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취미가 있다. 그 취미가 어떠한 것이냐면. 집 근처에 있는 공터벤치

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사색에 잠기는 것이었

다. 이러한 취미가 생긴지는 약 한달 되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한두달. 술만 퍼마시고 온종일 게임만 해대는 그 시간을 어

머니는 안좋게 보았다. 그리고 어느날 어머니에게서부터 심하게 꾸지람을 들었

는데 그때 스트레스를 풀겸 공원벤치에서 명상을 한 것이 지금까지 쭉 이어진

것이다.




물론 "명상"이라는 단어는 내가 과장해서 말한 것이다. 나는 단지 벤치에 앉

아, 눈을 감고,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간혹가다 내 인생에 대해서

생각을 했고, 요즘에는 수연이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그러니 아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명상이 아니라 그냥 잡념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음악을 들으며, 봄의 기운이 만연한 바람

을 쐬이니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런 느낌 때문에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이 취미를 그만두지 못한 것이었다.




토요일 아침 7시는 내가 특별히 정한 시간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때는

빠지지 말고 꼭 명상을 하자고.




하지만 한달이라는 시간이, "명상"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퇴색시켜 버렸다.

물론 내가 해왔던 것이 명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의미 자체로만

본다면. 내 마음을 청량하게 만들고, 내 머리속에 굴러다니는 온갖 잡생각

을 정리하고, 나의 내면에 있는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만들었으

니 어쩌면 나는 실제로 명상아닌 명상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단지 벤치에 앉아서 따뜻한 햇빛을 쬐며, 풀의

냄새를 맡고, 생명이 느껴지는 듯한 봄의 기운을 느끼며, 한 주간에 쌓였었

던 피로를 토요일 오전 7시에 다 푸는, 그러한. 그냥 이제는 토요일 아침

7시는 나에겐 인생의 휴식시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나는 토요일날

만 공터에 나갔다.




오늘도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공터로 나갔다. 제법 이른 시간 임에도 공터

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배드민턴을 치는 아저씨들, 운동기구에 딱

달라 붙어서 운동을 하는 아줌마들. 그리고 공터를 뺑뺑 도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역시 어른들은 부지런하시구나.' 하며, 공터 한

켠에 서서 군대에서 배웠던 "육군도수체조"를 시작했다.




체조를 다 끝나고 깊게 숨을 들이마쉬었다. 아침의 그 차가우면서도 청량

한 공기가 나의 폐로 깊숙히 들어와 온몸을 맑게 해주었다. 그리고 운동기

구에 붙어서 잠깐의 운동을 한 후. 나는 사람이 없는, 인적이 거의 없는 공

터 구석진 곳으로 갔다.




벤치에 앉으니 온몸에 피로가 싹 풀리는게 느껴졌다. 가끔씩 차가운 바람이

나의 몸을 훑는 바람에 덜덜덜 떨려왔지만 그때마다 숲풀이 자욱한 공터의 그

청량한 공기를 들이 마쉬면 추위가 가셨다. 나는 벤치에 몸을 맞긴채 온몸을

축 늘어뜨렸다. 벤치에 스며들어 있었던 한기가 나의 엉덩이와 등짝으로 올라

왔고, 반대로 나의 체온은 벤치로 스며 들었다.




그때였다.



물기가 있는, 그러면서도 차갑고 딱딱한 무언가가 나의 오른쪽 볼에 닿았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서, 몸을 뒤로 뺀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응?"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생수가 담긴 물병, 그리고 그 물병의 주인이었다. 나는

나타난 사람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수연아!"




그녀였다. 달콤한 향기를 가진 그녀. 놀랍게도 나타난 이는 다름아닌 수연이였다.




그때 나의 표정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엄청 이상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황, 당혹, 의문이 모두 내 얼굴에 나타났을테니. 그리고 수연이 또한

나의 표정을 보고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표정이 왜그래? ㅋㅋㅋㅋ."




수연이는 그렇게 한참동안 웃다가 나의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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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그해 봄.


그 사람과의 만남은 운명이다.






"수연아 밥먹어라."



