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사람들을 유독 많이 만났다. 의도한 만남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낯선 이를 만나는데엔 당연한 소통의 어려움이 뒤따른다.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노력, 덧없는 물음과 농담, 그저 일상적인 공적 대화들...

그러다보면 몇몇은 나를 화나게 하기도 하고, 나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그것의 잘잘못은 아마 경우에 따라 다를 텐데, 그들이나 나나 내 잘못은 축소시키고 상대의 탓은 부풀리려는 것만은 동일하다. 기억나는 것을 꺼내보자면, 말을 웅얼거리면서 화내던 사람이 있었고, 제대로 설명을 해줘도 실수해놓고 내 탓을 해 화나게 만든 사람이 있었고, 인사태도가 별로라며 혀를 차던 노인이 있었다.

그들의 화는 별로 관심사가 아니다. 아마 내 화도 그들에겐 별로 관심사가 아닐 것이다. 좀 오래 가봤자 그날 친구나 가족과 오늘 이상한 놈을 만났는데~ 하며 털어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과 말은 휘발성에 기인한 것인지 배출 또한 쉽지만, 분명히 실존해서 누군가를 상처입힌다. 상처는 안타깝게도 휘발적이지 못하다. 누군가의 날 선 한마디는 단순한 슬픔과 고통을 넘어 한 영혼까지 살해하는 위력을 가진다.

우리들은 이 중요한 사실을 너무도 쉽게 잊곤 한다. 말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입밖으로 내뱉은 순간 그 뒤에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그 말의 실존 자체는 부정할 수 없게 된다. 분명 꺼낸 말은 소리로만 존재하고 금방 사라져버리지만, 그것을 꺼낸 목적의 사람이란 존재는 어떤 대화는 쉽게 잊을 수 있으면서도 어떤 대화는 지나치리만치 잊고 싶은데도 잊지 못한다.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은 역사와 위인이 증명하는 합리적이고 뛰어난 조언이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아주 간단하고 일상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범위와 방식은 다르지만 너무도 익숙한 연습법을 또한 안다.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와 카톡을 주고 받고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으며 내가 모르는 것을 인터넷에 물어본다. 그 모든 것을 한번에 적진 않았을 것이다.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말은 그리 할 수 없어도 글은 그리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또한 소중하다.

원한다면 다시 쓸 수도 있고, 필요한 부분만 고칠 수도 있고, 심지어 처음부터 아예 없던 것처럼 구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도 기존의 종이와 펜의 시대에선 귀찮고 번거로운 문제가 있었으나 다양한 자판의 등장은 그러한 문제도 불식시켰다. 키보드와 스마트폰과 찰떡궁합인 한글의 위대함도 이글에서까지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글로 대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대부분은 글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말처럼 다양하고 즉각적인 표현은 불가능하다. 단적으로 글을 읽을 줄 알아야만 소통이 되기도 하고, 오히려 글만의 한계로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잦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메신저보다 통화를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글은 많은 단점들을 수정 가능하다는 강력한 장점으로 말을 대체한다. 사내에서 굳이 메신저로 소통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사실 글을 고칠 수 있다고 한들, 사람들은 그에 큰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닌 듯 하다. 말의 휘발성을 간과하듯 글의 변동성은 쉽게 외면받는다. 고쳐서 낼 수 있는 글을 그냥 내버려 논란을 만들고, 질타를 받는 경우는 얼마나 많았는가. 수정할 수 있는 글을 빨리 수정하지 않고 방치하여 만든 문제들은 또 어떤가. 자기의 입장만 대변하려 쓰는 치사한 글들은 얼마나 범람하는가.

오히려 시대가 지날수록 글 또한 휘발성을 가진다고 착각하는 부류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세대와 커뮤니티, 스마트폰과 SNS등에 비롯된 여러 쟁점들은 보통 이런 부분에서 기인한다. 악플은 친구끼리 하는 뒷담이나 단순한 욕지꺼리가 아니라 개인을 파멸시키는 기록이다. 가짜뉴스는 동네에 국한되는 소문이 아니라 진실을 호도하는 못질이다. 문명의 발전은 말 이상으로 글을 매체화시켰기 때문에, 말실수보다 글실수는 더 빠르게 퍼지고 더 강하게 작용한다.

그래도, 글은 써야 한다. 우리가 말을 주워담을 수 없다고 입을 다물고 살지는 않듯이. 현대의 글이 많은 단점을 야기시킨다한들 글은 쓰여야 한다. 생각하고 말하라는 격언처럼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많은 훈련이 이루어져야 함은 숙명이다. 말보다 다행인 것은 글은 수정하는 습관을 들이는데에 큰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당장 써야하는 글은 많지 않다. 충분한 시간여유를 두고 고칠 수 있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글의 본질을 누리면서 시도해본다면 꽤나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고쳐서 쓴 좋은 글들이, 그 빛나는 장점을 더 발광시키는 앞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