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DTdQJ

웃유에 글 올리는 건 처음이네요.
조금 길지도 모르지만
꾸준히 올릴테니 계속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봄비는 무척 아름답다.
4월의 그녀는 이제 막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어
어쩔 줄 몰라 부끄러워하는 새싹들을,
5월의 그녀는 자신을 뽐내고 싶어 벌써부터 안달나 있는 꽃봉오리들을,
조용히 적셔준다.



봄비는 무척 현명하다.
자칫 나른해질 수도 있는 봄날의 오후를,
봄에 취해 지독한 현실을 잊어버린 사람들을,
차분하게 어루만져 준다.



나는 그해 봄... 그녀, 봄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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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아, 내가 많이 생각해봤는데
나 더 이상 너 못 만날거 같애.
내가 너한테 아직 말 안했는데
너 우리 선배들이랑 있을 때 실수도 많이 했고
술 많이 먹고 욕도 많이 했고
억지로 먹인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아무튼... 나 너 얼굴 더 이상 보고싶지 않다.-



-안 붙잡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사과할 기회 한번만 주면 안되? -



-제발 그러지 마. 나 너 보는 거 무서워.-



이게 혜정이가 나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였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나는 도대체 지난 주말 뭘 했던 걸까?



지난 토요일 오후,
여자친구 혜정이는 나에게 친한 동아리 선배들을 소개시켜 주고 싶어했고
동아리 선배들이 모인다는 청주로 내려갔다.
나는 그녀의 선배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선배들이 따라주는 술을 주는 족족 받아마셨다.
게다가 전날 먼저 청주에 내려와 술을 많이 마셨다는 혜정이를 위해
그녀가 마시려고 하는 술을 막는대신,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오히려 내가 더 술을 먹었다.



술이 너무 과했던걸까?
아니면 전날 과제로 잠을 못 자서였을까?
나는 평소보다 훨씬 빨리 필름이 완전히 끊어졌고
정신을 차린 나는 생전 처음보는,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속에서는 어렴풋이 본 기억이 나는
유치장에 들어가 있었다.



난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경찰관에게 사정을 물어봤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대답뿐이었다.



"조용히 잠이나 쳐자."



술이 확 깬 나는 오른손에서 무거운 통증을 느꼈다.
오른손은 차에 밟히기라도 한 듯 퉁퉁 부어 있었고,
온통 상처로 피 범벅이었다.
등줄기에 땀이 흘러 내렸고 당장이라도 여기서 나가고 싶었지만
나에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시 용기를 내서 물어봤다.



"죄송하지만 지금 몇시입니까?"

"새벽 4시"



다시 돌아온 경찰관의 차가운 대답에 등골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자는건지 마는건지 모르겠는 비몽사몽속에서
완전히 술이 깨 갈 무렵,
이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



나는 굉장히 바른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조용히 경찰관을 따라갔다.



날 데리고 간 곳은 문 앞에 '형사과'라고 적힌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죽점퍼를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사람에게 안내되었다.



'이 사람은 뭐지. 형사인가?'



한참 오만상을 찡그리던 남자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술은 좀 깼냐?"

"네"



모든 범죄자는 경찰서에서 공손해진다고 했던가.
나는 아직 내가 뭘 했는지도 몰랐지만 극도로 예의를 갖추고
혹여나 내가 이 남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신경썼다.



"나는 청주경찰서 강력계 김OO 형사고, 조서를 써야 하니까 묻는 말에 대답하면 돼."

"네"



김형사가 말한 '조서'라는 단어가 너무도 불길했지만, 나는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넌 어제 밤 11시 경에 0000 모텔에서
각종 기물을 파손하고, 소리를 계속 지르는 등 영업방해를 했어. 인정해?"

"뭐라고요?"

"뭐야, 하나도 기억 안 나?"



첫번째 질문부터
내가 충격받은 듯한 그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자
김형사는 나에게 어제 밤 자신이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봤던 것들을,
그리고 모텔 주인으로부터 들은 상황들을 나에게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내가 어떤 일행들과 함께 0000 모텔에 만취한 상태로 10시 반 경에 들어왔는데
내가 방에 가만히 있지 않고 자꾸 복도로 나와 기물을 부수고 소리를 질렀단다.
주인이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받고 넘어가려고 했으나
한번 더 밖으로 나와 소리를 지르자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이다.



나는 인생에 빨간줄이 그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이전에 이랬던 일이 없었기 때문에 받은 충격을 안고
조서를 작성하는 데 순순히 응했다.



조서를 다 쓰고 김형사는 나를 데리고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담배 피냐?"



거의 끊어가던 담배였지만 도저히 떨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던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게 담뱃불을 붙여주면서 김형사는
이제 모텔 주인과 합의를 봐야한다고 했다.
그래야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저... 그 모텔이 어딨는지도 모르고 저는 지금 제 가방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김형사는 핸드폰을 건네주며 말했다.

"여자친구한테 전화해봐."



난 깜짝 놀랐다.
갑자기 닥친 혼란스러운 상황속에 혜정이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내가 갑자기 그래서 많이 놀랐겠지, 혜정이도.'

