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코끼리를 연구하자.
언제부턴가 위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계기가 무엇인지, 또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따위는 알지 못한다. 그저 갑자기, 잠수정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 듯 머릿속에 떠올라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계단을 타고 직장으로 향할 때도 마찬가지다. 코끼리를 연구하는 학자의 모습이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갈 때마다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다 계단을 완전히 다 내려가면, 학자는 ‘어떤 식으로든’ 코끼리에게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수 톤은 돼 보이는 코끼리의 발아래에 깔리기도 하고, 코끼리의 코에 치여 온 몸의 뼈가 바스라지기도 한다. 회초리 같은 꼬리에 난도질을 당하기도 하고, 상아에 찔리기도 한다. 덕분에―난 애초에 예정도 없었지만―코끼리를 연구하는 학자에 대한 꿈을 버렸다. 그도 그렇지 않은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그런 일은.
코끼리라는 동물이 가지는 압도적인 분위기 때문에 코끼리를 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어느 정도 크기를 가지는 동물원에만 가면 손쉽게 코끼리를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코끼리는 동물원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잘 받는 곳에는 십중팔구 코끼리가 있었다. 조금 더 돈이 많은 동물원 이라면 ‘아프리카 특별선’이라는 이름들 달고 사자나 기린, 표범과 같은 동물들과 함께 코끼리를 전시했다. 그중에서도 코끼리는 단연 상석이었다. 사자? 흥, 어림없지. 하는 태도로 사람들의 눈길을 독차지했다.
그런 이유로―라고 말하면 조금 건방져 보일지도 모르지만―난 코끼리를 꽤나 자주 볼 수 있었다. 동물원의 코끼리는 대부분 몸집이 가장 작은 인도코끼리였지만 재대로 코끼리를 관리하는 곳은 언제나 아프리카 코끼리를 내놓고 전시했다. ‘코끼리가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저 두 종을 면전에 대놓고 비교하면 꽤 놀랄 것이다. 일단 크기부터 차이가 있으니까.
어쩌면 난 코끼리에 대한 관심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자신할 수 있을 만큼 크지 않고, 말 그대로 어느 정도만. 하지만 그건 애정이니 사랑이니 그런 소모적인 감정이 아닌, 그저 코끼리가 가지는 엄청난 위압감에서 나오는 경배（?） 비슷한 것이다.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알 수 없는 자연현상이나 과학의 신비를 목격했을 때 그것을 경배하던 것처럼. 그런 걸 토테미즘이라고 하던가. 아마 그럴 것이다. 코끼리를 경배하는 토테미즘. 이렇게 붙여 말하면 조금 우습지만.
버스를 타고 직장으로 가는 와중에도 난 머릿속으로 그 문장을 되감는다. 그러니까, 코끼리를 연구하자. 그러니까/코끼리를/연구하자 어떤 식으로든 저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출근길의 버스는 온갖 사람으로 붐비고, 온갖 냄새와 소리가 섞인다. 이미 충분히 소란스럽고 어지럽다. 그러니 이곳에 코끼리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행여 머릿속이라 할지라도. 그러면서도 난 생각한다. 출근길에 코끼리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한명도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스스로가 괴짜처럼 느껴졌다. 난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출근 후 시계를 보니 조금 지각이었다. 10분정도. 이게 전부 코끼리 때문이다. 코끼리만 아니었다면 잠도 편하게 잤을 테고, 버스 안이 그렇게 답답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렇게 코끼리를 원망하고 있던 내게 직장상사가 다가와 닦달한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지금이 몇 시인지 아냐고. 우리에게 시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데,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난 머리를 숙이고는 연신 죄송하다고 답한다. 그러면서도 코끼리를 욕한다. 코끼리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속으로 중얼거린다.
직장상사는 한동안 그렇게 소리치다가 이내 지쳤다는 듯 거대한 양동이를 내민다. 그만 네 구역으로 가봐. 등을 떠밀며 말한다. 보보가 기다리고 있어.
머릿속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문장이 빠르게 반복된다. 그러니까, 코끼리를 연구하자. 마치 마약을 투여 받은 약쟁이처럼. 난 철문을 열며 생각한다. 난 코끼리를 연구하기 싫어.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코끼리 따위는 귀 한쪽도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코끼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보보가 그 특유의 거대한 코로 나를 반긴다. 아니, 나를 반기는 게 아니다. 내가 가져온 양동이를 반기는 것이다. 난 양동이 안에 든 온갖 체소와 과일을 보보에게 던져준다. 직장상사는 철문 밖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 ‘사육사가 지각을 하면 어쩌겠다는 거야. 코끼리가 얼마나 위험한 동물인데.’ 난 아무렇게나 흘려가듯 들려오는 소리를 주워듣는다. 그 사이에 보보는 양동이의 과일을 다 먹고는 기분이 좋은지 발을 구른다. 아프리카 코끼리다운 힘찬 발구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