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비어가기


사랑은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혹여 내가 비어간다고 해도
당신만은 채워주어야 한다고,

그러나
세상에서 버림받고 돌아온 당신을 마주했을 때
눈물을 참으려다 현관문 앞에서 무너져버린
당신을 껴안았을 때
어쩌면 사랑은 채워가는 일이 아니라
함께 비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채워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건
세상 따위면 충분하다고
나의 위로에도 넘쳐버린 울음 애써 담아내려고 하는
당신을 품에 안고서
어쩌면 사랑은 후회 없이 비어갈 수 있는
용기를 건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을 안기 위해 두 손 가득 든 짐을
내려놓은 나의 빈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만 하다 끝내
아무도 앉지 않았던 우리들의 빈 의자처럼
그렇게 사랑은 비어가는 거라고
그렇게 함께 비어가면 되는 거라고
보름달도 우리를 위해 함께 비어가고 있는 저녁,
나는 당신을 껴안으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