는 자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누워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정새봄. 어떤 여자일까?'



나는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그녀를 생각하면서
잠시나마 어제의 일들에서 벗어나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오른손이 아픈 것도 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