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220716

더운 여름의 날씨였다.

평소 늘 약속이 있어 나갔던 주말과는 달리 오랜만에 집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나 약속이 있어 나갈 때마다 한편으로는 집에서 종일 쉬기만 하는 그런 휴식시간을 갖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이번 주말은 그런 나의 숙원을 풀어두는 주말이었다.

마침 토요일은 초복이었다. 기념일이라고 해야 할까 특별한 날이라고 해야 할까 딱히 그런 날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가능한 챙기려고 하고 있다. 그래야 뭐랄까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지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모처럼 음식으로 사치를 부렸다. 보통은 잘 사 먹지도 않는 치킨과 피자를 동시에 시켰다. 술은 시키지 않았다. 술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매우 좋아하는 편이지만 어젯밤에 이미 먹었기 때문이다. 왠지 오늘 또 먹게 된다면 주정뱅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들것 같아 조금 아쉽지만, 콜라와 같이 먹었다.

오랜만에 차려진 만찬, 인기 있는 드라마를 보며 먹다 보니 어느새 배가 불러 음식을 남기고 말았다. 당연하지만 최소 2~3인분의 음식인걸.

버리지는 않고 따로 보관하여 놓고 드라마의 남은 부분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드라마라 생각이 들었고 재밌게 보았지만, 딱히 내 표정의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 오늘 하루 동안 내가 표정의 변화가 있었던가? 문득 생각해봤지만, 오늘 계속 같은 표정으로만 지낸 것 같았다. 하긴 지금 이렇게 드라마를 보며 음식을 먹기 전에는 오늘 하루 계속 잠만 잤는걸.

그 외에는 엄마와 통화를 한 것 정보밖에 없었는데, 이때 너무 나의 힘든 이야기만 털어놓았던 것 같다. 엄마는 그 말을 잘 들어주었고, 통화를 끝낼 때쯤 너무 나의 감정만을 쏟아 낸 것 같아 미안하다고 여러 번 말하며 전화를 끊어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메시지로도 미안하다고 한 번 더 남겨놓았다. 아, 아마 이때 한번 좀 속상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그 속상한 기분을 얼른 떨쳐버리고 싶어서 초복을 핑계 삼아 음식들을 시켰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하고 시켰다. 생각보다 음식값이 비쌌으니까.

조금이라도 괜찮은 가격으로 시킬 수 없을까? 싶어 여러 번 장바구니에 음식을 담았다 뺐다 담았다 뺐다를 반복했다가 열어볼 때마다 돈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보기 싫었던 통장 잔고를 확인 후 그나마 마음을 놓고 음식을 시킬 수 있었다. 나름 아낀다고 노력을 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지 잔고가 좀 남아있었다. （사실 몇 가지 지출은 신용카드로 다음 달로 미룬 것도 있지만）

물론 과하게 시키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 하지만 나는 오늘 치킨과 피자를 동시에 먹어야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그저 그 이유 하나로 스스로와 타협하지 못하고 시킨 것이다. 다 먹지 못하면 내일 먹으면 되니까

꿈에 그리던 주말, 마음 한 켠 늘 바래왔던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 주말을 보내지 못했다. 심해 속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 나만의 시간을 가진 주말 같았지만 돌이켜보면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우울감에 눌려 보내온 주말이었다.

나는 언제부터 스스로 죄인의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일까. 왜 스스로를 마음의 감옥으로 밀어 넣은 것일까. 그리고 이제는 왜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서 묘한 안심을 느끼고 있는 걸까. 나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좋지 않은 상황을 돌파해 나갈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 시련을 헤쳐나갈 의욕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책임을 어딘가로 돌려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니라 타인을 탓할 수 없으니, 내 주변 환경과 나 자신에게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해진다. 그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이 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도 생각은 한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은 마치 늪과 같아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깊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 가기 때문이다. 차라리 술을 사 와서 마시는 게 나았을까 생각하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요즘에는 별로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지금 당장은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금방 게임을 멈추고 침대로 몸을 던지듯 누웠다. 그래 차라리 잠이 최고다. 잠은 정말 다른 생각이 들지 않게 해주니까. 예전에 잠시 불면증을 앓았던 적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금방 잠으로 도망칠 수 있다는 것에 크게 안심이 된다.

푹신한 침대와 부드러운 이불과 베개, 부드럽고 견고한 이 작은 성에서 잠에 들면 그 무엇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잠이 좋다. 그래서 나는 늘 졸리고 피곤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