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4월 14일 일요일, “블랙데이엔 자장라면을...”
현실적으로 S걸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녀는 어쩜 일찌감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소개팅남인 그도 간발의 차이든 아니든 중요한건 현재 자신이 공무원이 아니고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저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변명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러나 거울을 같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현재의 상황과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S걸을 꿈꾸던 칼자루는 S걸 대신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알바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칼자루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숨지 않기로 했다.
세상 밖에 나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작은 일에도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소한 기념일을 지키는 것에서도 그들은 행복과 기쁨, 시련과 고통, 좌절을 느낀다.
소개팅남과 헤어진 이후 모태솔로 코스프레를 자칭하던 칼자루는 다른 사람들처럼 ‘블랙데이’인 오늘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곤 나름 수타 자장면으로 유명한 중국집을 찾아가 곱빼기를 시켰다. 의욕이 앞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데 웬걸（?） 수타면의 굵기가 천차만별인데다 그 천차만별인 굵기로 인해 다 익지 않은 면과 퍼진 면 등, 개성이 강한 면들이 입안에서 떠돌아다니며 불쾌감을 상승시켰다. 자장소스도 부족한데다 이 집의 자랑이라는 수타면이 요모양 요꼴이니 칼자루, 뿔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직원을 불러 따져 묻자 직원은 쩔쩔매매 주방장이 바뀌어서 그런 거라는 변명을 한다.
급기야 칼자루는 “이런 무책임한 주방장, 나오라고 그래!!!”를 외친다.
그 말에 하얀 가운을 입은 머쓱한 남자가 나와 그녀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그녀는 대꾸 없이 자장면 그릇을 내밀며 먹어보라고 한다. 이럴거면 차라리 수타 말고 기계면 뽑으라며 한참을 이성을 잃고 따지고 들자, 주방장이라는 사람 하얀 모자와 마스크를 벗으며 ‘죄송하다’며 꾸벅 인사를 하는데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
아니, 이게 누구야（?） 소개팅남（?）
그랬다. 칼자루와 헤어지고 그도 더 이상의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에 부친이 운영하던 중국집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소질이 없어 안 하느니만 못했다.
그렇게 서로를 보고 헛웃음을 짓던 두 사람, 이내 새로 만들어 주겠노라며 주방으로 들어간 그.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칼자루는 순간 걱정이 앞선다. 새로 만든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텐데 그 자장면을 먹을 수도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는 상황.
그러나 그녀의 걱정은 괜한 기우였다. 그가 새로 만들어 온 것은 수타 자장면이 아닌 ‘자장라면’이었다.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편안한 제 역할에 충실한 바로 그런 ‘자장라면’.
칼자루는 오랜만에 먹어본 자장라면이 이토록 맛있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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