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오늘도 퇴근시간 때의 도로는 역시나 온갖 차들로 도로가 빽빽했다.

차선을 갈아타며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도착하여 애썼지만, 그다지 큰 차이는 없었다.

차 창문 밖 1월의 하늘은 이제 붉게 변하다 못해 점점 까맣게 변하고 있었다.


- 오늘 약속시간에 맞춰 갈 수 있으려나? -


겨우 도착한 집 앞 아파트 주차장엔 평소에 잘 없던 주차 공간이 있어 약간이나마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승강기에 올라타자마자 민희에게서 전화가 왔고, 전화를 받으며 13층 버튼을 눌렀다.

승강기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들은 민희의 신경질적인 목소리 들려왔다.


“이제 나오는 거야?”

“아니.. 이제 집에 들어가는 거야..”

“뭐한다고 이제 들어가!”

“차가 많이 막혀서 빨리 씻고 나갈게.”


여전히 투덜대는 민희에게 괜스레 미안해져 웃음을 섞은 목소리로 달래주며 집 현관 비밀 번호 버튼을 눌렀다.


현관이 열리는 소리에 엄마는 현관 입구까지 마중을 나왔고,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는 내게 미소를 보이며 입모양만 보일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민희니?”


엄마에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고,

민희도 작게 말하던 엄마 목소리가 들렸는지 빨리 나오라는 앙칼진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앞치마에 촉촉이 젖은 손을 닦던 엄마는 다시 부엌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녁 먹어야지?”

“아냐. 엄마, 민희랑 저녁 약속 있어.”


내 방에 들어서서 책상 의자에 재킷을 벗어 두고, 흰 와이셔츠 소매를 걷으며 욕실로 향했다.

세수를 하는 중에 엄마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


“어제도 민희 만나서 늦게 들어왔는데, 안 피곤하니?”


세수를 하는 중이라 대답을 못한 채 가만히 씻고 있을 때 또다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술 마시지마. 그리고 언제 한 번 집에 오라고 그래라. 얘야.”


내가 기억도 못할 정도로 어릴 때, 아버지와 사별한 엄마는 오직 나 뿐이었다.

어릴 때 기침 한번을 해도 119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데려갈 만큼의 극성이었지만,

그 만큼 내게 지극 정성이었기에 나 역시도 엄마뿐이었다.

그런데 엄마 밖에 없던 내 가슴에 비집고 들어온 사람이 나와 곧 결혼을 할 민희라는 여자였다.

때로는 사랑스럽게, 때로는 앙칼지게, 어제는 상냥하게,

오늘은 도도하게 여덟 가지 색을 가진 팔색조 같은 여자였다.

그 매력에 푹 빠져 어느 순간 그녀와 결혼 약속까지 하게 되었다.

결혼 약속을 하게 된 계기가 됐던 것은 그녀가 반려견을 키우고 있었던 거였다.


엄마의 영향을 받아 나 역시 무척이나 동물을 좋아했다.


어릴 때 강아지 한 번 키운 적이 없었지만, 아주 옛날 엄마가 지금의 나보다도 더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 이야기를 내가 어릴 때 동화 이야기처럼 들려줬기에 항상 강아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항상 내게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악한 사람이 없다고 늘 말해왔었다.

어릴 때 엄마가 키우던 강아지는 마당에서 흔히 키우는 누런색의 강아지였는데,

새끼 때 데려와 엄마가 이름을 지어줄 정도로 너무 예뻐했었다고 했다.

눈이 엄청 커서 마치 송아지의 눈 같았고,

그 큰 눈을 바라보며 엄마가 지어 준 이름을 부르면

마치 몇 년을 못 보다가 만난 주인처럼 눈물을 글썽였다고 자주 회상을 했다.


엄마가 말한 그 강아지와 나는 이상한 공통점이 있었다.

아버지 없이 고생하며 나를 키워 온 엄마인걸 알기에 항상 가슴이 아파왔고,

그런 나를 엄마가 이름이라도, 혹은 우리 아들이라고 불러주면 나도 이상하게 눈물이 눈가에 고이곤 했다.

고등학교 때 또래 친구들처럼 한 번씩 반항심이 솟구쳤지만,

그런 반항심조차 엄마가 나를 나긋이 불러주면 울컥하며 눈물을 눈에 머금었었다.

욕실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거실로 향하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씻을 동안 구워 낸 계란 프라이를 작은 접시에 가져와 내게 내밀었다.


