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는 퇴근길에 올랐다. 요즘 너무 복잡한 사건이 많이 터지고 있어서 집에도 안 간적이 많았기에 퇴근하는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태호는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이제 곧... 지하철이 올 것이다.
지하철이 도착한다. 태호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2호선. 고등학생인 윤희가 항상 2호선을 탈거라는 다짐을 하곤 했다. 무슨 말인가 해서 물어보면 좋은 대학들은 서울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2호선 선상에 있단다. 그래서인지 윤희의 책상 앞에는 큰 글자로 '2호선'이라고 써 있었다.
태호는 담배를 부벼 껏다. 지하철은 금연이니까. 뭐, 지하철역도 금연이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아직 별로 제재가 없으니까. 그러나 지하철에 불이 한번 나면 얼마나 끔찍한지 전 국민이 알고 있다. 감히 지하철에서 담배를 피울만한 깡은 없었다.
지하철. 십오분쯤 가면 집이다. 태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우 박사는 수사부중 태호같은 실무 요원이 아닌 이론가였다. 영능력은 전무한 심령학자였다. 그는 독특한 과학론을 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전문용어였기에 태호는 눈을 감고 한번 이해해보기로 했다.
"귀신이라. 심령학자들은 귀신이 있다 없다를 놓고 싸웁니다. 치열하게 말이죠. 하지만 이미 우리는 귀신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제가 생각하는 귀신론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죠. 심령학적인 논문도 써 볼 생각입니다. 태호군같이 실제로 귀신을 잡는 분들이야, 이론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할 지 몰라도, 저는 귀신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증명하려 합니다. 물론 이론으로 증명하기 어렵죠. 귀신이니까."
"하지만, 저는 증명해보려 합니다. 수학으로 말이죠. 유클리드의 선형 기하학은 일단 집어치워야 합니다. 실생활에 유용할지는 몰라도 귀신에는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제가 말하려 하는 건 비선형 수학입니다. 혼돈 이론이죠. 혹시 프랙탈（fractal）에 대해서 아십니까? 프랙탈은 아주 비규칙적이죠. 자기복제를 끊임없이 해내갑니다. 예를 들어, 저도 지금 피우고 있지만 담배 연기는 아주 불규칙적으로 전개됩니다. 그리고 손등에 물을 올려놓으면 어디로 흐를 지 모르죠. 손을 똑바로 들고 있어도 항상 다르다, 이 말씀입니다."
"날씨도 그렇죠. 똑같은 기온, 습도, 기단의 위치. 모든게 같아도 날씨는 항상 불규칙적입니다. 기상청은 항상 헛소리만 지껄여대죠. 그들은 예측이 아니라 단순한 가능성만을 얘기할 뿐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행동하죠. 이것 또한 전혀 예측 불가능합니다. 운명론이란 것은 헛소리죠. 유클리드가 들으면 아주 좋아할 만한 얘기죠. 인간의 운명을 예측한다는 것은 선형이론에 인간이 아주 맞춰서 행동한다는 헛소리니까."
"그리고 수도꼭지를 틀었다가 잠궈보세요. 물방울이 떨어지죠? 얼마간은 규칙적으로 떨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기 맘대로, 아니 자기 맘이 아니라 아무 규칙 없이 그냥 떨어지죠. 이것도 비선형 혼돈 이론입니다."
"귀신은 어떨까요? 마찬가지죠. 귀신 또한 담배연기나 물방울이나 날씨나... 같은 겁니다. 귀신도 전혀 규칙적이지 않고 비규칙적입니다. 귀신이란 것의 존재. 귀신은 DNA도 일절 없고 유전자 정보로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생각. 완전히 무형인 생각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도 있죠. 대부분 인간이 품었던 일념이 뭉쳐져 만든 겁니다."
"물론 사후 영혼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귀신 자체는 바로 그 혼돈 자체일 것입니다. 인간이 생각을 하면 뇌의 한 부분에서 호르몬이 발생되고 다시 뇌에 영향을 주고...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은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뇌를 자극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귀신도 생각을 하죠. 귀신도 생각을 하고 움직입니다. 그런 귀신들도 호르몬을 지니고 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 1g에서 2g의 무게가 갑자기 줍니다. 그것은 영혼의 무게겠지요? 그 영혼의 무게 속에 호르몬, 뭐 꼭 호르몬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귀신의 생각 체계를 결정짓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연구의 여지는 많으나, 저는 일단 귀신도 수학적 증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비선형 수학은 대부분 풀이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연구와 이론적 체계로 분석해나간다면 귀신도 성분조사가 가능해지고 인간 게놈 지도처럼 펼쳐지는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이 우리 팀이 있는 이유죠. 귀신에 대한 이런 연구는 세계에서 한국 심령 수사부가 유일합니다."
제길... 하나도 못 알아 듣는 이야기였다. 우 박사 자신은 아주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결국 귀신을 수학으로 증명한다는 건데, 귀신이 증명이 될까? 일단 거부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태호는 생각했다.
'무슨, 우 박사 얘기라면 여기 있는 귀신도 해석이 가능하다는... 잠깐. 귀신이 여기 있다고?'
태호는 귀신의 존재를 느꼈다. 원한령（怨恨靈）... 큰일났다.
