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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선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성의 지하로 통

하는 계단이었다. 슬쩍 계단의 아래쪽 -안쪽 을 보았는데 음침

하고 어두운 것이 뭔가 두려운 느낌을 들게 했다.




나는 잠시 꺼려졌으나 수연 선배의 어머니가 앞장 서서 가고,

선배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나

도 어쩔 수 없이 선배의 뒤를 따라갔다.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서 어느정도 걸었을 때에, 현재

매우 습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피부가 물기로 인해 미끌

거렸고, 특히나 싫은 것이 곰팡이의 그 눅눅한 냄새가 코를 찔

러오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벽면에 설치된 촛불들이

켜져 있어서, 내가 앞을 뚜렷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방금 전

생각 했었던 '어두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그다지 생기지 않았

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촛불로 인해서 꽤나 더웠는데 그

런 것까지 머리속에 떠올려서 부정한 생각을 하면 난 소심한 것

이겠지? 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의

본능도 현재의 상황을 마치 모험 같다고 착각하며 충분히 즐기

고 있는 상태였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눅눅한 냄새가 코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을 때였을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여

러가지 망상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딱히 주제를 말하자면 "앞에 무엇

이 있을까?" 하는, 그러한 것에 대한 상상이었다.




나의 망상은 이랬다.




만약 어느 정도의 상식을 가지고 상상을 한다면. 동화에 나오는 왕

자나 공주가 사는 고성. 그러한 것과 똑같이 생긴 성이니까 이 성의

지하에는 보물이 있을 것이다. 라는, 이 정도. 물론 누군가에게 나

의 머리속을 보여 준다면 어떻게 그것이 상식적이냐고 불평을 할 수

도 있겠지만 나의 망상 중에서는 이것이 제일 그마나 현실적이어서

상식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튼.




상식적인 망상이 어떤 왕국의 보물 창고라면, 비현실적인 망상으

로는 이러한 것을 생각했다. 일명 '지하던젼'. 그곳은 인간만큼 커

다란 들쥐가 존재했고, 고블린이라고 불리우는 사악한 요정도 있었

으며 간혹가다 머리와 하체가 황소이고 상체는 인간인 '미노타우로

스'가 존재했다. 그리고 맨밑 층에는 보스가 존재했는데 나의 망상

속에서의 보스를 설명하자면, 그는 산처럼 거대한 몸집을 지녔고,

커다랗고 검은 뿔이 머리에 달렸으며 100명도 넘게 가려버릴 것만

같은 박쥐모양의 날개가 있었다. 또한 입을 벌릴 때마다 지옥의 불

을 내뿜었고, 그의 눈빛에 쪼이면 누구든지 석상으로 변하는, 이름

으로는 '바로그알'이라고 정한 보스였다.




"풋! 무슨 생각해?"


갑작스럽게, 수연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연 선배의 음성이 나의 귓속으로 들어온 그 때는, 바로그알이 죽

고 엄청난 아이템을 남겼는데 그 아이템 능력을 어느 것으로 정할까?

하고 생각하는 중이었을 때였다.



선배는 나를 보며 한참동안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바보 같았다고 수연 선배가 그렇게 나

에게 말했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수연 선배는 나를 보고 있었

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의 망상은 끝을 맺게 되었다.




얼마동안 벽에 걸린 촛불에만 의존한채 걸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인

중과 이마에서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런데 그때였다.




수연 선배의 어머니는 갑자기 가던 길을 멈췄다. 뒤쪽에서 고개를

빼꼼히 들어 앞을 보니 벽으로 앞이 막혀 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수연선배의 어머님이 손을 들어 벽면을 여러군데 치니까 갑

자기 "철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

과 돌이 서로 부딪치며 마찰음이 들려왔고, 벽이 움직이면서. 그동안

벽 틈새에 쌓였던 먼지가 풀풀 날렸다.




마침내 눈 앞에 지하 창고로 생각되는 장소가 나타났다.




수연선배의 어머니는 그곳으로 발을 들였다. 다음 수연선배도. 나도

수연선배를 뒤따라, 음침해 보이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벽을 넘어서 탁 트힌 공간으로 접어들자 이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의 앞에는 갈 수 있는 길이 무려 다섯개나 되었고, 담이

천장에 맞닿아서 위로는 못오르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이 확실히

어디인지 알 수 있게 된 것은, 내 앞에 '미로창고'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수연선배의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여기는 미로네요?"



"그렇지. 그리고 이 미로가 바로 2단계다."


수연선배의 어머니가 말했다.