전화를 해서 일단 사과부터 한 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들으려고 했다.
하지만 핸드폰 저편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아...'로 시작하는 대답만 들려올 뿐이었다.



"안 받아? 아직 7시니까 자나보지."

혜정이가 화가 났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형사가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래... 지금이 아침 7시였구나.'

나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과 초조속에 뛰었지만,
어떻게든 현실을 수습해야 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모텔에 가서 합의를 보고... 어떡하지 돈이 없는데...
아직 자고 있을 혜정이를 깨워서 사과부터 하고
돈은 친구한테 빌리던지 다음 달에 주겠다고 하던지 하면서 빌어야겠다.
모텔까지 가는 건...'



나는 물끄러미 김형사를 쳐다봤다.
김형사는 나의 시선이 뭘 뜻하는지 바로 안다는 듯
또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참나... 어차피 나도 지금 퇴근이니까 가는 길에 내려줄게."



한없이 찌푸리면서도 인정은 있는 사람이었나 보다.
나는 그렇게 차를 얻어타고
생전 처음보는 모텔 앞에서,
아니 제정신일 때는 처음보는 모텔 앞에서 한숨을 푹 내쉬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 유리 너머에는 한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다.
나는 경찰서에서 보다 몇배는 더 공손한 태도로 말을 걸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어제... 모텔에서 난리 친 사람인데 사장님이세요?"

아주머니는 아무 일도 못 봤다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대답하며 열쇠 하나를 내밀었다.

"사장님 11시는 되어야 나오세요.
어제 605호에 계셨으니까 들어가서 씻고 계시던지 그러고 기다리세요."



내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올라가려는데 아주머니가 다시 말해왔다.

"일행분들은 602호에 묵었어요."



'다른 방이었구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방으로 올라갔다.



내가 본 방의 모습은 생각보다는 엉망진창은 아니었다.
물론 모텔 주인의 입장에서는 가슴 찢어지는 일이겠지만
벽에 부착된 옷걸이 나사 하나가 빠져서 떨어져 있었고
화장실에 비치된 플라스틱 휴지걸이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복도에는 내가 어제 부순 것으로 보이는 정수기 손잡이가 나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안에 들어있던 것들이 반쯤 없어진 상태로
가방과 핸드폰이 바닥에 놓여있었다.



방 안에 들어와서 일까?
잊고 있던 오른손이 다시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왼손과 비교해 봐야지만 원래 형체를 짐작할만큼 상처 투성이에 부어있었다.
손의 통증이 심해지면서 나는 갑자기 엄청난 피로를 느꼈다.



'일단 좀 씻자.'



모든 걸 떠나 우선 쉬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샤워를 하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도대체 어제 나는 뭘 했을까, 그리고 왜 그랬을까 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는 가방에 있던 새 옷을 입고
602호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아직도 자나?'

생각없이 문고리를 돌렸는데 문이 홱하고 열렸고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황급히 핸드폰으로 받지 않는 전화를 걸어보았고,
답답한 마음에 메시지를 보냈다.

-확인하면 연락해줘-



잠시 뒤 답장이 왔다. 혜정이는 전화를 못 받은게 아니라 안 받은 거였다.

-나 친구 데려다 주러 천안에 왔어. 먼저 서울 올라가.-



나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만취한 날 다른 방에 혼자 넣어두고
난리치다 경찰에 잡혀가는 걸 보고만 있었고
가장 힘들 때 옆에 있어주지 않는 혜정이가 미웠다.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제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바보같은 생각을 한 나를 책망하며 방에서 모텔 주인을 기다리던 중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 승재였다.



"여보세요"

승재는 평소와 달리 놀란듯 한 목소리로 물어봤다.

"너 어제 괜찮았냐?"

"어제 뭐가?"



승재는 뭔가 알고 있는 듯 했다.
난 내가 경찰서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어제 일에 대해 뭘 아냐고 물어봤다.



"어제 혜정이가 나한테 전화했어 밤에"

"뭐라고 했는데?"

나는 이제 조금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생각했다.



"너 경찰에 잡혀간다고 말하더라."

"그래 다른건?"

나는 조급해하면서 물었다.



"다른 건 말 안해줬고, 근데 이상한 게 있어.
너가 경찰서에 잡혀간다는 얘기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하더라.
놀랐어."



나는 전화를 끊고 조용히 나머지 일들을 수습했다.
모텔 주인은 처음에 150만원을 합의금으로 부르면서 나를 경악케 했지만
이내 김형사가 나에게 예상 합의금이라고 말했던 30만원을 제시했다.
이번에도 승재가 도와줬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잃어버린 물건들 목록을 확인했고
도착하고는 바로 집으로 왔다.
그리고 시험 공부나 해야겠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머리에는 온통 딴 생각 뿐이라 침대에 누워있는데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훈아, 내가 많이 생각해봤는데
나 더 이상 너 못 만날거 같애.
...-



그렇게 나는 내가 무얼 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채 차였다.

오른손은 여전히 퉁퉁 부어 마치 괴물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