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팩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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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바깥에서


1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아침.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서는 점점 여름 냄새가 나고 있었다. 화단 앞에 서있던 사람과 약간 부딪히며 인은 달려가고 있었다.
시간은 9시, 수업시작시간 역시 9시. 인은 이미 수업을 시작한 교실 뒷문을 슬며시 열었다. 자리를 슥 둘러보다가 인은 누군가의 옆자리에 앉는다. 익숙한 옷차림에 익숙한 얼굴.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까지 온 친구 상진이었다.
"역시 늦었잖아."
상진은 교수님을 힐끔 살피며 목소리를 죽였다.
"그러니까 아침밥 먹지 말고 오라니까."
인의 빛 좋은 핑계가 이어졌다.
"10분까지는 출석 인정되는걸 뭐."
상진은 피식 웃더니 그에게서 눈을 떼고 그에 따라 인 역시 자신의 앞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수업이 계속되면서 인은 그의 머리가 점점 아래로, 정신은 위로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인은 황무지 위에 서 있었다. 마른 땅과 잡초들, 비쩍 마른 나무들 사이로 나무만큼 비쩍 마른 염소와 양들이 보였다. 인은 찾고 있었다. 이 황폐한 곳에서 황폐하지 않은 단 하나의 무엇을.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저 멀리 오아시스가 보이고, 그곳에 황소 한 마리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동경의 대상. 그는 나무들을 꺾고, 양과 염소들을 둔탁하게 가르며 나아갔다. 발에 걸리는 것은 차버리고, 손에 걸리는 것은 던져버렸다. 오아시스에 당도한 그는 황소의 등에 올라탔다. 그가 한숨을 돌리며 주위를 둘러봤을 때, 그가 지나온 길엔 황소들의 시체들과 부러진 나무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여있었다. 인은 자신이 올라탄 황소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황소는 점점 창백해지고, 그 크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쉬이 줄어들었다. 지진이 일어났다.

몸이 흔들리며 인은 잠에서 깨어났다. 부산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교실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상진이 인의 어깨를 흔들며 말을 걸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것이다. 그는 피곤한 듯 책상에 잠시 엎어져 생각을 했다.
'이제 오늘 할 일이 뭐가 남았지?'
머릿속으로 꼽는 일정에는 수업밖에는 없었다. 재미없어. 라고 생각하는 인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는 동아리활동도, 애인과의 달콤한 시간도 없었다.
'역시 재미없어.'
인은 짐을 챙겨 인파에 몸을 맡겼다.


2
그는 버스 안에서 아침에 꾼 꿈에 대해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그는 꿈 내용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했다. 개꿈을 꾼 거지. 잘 기억도 안 나는 꿈. 기분만 나빠. 그런데 내가 어딜 가고 있었더라?
병원 로비에는 사람이 북적거렸다. 한 달 전 발에 생긴 작은 종양을 제거한 그 병원이었다. 인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구급차 소리가 현관을 울리더니 곧 응급실이 부산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응급실로 향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링거를 팔에 꽂은 사람도, 코에 호흡기를 달고 휠체어를 탄 사람도 응급실을 보고 있었다.
"김 인 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는 진료실로 들어섰다.

진료실은 조용했다. 형광등 불빛과 작은 침대, 작은 의자와 의사가 있었다. 오늘은 제거했던 종양의 조직검사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발에, 그것도 뼈에 종양이 난 경우는 대부분 양성종양으로 간단한 수술이면 모든 처치가 끝난다고 했었다. 그랬을 터인데. 인은 의사선생님의 표정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의사는 낮은 목소리로 진단을 내렸다.
'결과가 좋지 않다. 여기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
의사의 심각한 태도와는 반대로 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여기에선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을 다른 곳에서는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지. 설령 그것이 악성종양, 암이라 할지라도 요즘은 암도 쉽게 치료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 괜찮겠지.

진료실에서 나오자 로비를 울리는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인은 응급실을 바라봤다. 침대위에 누군가 누워있었고, 침대보가 그의 얼굴 끝까지 올라가 있었다.
인은 누군가 죽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곧 계산대로, 병원 밖으로 나서서 다시 휴대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인은 그 울음소리가 인간이 아니라 마치 짐승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꿈에 대해서는 잊은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