수연선배 어머니의 말을 듣고, 문득 수연선배를 보니 현재 상황이 못

마땅한 모양인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2단계도 없을 뿐더러. 왜 2단계가 여긴데?"


수연선배가 짜증이 섞인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투덜투덜

거리는 수연 선배도 나와 같이 미로를 헤매게 된 것이었다. 나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수연 선배는 그럴 수는 없다면 끝까지 나를 따라 나

섰다.




미로는 정말 복잡했다. 쭉쭉 잘 나가다 보면 길이 막혀 있었고 다시 첫지

점으로 돌아와 다른 길을 택하면, 그 길 또한 쭉쭉 잘 나가다 막혀 있었다.

그런데 정답일 것 같은 마지막 길로 들어서니 이번에는 가다가 여러방향으

로 나뉘는 길이 나왔다. 나와 수연 선배는 하나 하나 돌아다녔다. 간혹가다

함정도 있었는데, 내가 디딘 땅이 푹 꺼지내더 이내 창이 날아오는가 하면,

거대한 돌구슬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굴러왔다. 다행히 옆에 공간이 있어서

우리는 그쪽으로 몸을 숨겨 돌구슬을 피해냈다.




얼마나 갔을까. 문득 학교가 떠올랐다.




"선배. 아까 제가 여섯 시간 잠들어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학교는 괜찮

아요?"



"괜찮지 않아. 아까 미로에 들어왔을때 시간이 새벽 4시 였거든."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수연 선배였지만, 표정은 무척이나 담담한 수연선

배였다. 수연선배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여기 지하 자체에 시간을 가지 않게 만든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수연 선배는 왼손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나에게 보여주었

다. 시계는 정확히 4시 10분에 바늘이 가 있었다.




"약이 다되서 그런거 아니에요?"


"이 시계 이름이 차원의 시계야. 왜 이름이 이러냐면, 아까 너도 경험했다

시피 차원마다 시간은 각기 존재해. 그리고 시간의 흐름도 재각기 달라. 그

래서 보통 시계로는 다른 차원의 시간을 알 수 없는데, 이 차원의 시계는 그

차원에 존재하는 마력에 영향을 받아 움직이니까, 어느 차원이든 그 차원에서

흐르는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거야. 내가 봤을때 여기는 다른 차원에 공

간이고, 현실세계보다 약 몇백배는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아. 다시 시계를 봐

주겠니?"



수연 선배는 내게 시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역시 4시 10분이었다.



"방금 전이랑 시간이 똑같은데요?"



"아니야. 자세히 보면 아까 초침이 숫자 6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지금은 6과

7 사이에 있잖아."



선배의 말에, 나는 다시한번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선배의 말따라 초침은

분명 6과 7의 사이에 있었다. 하지만 아까 초침을 확인하지 않은 나는 선배

의 말이 옳은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도 선배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대화

를 하면서 적어도 15분은 흘렀을텐데 약 3초 정도 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적어도 학교에 지각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끝에는 작으마한 상자가 놓여져 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방치된 것인

지 모르겠지만, 먼지가 수북히 쌓인 것으로 보아 꽤 오랜 시간동안 손길이 닿

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선배 어머니께서 말씀하신게 이 상자 같은데요?"


"흠. 좋았어."




선배의 어머니는 분명 미로 끝에 있는 상자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것이 2단계

라고.



나는 상자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는, 상자를 왼쪽 옆구리에 끼었다. 상자가

그다지 크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

자, 모래 먼지가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아! 엄마!"


수연 선배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우선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 이러다가 봉변 당하겠네."


"네."



선배와 나는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상자가 있었던 곳에서 어느정

도 멀어졌을 때에 선배가 멈춰섰다. 나는 의문어린 눈으로 선배를 쳐다보았고,

선배는 곧 나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나의 마법을 보고 싶어했지?"


수연 선배가 물었다.



"네."


기대에 찬 대답이 나의 입에서 흘러나와다.




"좋아. 그러면 지금 보여줄게."


선배는 나의 말에 씨익 웃더니 말했다. 그러면서 선배는 갑자기 자신의, 가슴 부

근의 단추를 풀어 헤쳤다. 곧 선배의 뽀얀 속살이 드러났고, 가슴골에 뚜렷히 박혀

있는 에메랄드와 비슷하게 생긴 보석이 나타났다.




선배는 내가 보고 있음에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모양이었다. 선배는 가슴을 드러

내 놓은채 보석에 손을 얹고는 내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보석 자체가 밝은 보석인줄 알았다. 하지만 선배가 이상한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그 밝음은 커져갔고, 주변의 모든 어둠을 물리치며 온통 초록색으로 주변을 휘

감았다.