"알았어. 잠깐만."



길고 길던 방학이 끝났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니, 몸은 무겁기 그지 없다. 방

학 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은 결실이었다. 거실로 가니 된장국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아침이라 그런지 입이 텁텁하고 식욕이 없다.




"엄마 밥좀 덜어줘."



"아침은 든든히 먹어야되."



"너무 많아. 조금만 덜어줘."



투정부리듯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나의 밥그릇을 가져가 밥을 반 정도 덜어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시계를 봤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서 씻고, 렌즈를 낀

다음, 화장을 시작했다.




"누나는 서양화과라서 그런지 그림을 참 잘드린다."


식사를 마치고 나의 방으로 들어온 동생은 내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말했다.

하지만 평소에 칭찬할리 없는 동생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슨 망언을 하나 싶었

기에 나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다.




"그림을 정말 잘그려 누나는. 얼굴에 말이야. 아주 딴 사람이 되버렸네."


역시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저새끼는 맨날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화장을

하다 말고 뒤로 돌아서 동생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펴주었다.




"꺼져."


나의 말에 동생은 실실 쪼갰다.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이쁜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는거 같아. 안그래?"


그렇게 말하며 나는 다시 화장을 시작햇다. 동생은 정색해서는 내 방에서 나갔다.

뭔가 웃겼다.





"풉! 야. 표정이 왜 그러냐? 왜 어이없냐?"


동생이 내 방을 나가기 전에 내가 물었다. 하지만 동생은 나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깊은 한숨만을 쉴 뿐이었다.





학교에는 새로운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신입생들을 보니 뭔가 산뜻했다. 아직 순

수한 느낌이 남아있는 듯한. 피부도 탱탱하고, 활기가 넘치고, 생기가 흐르고, 잘

웃고, 순진하고, 귀여웠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파릇파릇하고 언제나 잘

웃고 하던 때가 나도 있었단 말이다. 아, 그때 남자를 사귀었어야 했는데!





외롭도다. 외로워.





"그래! 진수나 보러 가자."


나는 진수가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진수야! 잘있었니?"


나는 진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진수는 대답이 없었다.





"왜 말을 안해 진수야. 어디 아퍼?"


이번에도 대답이 없다. 하지만 대신 다른 곳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ㅋㅋㅋㅋ. 뭐해?"


고개를 돌려보니 중학교부터 쭈욱 친구인 김미진이었다.




"김미진."


"왜?"


"진수 같은 남자 없냐?"


"ㅋㅋㅋㅋ. 없어. 그리고 너의 외로움을 왜 여기와서 푸는건데."


"여자 밖에 없는 곳에서 진수라도 봐야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찱흙으로 빚어진 진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수는, 조소과인 김미진이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진수를 보고 단번에

마음에 든 나는 시간날 때면 진수를 보러 가고는 했다. 물론 진수라는

이름도 내가 붙여준 것이다.



"야, 박수연. 진수 말고 진짜 남자를 만나라고. 소개팅해봐."



"그러고 싶은데. 아, 그런데 뭔가 두려워."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하잖아. 니가 그 용기있는 사람한테

모습을 보여주든 해야지 그 사람도 딱 너한테 목표를 잡고 용기를 낼거

아니야. 너가 정말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너를 만나지 못

해서, 너가 아닌 애꿎은 사람한테 용기를 내면 어떻해. 용기있는 사람이

미인을 얻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용기있는 사람이 용기있는 사람을 얻

는 거야."



"야, 김미진."



"왜?"



"너 말 되게 잘한다."



"아, 됐고. 소개팅 시켜줘? 알바하는 곳에 괜찮은 오빠 한명있는데. 아! 그

럴게 아니라 너 알바해보는게 어때? 알바하면서 돈도 벌고 남자도 만나고. 우

리 가게 지금 사람 구하고 있거든. 어때?"



"흠……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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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ㅠㅠ

요새 일하랴 공부하랴 ......
짬내서 쓸 시간도 없네요.

원래는 오늘도 시간이 없는데
오늘 안올리면 보는 분들에게 죄송해서

어떻게든 써서 올려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