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팩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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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는 ‘Methotrexate（MTX）’ 두 번과 그보다 강한 항암제인 ‘Cispltin （CDDP）'과 'Adriamycin'을 같이 맞는 것을 한 묶음으로 1주일 간격으로 맞은 후 3주간의 휴식시간을 갖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총 6차례에 거쳐 진행되는 이 항암치료에는 2차 항암치료 이후에 수술도 포함되어있다고 했다.

약물치료 1차. 인은 미자와 함께 그가 입원할 병실에 들어섰다. 종양내과, 항암치료를 하는 병동이었다. 병실 안에는 노인들밖엔 없었다. 맙소사! 그중에 자신을 막내라고 소개하는 사람은 나이가 마흔이 더 되어보였다. 인은 사실 태어나서 그런 병실풍경은 처음 보았다. 병원에 가본 일이야 기껏해야 치과, 사고로 뼈를 다쳤을 때 갔던 정형외과정도밖엔 없던 터라 이런 입원실에 와본 경험 역시 없었다.

‘나도 참.’

인은 자기가 조금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이런 곳에서 내 또래의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신기한 거야.

환자 팔찌와 함께 입원 시 주의사항을 안내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을 때 미자는 이미 병실의 사람들과 말문을 텄다.

“그 집 애는 어디가 아파서 입원했어요?”

라든지

“아이고 애가 되게 활기차네요.”

라든지

“토마토가 항암에 그렇게 좋다는디 이거 애기헌티 먹여보시유.”

등등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웃으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오후 6시. 배식차가 지나가면서 병실에 밥을 나눠주고 있었다. 배식차가 우리 병실에 왔을 때, 인은 이상함을 느꼈다. 배식 받은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다른 환자들 대부분은 집에서 싸온 밥을 먹고 있었다. 심지어 밥을 먹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병원 밥이 맛없긴 하네.’

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인은 항암제를 맞기 시작했다. 간호사 두 명이 노란 액체가 담긴 팩을 들고 와 인의 팔찌에 붙은 이름과 항암제에 붙은 이름, 그리고 팔찌에 붙은 환자번호와 항암제에 붙은 환자번호를 차례로 소리 내어 읽어 두 개가 모두 일치하는지 확인한 후에야 항암주사를 놓았다.

인은 그 노란 액체가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을, 고무호스를 타고 흘러내려와 포도당 수액과 합쳐져 마침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천천히 보았다. 마침내 그 액체가 몸속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조금 떨었다. 하지만 약의 효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아서 인은 가슴에 링거를 꽂은 채로 그의 어머니가 다른 환자, 보호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잠들었다.



그날 새벽, 3시를 조금 넘었을까. 인은 어느 순간 자신이 구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역겨운 토사물들이 입에서 흘러나와 턱을 타고 환자복과 이불을 적시고 있었다. 인이 당황하는 소리에 잠에서 깬 미자가 다급히 간호사 호출버튼을 눌렀다.

인은 난생 처음으로 구토를 했다. 위에서 목구멍으로 역류하는....... 인은 기분이 나빴다. 첫 경험의 충격과 역겨운 냄새들이 그를 괴롭혔다. 빌어먹을.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다시 잠자리에 누운 인은 한 번 더 구역질을 느껴 침상을 박차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인은 결국 약물치료 첫째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는 아침나절이 되어서야 구역질을 멈췄다. 침대보를 갈았지만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7시, 어제 본 배식차가 다시 도착했지만 인은 아침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간신히 잠자리에 든 그의 머릿속엔 짜증만이 가득했다.

며칠 가지 않아 인은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놀 거리가 없는 까닭이었다. 병동 가운데에 위치한 휴게실에 텔레비전과 유료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텔레비전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전유물이었고 그나마 10시 이후로는 볼 수 없었다. 컴퓨터 역시 할아버지들이 인터넷바둑을 두느라 쓸 수가 없었다. 놀 친구도 놀 거리도 없어서 인은 하루 종일 잠과 밥 그리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종종 찾아오는 항암 부작용.

흥분은 가시고 권태가 찾아왔다.



6

약물치료 2차. 인은 부작용을 조심하고 있었다. 1차 치료를 하는 동안에 구토가 계속되었고, 입안이 잔뜩 헐어서 2차 치료를 시작할 때에야 간신히 아문 것이 그 까닭이다. 그리고 인은, 대머리가 되었다.



처음에 인은 머리칼이 빠져도 그냥 가만히 두려고 했다. 손으로 머리를 한 번 쓸 때마다 머리칼이 한줌씩 나와도 그는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가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까맣게 뒤덮인 베개를 봤을 때, 그는 머리카락을 깎기로 결심했다.



봄은 예전에 떠나고 여름이 찾아왔다. 여느 때와 같이 인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사진, 축제사진 등등. 그러나 사진차례가 대학교로 넘어가자 인은 더 이상 볼 것이 없었다. 사실 인은 대학교에 가서 친해진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같이 수업 듣고, 같은 시험을 보고, 학교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생활하는 '반'아이들과 친해지는데 익숙해진 그는 한두 수업에서 조금 만나는 사람과는 친분을 잘 쌓을 수 없었다. 인에게 있어서 그들은 그저 풍경에 불과하였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에 들으려는 찰나, 무언가 떠올라 인은 바로 옆 병실로 달려간다.
"승유형 또 자요?"

젊은 청년이 눈을 떴다.
"어, 인이냐?"

1주일 전 있던 병실에서 만난 승유 형이었다. 승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앉아 그를 반겼다. 승유는 인과 같은 골육종에 걸려 한 번 치료를 했다가 다시 재발해 입원한 환자로 또래 친구가 없던 인에게 유일하게 말문을 틀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형 어제 말이죠......."

인이 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려는 순간이었다. 인이 말문을 엶과 동시에 복도에서 퍼진 소리가 그의 입을 닫아버렸다. 언젠가 들었던 소리. 사람의 울음소리, 그러나 평소와는 다른 바로 그 소리였다.

잠시 그 소리가 병실을 채우고, 병실 입구 쪽에 앉은 환자의 보호자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러나 소리는 조금씩 들리고 있었다. 인은 무언가 떠올렸다.

"형 산책하러 갈래요?"

"아니, 나 지금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정말이었다. 승유는 이미 암이 폐까지 전이되어 운동하기 벅찬 상태였다.

"형은 만날 컨디션이 안 좋대. 그럴 때야말로 운동을 해야 하는 거예요. 자, 어서."

"그래, 산책하면서 인이랑 이야기도 좀 나누렴."

그의 어머니 역시 거들었다.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외휴게실 난간 앞 벤치에 앉아 승유와 인은 평소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본 영화, 퇴원 후의 여행 계획, 지루한 병원생활에 대한 푸념에서부터 자신들의 옛 이야기까지. 하지만 그 누구도 아까 들은 그 소리, 그 의미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승유의 눈빛이 말하지 않은 것을 대신 말해주는 듯 했다.

인은 이내 자신의 태도를 반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