“배고플 텐데 이거라도 먹고 나가.”


엄마가 건네 준 접시를 들고 소파에 앉아 먹으려 하자 엄마도 내 옆에 앉아 내 먹는 모습을 보려했다.

젓가락으로 흰자를 떼어 입에 넣는 아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지,

엄마는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와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려는 지, 방안 책상위에 올려둔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들려왔고,

아마도 민희가 독촉하려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역시나 민희의 전화였고, 어디쯤인지 확인을 하려는 전화였다.


“응, 지금 가는 중이야.”


거짓말을 강요하는 민희의 물음에 기꺼이 거짓말을 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급하게 대문을 나서려는 등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이상하게도 갑자기 앞으로 못 볼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처럼 가슴이 찡하면서 눈물이 나오려 했다.

뒤를 돌아보니 엄마는 안방으로 들어가며 조급하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봐.”


잠시 후 안방에서 빨간 목도리를 들고 나오며 내 목에 감아주었다.

가까이서 엄마를 본 적이 언제인지 엄마의 얼굴엔 깊은 주름이 여기저기에 패여 있었다.


“우리 아들 춥겠다. 사랑해 아들.”


엄마가 빙긋 웃으며 말하는 중에도 나 밖에 모르는 엄마라서 그런지 가슴에 각진 돌덩이가 들어앉은 듯 무겁고 아팠다.


- 최근에 민희 만난다고 엄마랑 제대로 대화 한 적도 없었구나.. -

- 오늘까지만 민희랑 있고 내일부터 엄마랑 같이 시간 많이 보낼게요. -

-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 적적할 엄마에게 좋아하는 강아지 한 마리 사줄까? -


현관문을 열려다 갑자기 잠시나마 생각이 났던 엄마의 그 강아지가 떠올라 넌지시 물었다.


“엄마, 예전에 엄마가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는 어떻게 됐어?”

살짝 좌우로 흔들리는 엄마의 눈동자를 보는 중에 엄마는 내 곁에 다가와 목도리의 매무새를 다시 정돈하며 말했다.


“엄마도 어떻게 된지 몰라.. 죽었을 거야..아마도..”


당연한 말을 하는 엄마의 말에 피씩 웃어 보였다..


“당연히 지금은 죽었지. 엄마 어릴 때 강아지면 세월이 얼만큼 지났는데..”


엄마는 썩 밝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내 눈을 바라봤다.


“엄마가 어릴 때 너무 아픈 적이 있었는데, 병원비 때문에 외할아버지가 개장수에게 팔았다고 그러더라고..”


생각지도 못한 개장수라는 말에 피씩 웃자, 엄마도 내 얼굴을 보며 빙긋 미소를 짓고는 내 양뺨을 양손으로 따뜻하게 감쌌다.


그 느낌이 포근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습관처럼 두 눈을 감았다.

내 양뺨에서 손을 뗀 엄마에게 장난스레 투정을 부리듯이 말했다.


“엄마는 내가 아직 어린 애로 보여? 맨날 볼을 쓰다듬고! 나두 이제 30살이라고요.”


엄마는 내 투정에 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엄마는 네가 30살이든 40살이든 항상 내 아들이니깐.. 나가서 조심하고 잘 다녀와.”


빙긋 미소를 짓는 이 모습을 앞으로 평생을 가져가야 하는 마지막 모습인 것을 이때는 몰랐다.

아파트 입구에 나서니 짙은 어둠에 싸락눈이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고,

민희를 만나면 술을 마실 것 같았기에 큰 길로 나가 택시를 잡으려 했다.

눈까지 내리는 1월의 찬바람이 옷을 단단히 여미게 만들었고,

호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 택시를 기다리던 중에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발신번호를 보니 민희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오빠, 어딘데?”

“지금 가려는 중.”


미안한 투로 말하는 내게 민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제 나오는 거야?”

“응. 히.. 미안 빨리 갈게.”

괜스레 미안해져 억지웃음을 흘리는 내게 민희는 투정을 부렸다.


“나 기다리는 거 싫단 말야! 빨리 와.”

“알았어. 100만 세고 있어. 다 세기 전에 도착할거니깐.”


휴대폰 너머에서 민희의 꺄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100세고 안 오면 어떡할 건데?”

“음 그럼 100 더 세.”

“뭐야, 치.. 하여튼 빨리 와..”


민희의 독촉에 마음이 조급해졌고, 그 마음이 전해 졌는지 택시 한 대가 비상등을 켜며 내 앞에 섰다.