빛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에 선배는 보석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슈우욱!



보석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그러면서 울룩불룩하게 튀어 나

오더니, 이내 동물의 발로 짐작되는 형체가 보석으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곧 그것

은 보석에서 튀어나왔다. 선배의 가슴을 보니 보석은 사라졌고, 선배의 앞에는 작은

생명체가 있었다.



나는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선배와, 선배 앞에 있는, 호랑이 같지만 색이 녹색과

파란색이 어루어져서 호랑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짐작하게 하는 생명체를 쳐다보았다.




"놀랐니?"


나의 반응을 보았는지 선배가 물어왔다.



선배의 말에 나는 대답은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나를 보고 선배를 가볍

게 웃었다.



"이게 내 능력이야. 혹시 정령이라고 아니?"



"정령이요?"



"응. 정령. 나는 다른 차원에 사는 정령을 아까 그 정령석으로 형체화 시킬 수 있어."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앞에 호랑이인지 정령인지 모를 생명체를 쓰담드었다. 그 생명

체는 선배가 만지는게 기분이 좋은지 "갸르릉." 거렸다.




선배는 그 생명체를 쓰다듬으면서 정령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눈

앞에 있는 존재가 바람의 정령이며 '실비'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까지 말해줬다.

선배는 그렇게 한참이나 생명체를 쓰다듬었다. 선배가 쓰다듬으면서 "귀엽지?"라고

물었는데, 확실히 귀여웠다. 그리고 선배도…….




바람의 정령인 실비의 능력은 뛰어났다. 선배와 내가 미로에서 몇시간을 헤맸다면,

실비는 바람을 느끼며 단 몇분만에 미로를 탈출했다.



나는 그렇게 미로를 통과했고, 상자를 수연 선배 어머님에게 건네줌과 동시에 2단계

통과, 그리고 에피렌 길드원이라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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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세계로 돌아오니 시간은 6시였다. 밤을 샜지만 15일 동안 잠을 푹 자서 그런지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잠을 자지 못한 수연 선배는 괜찮을까?




"선배. 안잤는데 괜찮아요?"


나는 수연선배에게 물었다.




"응. 마법의 힘은 대단하거든. 너도 익숙해지면 내가 한 말을 이해하게 될거야."



선배의 말에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온 것은 다행이다. 그리고 돌아온 곳이 내방이라는 것

도. 그런데 어째서 수연 선배까지 내 방에 있는 것일까? 나는 선배를 쳐다보았다. 하

지만 선배는 나의 시선을 마주하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너무 옷이 더럽다."


선배가 말했다. 그러면서.




"교복 좀 벗어볼래?"



"네? 교복을 벗으라고요?"


선배의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말했다. 하지만 선배의 의도는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기에 나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



"물의 정령한테 말하면 금방 깨끗해지거든. "


"아, 그렇구나. 알겠어요."


여자의 앞에서 옷을 벗는 다는 것은 꽤나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아 보

이는 수연 선배를 보니 나도 그다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수연

선배를 보며 옷을 벗는 것은 꽤나 민망했기 때문에 나는 뒤돌아서 옷을 벗었다.

그런데 그때 '스르륵'하며 옷이 흘러내려가는 소리가 나의 귓가로 들려왔다. 그

리고 아기 냄새와 샴푸 냄새가 나의 코로 들어왔다. 뒤돌아 있어서 눈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제 그 일로 인해서 오감이 엄청나게 발달한 나는 현재 수연 선배가 옷

을 벗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심장에서 피가 얼굴로 솟구치는게 느껴졌

다. 좋은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고, 망상을 좋아하는 나의 머리가 이상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나의 중심은 곧 너무나도 튼실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나는 선배에게 들킬까봐 몸을 구부정하게 하고는 교복을 선배에게 건네었다. 그리

고는 선배에게 먹을 것좀 가지고 온다고 말하고는 재빨리 방을 나섰다.



"휴!"



방 문을 닫고, 속에서부터 우러러 나오는 한숨을 배출했다.



응?



무언가 형체가 보여서 문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헉! 미,미영아!"



미영이였다. 왜 미영이가 이곳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미영이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영이의 시선은 나의 하체에서 몇초 동안 머물러

있었고, 약 3초 지났을때 나와 눈을 마주쳤다.



"……."


"……."



침묵이 공간을 지배하고.


그때 들려오는 수연선배의 목소리.


"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