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방에 왔다. 물론 평소에는 담배 냄새 때문에 오지 않는 장소였다.




담배냄새가 옷에 배었는데, 나한테 호감있는 남자가 그 냄새를 맡고 나를 담배피

는 여자로 오해할 수 있었기에. 그리고 예전에 새벽에 피시방을 간 적이 있었다. 하

지만 그때 하필이면 내 옆자리에 담배피는 사람이 앉았었다. 그것도 네시간 동안

이나. 그 후로 난 무려 일주일 동안 기침을 달고 살아야 했다.




그 이후 난 피시방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피시방에 왔다. 물론 이유는 있다.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너무나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김미진도 무슨 볼일이 있다며 어디

론가 가버렸고. 나는 흡연석만 아니면 되겠지 하며 금연석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다행히 피시방 구조 자체가 흡연석, 금연석 사이에 유리벽이 있어서 냄새가 넘어오

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금연석 쪽 구석에 앉았기에 담배냄새는 전혀 안느껴

졌다. 나는 컴퓨터를 키고, 뭘할까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러다가 너무도 할 것이 없

어서 '웃긴대학'이라는 유머 싸이트에 접속했다.




그동안 웃긴자료에 올라왔던 자료들을 쭉 보고 있을 때였다.




"어?"




누군가가 내 옆자리로 오는가 싶더니 이내 내 컴퓨터의 인터넷창이 꺼지고, 전원 자

체가 꺼졌다.




"어? 왜이래?"


잘하다가 갑자기 컴퓨터가 꺼지다니. 그때 나의 시야로 본체에 가 있는 어떠한 손가

락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오른쪽을 쳐다봤다.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의

손가락은, 나의 자리에 있는 컴퓨터 본체 전원 버튼에 가 있었다. 남자는 입만 떡 벌

린채 나를 쳐다봤다. 나도 그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3초 정도 더 흘렀을 때에 남자가 정적을 깨뜨렸다.




"아! 죄송합니다. 이 본체가 이쪽인줄 알았어요. 죄송해요."


남자는 허둥지둥 말했다.




나는 "예."하고 짧게 대답하며 다시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에 칸막이가 있었지만, 그것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고 또한

그 유리막은 컴퓨터 본체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았다. 남자는 충분히 실수할만 했다.

그리고 화낼만한 것도 없었기에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남자가 미안했던 모양인지 캔커피를 사와 나에게 건네었다. 그때 나의 눈은

빠르게 남자의 얼굴을 스캔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매너있게 커피를 사다주는 것은 충분히 괜찮은 남자라고, 어쩌면 이것은 인연

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얼굴도 괜찮게 생겼다. 특히 쌍커플이 없는게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나설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남자에게서 캔커피를 받아든 나는 다시금 컴퓨터에 몰두했다.




이번에는 웃긴대학을 하지 않았다. 만약 옆에 앉은 남자가 웃긴대학이라는 싸이트를

알고, 나를 이상한 여자로 볼 수도 있었으니까. 나는 대충 뉴스거리를 보거나, 아름다

운 그림들을 검색해서 그것들을 보았다. 나는 평소에 그림들을 자주 보니 남자를 의식

한 행동이 아니라고, 나는 의식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일까? 물론 생각

할 겨를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신경은 어느새 내 오른쪽에 앉은 남자에게 집중되었다.

뭔가 마음속에서 왠지 모를 것이 샘솟았다. "이것은 운명일 수도 있다." 라고.




그렇지만 용기는 샘솟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수업시간이 다가왔다. 뭔가 아쉬웠다. 나의 시야로 남자의 옆얼굴이 들

어왔다. 머리속에서 이상한 생각들을 해서 그런지 남자가 아까보다 더 잘생겨 보였다.

만약 이 남자와 인연을 쌓고 싶다면 지금 밖에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띵똥땡똥띵똥땡똥!




익숙한 벨소리가 나의 귀로 들어와, 내가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깨뜨렸다. 나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김미진이었다.








피시방의 그 남자는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내 머리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그 시간동

안 그 남자는 나의 머리속에서 "미화"되어서 연예인 급으로 변모해 있는 상태였다. 후

회 되었다. 왜 그때 말을 건네지 못했을까? 그러나 이러한 것도 몇주일이 지나자 사라

졌다. 학교 공부와 알바를 병행해서 하느라 생각할 틈이 없었을 뿐더러, 그냥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중 하나일 뿐이었다고 내 스스로가 자각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운명을 거스르는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을 수 있었다.









3월의 어느 금요일 밤.





왠지 모를 두려운 마음을 가슴에 품고, 나는 체중계 위로 올라갔다. 일년 전에는 꼭 맞

았던 원피스가 지금은 지퍼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몸에 무슨일이 생겼는지 확

인해야 했다.





체중계 위로 올라섬과 동시에, 학창시절때 성적이 못나올 것을 알고 있는데 담임에게 성적

표를 받아서 굳이 재차 확인 받는 듯한. 그러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 후 여파는 학창시절 성정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체중계에 올라서보니 저번보다

7kg이나 더 불어나 있었던 것이었다.





"헐!"


가슴속에서 묻혀졌던 절망이 현 상황에서 나타난 짜증이라는 감정과 합체하여, 가슴속을 뚫

고 나의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왜? 쪘어?"


엄마가 체중계 위에 서있는 나를 보았는지, 궁금한듯 물어왔다.





"어. 하아. 7kg이나 쪘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뭐 7kg이나? 뭘 했길래? 요즘에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잖아?"



"삼시세끼 꼬박꼬박 먹고. 알바 끝나면 먹고. 학교에서 과자 많이 먹고."



"과자 먹지마. 과자 먹으니까 살찐거야. 달고, 짜고, 밀가루 덩어리. 딱 살

찔 것만 모았놨다."



"아, 진짜 과자를 조금만 먹어야겠다. 언제 7kg나 쪘지? 그래서 그게 안맞았

구나. 엄마 내가 일년 전에 샀던 원피스있지? 꽃무늬 들어간거."



"그거 뭐냐. 그 무슨, 요란한거?"



"요란하다고? 다들 이쁘다고 했는데. 아무튼 그거. 그 옷 아까 입어봤는데 너

무 꽉껴더라고. 숨을 못 쉴 정도로."



"살 좀 빼야겠다. 현진이하고 저기 공터가서 운동좀 해. 거기, 산 중간쯤에 있

는 공터알지? 공기도 좋고, 지금 날씨도 풀려서 딱 좋아. 현진이도 가서 한바탕

뛰고와."



"그래야겠다. 와. 언제 이렇게 쪘지?"





다음날 토요일.




원래는 동생과 같이 운동을 하기로 어제 밤에 약속했지만, 동생은 운동대신 잠을

선택했다.




"야. 박현진. 진짜 안가?"


나는 동생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동생은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혼자 공터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 시간을 보니 6시 50분이었다.

8시까지 운동을 하고, 집에와서 밥을 먹고, 그다음 11시에 김미진을 만나면 된다.





나는 공터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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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이 시점은 다음화에서 끝납니다.

수연의 시점이 끝나는 지점은, 현재 민수 시점이 끝난 그 부분까지 입니다.

총 네편동안 민수와 수연의 만남. 그리고 그것을 각각 두사람의 다른 시점에서 바라
본 것을 써보았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다시 민수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이어집니다.

요새 일하랴 공부하랴... 일주만에 올려서 죄송합니다. 봐주셔서 감사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