민희와 만나기로 했던 대학가로 가는 길에 택시 창밖으로 여전히 작디작은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고,

창문에 엉켜 붙어 녹아내린 물 사이로 가로등이 뭉그러져 보였다.

눈까지 오니, 차는 더욱더 막혀 10분 거리를 15분여지나 민희가 기다리던 대학가에 다다랐다.

민희가 기다리는 바리스타라는 커피숍이 눈앞에 보였다.

시멘트를 투박하게 발라 광택이 나는 투명한 피막을 입힌 것처럼 보이는 외벽 인테리어에

외등 대여섯 개가 달려 있고, 녹색으로 된 간판에는 영어로 바리스타라고 적혀있었다.


창가에 앉은 민희의 모습이 보였고,

내가 왔는지 아직 알아채지 못한 채 휴대폰의 시간을 보는지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커피 전문점에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내 얼굴로 덮쳐왔다.

문을 열 때, 문에 붙어있던 딸랑이던 작은 종소리에 날 발견한 민희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왜 이제 왔어!”


민희가 앉은 창가의 소파의 맞은편에 앉으니 민희는 팔짱을 낀 채, 얄밉다는 듯이 흘겨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미안, 대신 오빠가 맥주 사줄게.”

“맨날 술 마시려고 하고..”


투정을 부리는 민희를 달래려 웃어가며 농담을 던졌다.


“너도 술 좋아하잖아.”


내 농담에 민희는 웃기는커녕 심각한 표정으로 내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맨 정신으로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원하는 민희의 시선을 피해 민희가 마시고 있던 커피 잔에 시선을 두었다.


- 아마도 결혼 이야기겠지? -


민희는 결혼을 하면 요즘 여자들처럼 당연히 단 둘이 살기를 원했고,

난 홀어머니를 두고 따로 나가 살기가 싫었기에 소소한 의견차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민희 외에 다른 여자와 만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기에

어떻게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며 염려해 두고 있었다.

들이키기 알맞게 식은 커피를 민희는 한 모금을 살짝 마시며 옆에 두었던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빠, 나가자..”

“어딜?”

“아무래도 이런 서먹한 분위기 보다는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 좀 해.”


먼저 앞장서서 나가는 민희의 꽁무니를 따라가니,

민희가 커피숍 문을 열고 가만히 서서 싸락눈이 내리는 짙은 밤하늘을 보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제법 춥네..”


민희가 바라보던 밤하늘을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따라 쳐다보자 왼쪽 팔에서 민희가 팔짱을 끼며 살짝 기대는 느낌이 났다.


“오빠, 춥다. 빨리 딴데 가자.”

“진짜 술 마시러 갈 거야?”

“맨 정신으로는 오빠가 너무 말이 없잖아!”


민희는 내 왼팔에 팔짱을 끼운 채 총총걸음으로 걸었고,

이끌리다시피 같이 걷다보니 예전에 몇 번 갔었던 닭요리 전문점 앞이었다.

대학가의 겨울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거리도 한산하고, 예전에 붐비던 술집 안에도 조용한 음악이 들릴 정도로 손님이 몇 없었다.

창가의 4인용 테이블에 앉으니,

머리에 빨간 두건을 쓰고 청바지를 입은 주인 같은 아저씨가 웃으면서 메뉴판을 들고 왔다.


“어서 오세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민희는 메뉴판을 받아 쥐었고, 먼저 말을 붙인 아저씨가 민망할까 싶어 살짝 웃어 보였다.

테이블 옆에 주문을 받으려 서 있는 아저씨가 부담스러웠기에, 식탁에 붙어 있는 벨을 가리키며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메뉴 고르면 벨 누를게요.”


알았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다른 테이블을 두리번거리며 아저씨는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메뉴판을 한참 동안 양손으로 펼쳐 보던 민희는 여전히 메뉴판에 시선을 둔 채 내게 물었다.


“뭐 먹을 거야?”


-내가 투시력도 있는 것도 아니고.. 메뉴판은 니 손에 있다!-


속으로 혼자 투덜거리며 민희를 쳐다봐도 여전히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결국 민희가 고른 것은 닭튀김에 대파를 세로로 썰어 올려주는 파닭이라는 메뉴를 골라 맥주와 같이 주문
을 했다.

일상적인 몇 마디의 대화를 주고받을 때,

주문을 했던 안주와 3000cc의 생맥주를 앳되어 보이는 여자 종업원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민희의 맥주잔에 맥주를 가득 채워 주고, 내 잔에도 맥주를 가득 담았다.