태호는 갑자기 격심한 고통을 느꼈다. 이건... 귀신이 자기를 공격하는 것이다. 빙의되기 위한 것인가... 태호는 남몰래 소혼을 했다. 눈을 감고 조그맣게 주문을 외운 것이다. 귀신은 끊임없이 공격해들어왔다. 일단 귀신이 태호의 몸 안으로 들어온 것은 기정 사실이다. 여자였다. 일단 영력을 최대로 집중해서 귀신을 한 부분에 가둬놓아 버렸다. 그리고 부적으로 봉인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에서 돌연사한 사람이 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온 적이 있다. 전부 2호선이었다. 그런 걸 알고도 수사를 안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 귀신은 2호선 중에서도 이 객차에만 상주하는 것 같았다.
태호의 몸속에 쳐진 결계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귀신은 몸을 부닥쳐갔다. 이곳저곳을 찔러대고 있었다. 불규칙적이었다. 이런게 비선형 혼돈 이론인가...
귀신의 기억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이, 너. 쌔끈하네. 응?"
"맞아. 한번 따먹고 싶을 정돈데..?"
불량배 둘이 여자에게 접근했다. 여자는 너무나 두려웠다. 출근 러쉬 시간이었다. 사람은 가득 차 있는데 불량배 둘이 여자에게 밀착해 있었다.
불량배 둘은 지퍼를 열었다. 창피하여 소리도 못 지르는 여자에게 몸을 부비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손으로 끊임없이 여자를 만져댔다.
"꺄..."
"조용히 안하면 죽여버릴거야."
불량배 하나가 여자의 치마를 슬쩍 걷어올리고 거기다가 자기 물건을 비벼댔다. 더러웠다. 정말 죽고 싶을 정도다. 여자는 불쾌감과 당혹감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불량배 중 하나는 칼로 여자의 팬티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여자에게 삽입해버렸다.
여자는 고통과 수치감에 미칠 것 같았다. 불량배는 칼을 들이대고 돌아가면서 여자를 강간했다. 선채로.
역에 멈춰졌다. 여자는 급히 내렸다. 내릴 역이 아닌데도. 여자는 급히 화장실로 도망쳐버렸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불량배는 낄낄대며 쫒아왔다. 지하철 화장실로 쫒아온 그들은 여자를 안으로 몰아넣어버렸다.
여자는 여자 화장실 안에서 끔찍하게 강간당했다. 두 명은 전화를 걸어서 자기 친구들도 부른 것 같았다. 그렇게 서너명이 더 왔고, 그들은 여자를 윤간했다.
여자는 고통과 수치감에 휩싸였다. 죽고만 싶었다. 아니, 이제 그들을 죽이고 싶었다.
불량배들은 일을 다 치루고는 다음 희생양을 물색하는 듯 지하철로 돌아갔다. 여자는 참혹하게 당한 자신을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탄 지하철로 쫒아갔다.
"저여자 뭐냐? 또 해달라고 저러는 거냐?"
"히히... 아까운데. 우리집 화장실에 묶어놓고 키울까?"
"먹이도 주면서?"
"하하하하!"
불량배들은 경멸하는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예쁜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뛰어갔다. 지하철 앞으로.
지하철이 출발했다. 여자는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콰지직 하는 소리가 나며 지하철이 출발했다. 여자의 몸이 으스러지는 소리였다.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불량배들은 들었다. 지하철이 지나가자, 그 자리에는 흩어져 버린 뼈에 여자의 파편이 굴러다녔다. 눈알 하나가 선로에서 애처롭게 구르고 있었다. 그 눈알도 거의 짓이겨져 있었다. 창자가 쏟아져 나왔는데 그것도 아직 꼬물거리고 있었다. 피로 적시다시피 한 선로에 비린내가 역하게 풍겼다. 그리고 여자의 다리 한 짝이 약간 먼 쪽으로 날아가 있었다.
불량배들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뛰어든 여자와 몸이 부서지는 소리. 지하철 소리에 가려 듣지 못해야 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 다섯명은 분명히 들었다. 갑자기 그 중 한명이 쓰러져 버렸다. 갑자기 눈알이 빠져나가버렸다. 그리고 머리가 터져나가 버렸다. 뇌를 바닥에 쏟아버렸다. 출근 시간이 일단 지나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에 망정이지 사람이 많았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이었다.
나머지 녀석들이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또 한 녀석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푸지직! 소리를 내면서 주저 앉았다. 무서워서 똥이라도 싼 줄 알았는데, 창자가 쏟아진 것이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창자가 꾸물거리며 기어나왔다. 살아있는듯이...
또 한명은 갑자기 목을 움켜쥐었다. 머리가 굴러떨어졌다. 그리고도 한동안 그 녀석은 살아서 남은 자기 몸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놈은 몸의 아홉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부릅떳다. 뇌가 머리속에서 터져버린것이다.
처음 여자를 강간한 녀석은 비명을 질러대다가 칼을 꺼냈다.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 놀란 표정이었다. 칼로 자기 배를 가르더니, 창자를 손으로 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속 움직이자 간과 폐, 심장을 칼로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공포를 느끼며, 마지막 녀석도 절명해버렸다.
다섯명의 공통점은, 아랫도리였다. 그곳은 전부 짓이겨져 형체로 못 알아보고 골반뼈까지 남김없이 부서졌다.
그것을 보던 여자 승객 중 몇명이 기절해버리고 애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섯명의 공통점은 머리가 한쪽 창문을 향해 있는 것이었다.
그곳엔... 눈알 하나가 창문에 엉겨붙어있었다.
'크윽!'
태호는 이렇게 끔찍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태호는 영이 그 뒤에도 젊은 남자만 보면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 사건 뒤에는 그냥 보통 돌연사를 일으키기만 했을 뿐, 처참한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하철공사측에서는 이 사건을 은폐한 듯 했다.
태호는 영을 부적에 옮긴 뒤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편안히 저승으로 향하라는 기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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