민희는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답답했는지 건배도 하지 않은 채 맥주잔의 반 이상을 들이켰고,

나 역시 약간의 갈증을 씻으려 몇 모금을 입에 물었다.

먼저 맥주를 마신 민희가 내 목울대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오빠.. 나 사랑해?”


뜬금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민희가 먼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연 사랑하지.”

“그럼 우리 결혼하자.”


너무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에 내가 오히려 당황을 했다.

“그래.. 결혼은 하는 건데..”

“근데. 뭐?”

“민희는 나랑 단 둘이 살기를 원하잖아..”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결혼을 하면 처음 시작은 단 둘이 할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엄마와 같이 살아야 해..”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렇다는 거지..”


맥주를 들이키며 민희를 쳐다보니 내가 한 말이 못마땅했는지 콧날 위의 찡그린 주름 한 줄까지도 눈에 선연히 보였다.


지루하고 조용한 말싸움 끝에 서로가 약간씩 취했고,

어느 순간 민희는 내가 생인 선물로 사준 명품 백을 들고 술집 밖을 나갔다.


왠지 그냥 보내면 당분간 살벌한 냉전이 이어질 것 같아 재빨리 계산을 하고 술집을 나갔고,

내가 나와서 잡기를 바랐는지 생각보다 멀리 가진 않았다.


처량하게 보이는 민희의 뒷모습은 얼음부스러기 같은 싸락눈이 어깨에 쌓여 있어 더 쓸쓸히 보였다.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내가 바로 뒤에 있을 때 민희는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얇게 그어진 쌍꺼풀 아래에 눈물이 아랫눈썹에 걸려 있었다.


몇 마디만 더하면 그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를 것 같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 민희는 다시 뒤돌아서서 걸었다.

그 뒤를 일정거리를 두고 걷자 앞서 덜어가던 민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다시 생각할까?”


떨리는 민희의 목소리를 들은 나 역시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러고 싶어?”

“응.. 너무 지쳐 버렸어..”

“그렇게 우리 엄마랑 같이 살기 싫어?”

“나도 그냥 여느 여자들처럼 사랑하는 남자랑 단 둘이 알콩달콩 살고 싶을 뿐이야.. 그게 오빠였으면 했
던 거고..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인거야? 그러니 좀 생각을 해보고 연락을 할게 오빠..”


민희의 쓸쓸한 목소리에 나까지 쓸쓸해졌다.


“알았어..”


몇 걸음 걸어가던 민희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었고, 민희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니, 또다시 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이 후에 언제 볼지 모르니깐.. 우리 집까지 데려다 줘..”


서로가 아무 말 없이 나란히 10분 동안 걸었다.


그렇게 눈을 맞아가며 민희가 살고 있는 아파트부근의 공원을 지날 때, 민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여기서 부터는 내가 알아서 갈게.. 그럼 눈 오는데 조심히 가고..내가 연락할 때까지 연락하지마..”

“알았어..”


그렇게 민희와 헤어지고 뒤돌아서서 큰길로 나갔다.

민희가 했던 말이 계속 귀에 윙윙거렸다.

[나도 그냥 여느 여자들처럼 사랑하는 남자랑 단 둘이 알콩달콩 살고 싶을 뿐이야.]


눈이 오는 날에는 이상하게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다.

5분여 기다렸을 때 택시 한 대가 미등을 깜빡이며 앞에 섰다.

택시에 올라타고 집으로 향하려고 할 때 휴대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들렸고, 휴대폰을 보니 민희의 번호였다.


『오빠 지금 내 뒤에 자꾸 누가 따라와. 나 무서워』


위급한 것 같은 문자 메시지에 민희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질 않았다.

택시의 행선지를 민희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말하고 차를 돌렸다.

민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서서 다시 한 번 민희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왠지 집에 들어갔을 것 같지 않아 조금 전 우리가 헤어졌던 곳으로 주택가를 가로질러 주위를 살피며 걸어갔다.


아파트 단지 옆은 주택가가 열로 나란히 지어져 있었고,

밤늦은 시간의 가로등은 희미한 불빛에 눈까지 내리니 그리 밝지가 않았다.


먼발치에 우리가 헤어졌던 작은 공원이 눈에 들어왔고, 민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혹시 집에 들어간 건가? -


다시 한 번 전화를 하니 이번에는 휴대폰이 꺼져있었다.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공원에 다다랐을 때, 공원 안쪽의 나무 벤치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 내리는 밤의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공원 안은 음침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안쪽으로 들어서니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덩굴식물 안쪽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때 뒤통수에서 묵직한 느낌이 들었고 땅바닥이 내 눈앞으로 올라오듯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온 몸에 힘이 없어 엎어진 채로 눈 만 멀뚱히 떠 있으니,

짧은 스포츠머리의 사내가 민희의 입을 막고 나를 보며 음침한 웃음을 베어 물고 있었고,

민희는 겁에 질린 채 내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등 뒤에서 빨간 모자를 눌러 쓴 덩치가 큰 남자가 엎어져 있는 내 옆을 지나면서

붉은 색 물결 모양의 작은 보도블록 돌덩이를 바닥에 던지며 민희 앞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쓰러져 있으면 민희가 험한 꼴을 당할 것 같아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절로 꺾였고, 그 모습을 보던 빨간 모자의 사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피씩 웃으며 다시 내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이 새끼 대가리 보통 대가리가 아니네. 대가리가 돌대가리인가 봐?”


앞에 걸어오는 빨간 모자가 비웃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휘청거리는 다리에 겨우 힘을 주어 허리를 숙인 채 어깨로 빨간 모자의 복부를 밀치며 허벅지를 잡았고,

그 상태로 앞으로 걸어가며 밀치니 빨간 모자는 엉덩방아를 찍었다.

그 모습을 보던 민희의 입을 막고 있던 스포츠머리는 민희를 놓은 채 내게 다가와 다시

내 머리를 발로 가격했다.


민희는 소리를 지르며 공원 밖으로 달아났다.


“사람 살려요!”


스포츠머리가 민희를 잡으려 그 쪽으로 달려가려고 할 때, 다리를 양손으로 꽉 잡았다.

엎어져 다리를 잡고 있는 사내는 내 머리를 계속 때렸다.


“이거 놔! 이거 안 놔?”


민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주택가를 소리 지르며 달려갔고,

주위의 주택가에서 불이 하나씩 켜지니 두 사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지 내 손을 떼어놓고 재빨리 도망을 갔다.


민희가 무사히 도망친 것을 확인하고 사내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온 몸에 힘이 풀려 엎어진 채로 눈을 감았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작디작은 눈의 무게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누가 흔드는 느낌에 눈을 떴고, 민희가 놀란 눈으로 나를 흔들고 있었다.


“오빠 괜찮아? 내 말 들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기가 너무 힘들어 눈으로 괜찮다는 듯이 깜빡거렸다.

머리에서 내 눈가로 끈적끈적한 느낌이 흐르는 것을 이제야 느껴졌다.

머리에 둔탁한 느낌이 나는 곳을 민희가 손으로 막고 있는 것을 보니 피가 제법 많이 흘렀던 것 같았다.

눈이 떠지지 않아 가만히 감고 있으니 저 멀리서 경찰차 소리인지 구급차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왔고,

누가 나를 드는 느낌에 눈을 살짝 뜨니

주황색옷을 입은 사내 둘이 나를 들어서 간이침대에 눕히고 구급차 안에 밀어 넣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아픈 것보다 그냥 너무 어지러웠다.

주황색 옷을 입은 사내가 민희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우리 오빠 괜찮죠? 빨리 병원가면 아무렇지도 않은 거 맞죠?”


민희가 제법 당황한 목소리로 조급하게 물었지만 질문을 들은 사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구급차 운전석에 들어가 급하게 운전을 했다.

구급차 뒤쪽에 간이침대에 누워 있는 채로 겨우 눈을 뜨니

왼쪽에 민희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뭐라고 말은 하는데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천장에는 밝은 형광등만 보였고, 차츰 그 밝은 빛이 뭉개져 보이며 차츰 옆으로 점점 번져갔고

어느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냥 눈을 떴는지도 모르게 온통 세상이 밝게만 보였다.


사랑하는 민희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저녁에 엄마가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온 몸의 신경들이 잠들어 있는지 정신은 말짱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나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엄마 생각에 눈 옆으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가위에 눌린 것 같은 느낌에 이제 왠지 마지막 일 것 같아 겨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우..리 엄마에게...”

“응! 오빠!! 말해!”


이상하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민희의 목소리가 작게나마 들려왔다.

더 이상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 예쁜 집 지어 놓고 기다린다고.. 거기서 아버지랑 같이 기다린다고 말해야 하는데.. -


멀리서 민희의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