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1



남자.









"……"



장발의 머리스타일을 한 남자.
아니다, 그냥 머리를 다듬지 않아서 멋대로 길어버리게 냅둔 머리다. 그냥 덥수룩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



어디를 봐도 직업없는 아프리카의 왕, 사자-백수의 왕 사자라 칭한다-를 닮은 이 남자가 어울리지 않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어딘가에 취직하기위한 구직활동으로 이력서라도 쓰고 있는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현재의 비참한 자신을 '구제'하기 위한 구직 활동 이전에 저 구질구질한 옷-도데체 얼마나 입었길래 색이 바래어진 초록색 츄리닝-과 저 머리를 먼저 구제해야 할 것 같다.
그런 그의 손에는 펜이 한자루 들려있다. 펜이 손의 움직임을 따라 부드럽게 굴러다니며 아래에 깔려있는 종이에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내용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10분, 20분 시간이 자꾸 흘러가기 시작한다.
벌써 1시간 이상이 지나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쉴새없이 놀려지는 그의 손놀림은 이내 자신이 이력서 따위를 쓰고 있는 모양새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가 쓰고있는게 이력서라면 이렇게 밑도끝도 없이 쓸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력서라는건 결국 똑같은걸 반복해서 쓰는것이기 때문에 지금 그가 보여주고 있는 행동
-불규칙하게 가끔씩 펜을 입에 물거나 인중과 코 사이에 끼워넣어놓고 얼굴을 찡그리는게 뭔가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그의 행동은 아마 습관적인것이겠지.-은
이력서를 쓰고 있다고 말하기엔 아귀가 맞지 않는다.



"완성이다…."



그는 30분 정도 무언가를 더 써내려 가더니 완성이라는 말을 남기고는 자신이 앉아있던 책상에 그대로 얼굴을 묻으며 쓰러져버렸다.

잠시후,
그는 커다랗게 한번 심호흡을 '후우'하고 하더니 앉아있던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디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써내려 가던 종이뭉치를 한가득 헌 종이가방에 쑤셔넣고는 무슨 보물이나 되는냥 꼬옥 품에 안고서.









여자.









"내가 이럴줄 알았다니까. 이런건 역시 입에 안맞아."



한 손에 들고있던 커피잔을 내던지다시피 하며 내려놓는다.
신경질스럽고 어딘가 날이 날카롭게 서 있는듯한 말투다.



"아무리 시간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걸……, 으휴……."



무슨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
그녀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전의를 불태우며 한참을 더 커피잔을 쳐다보고 있더니 불현듯 얼굴을 돌려 무언가를 무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다음부터는 아무리 시간이 없고 귀찮아도 티백따위는 사먹지 않을테다…."



사건의 주범이자 원인인 커피 티백이였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고급 원두를 사용해 커피를 만들어 끓여 먹을 정도로 커피에 대해 매니아였다.
하지만 요즘 같이 바쁜 날에는 원두를 구하기도 힘들고-안그래도 그녀가 즐기는 원두의 종류는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다-그 과정 자체도 굉장히 어렵고 귀찮은 것이라 그녀 자신도 어쩔수 없이 간단하게 구할수 있는 티백커피를 샀던 것 이겠지.



"절대 티백 타도! 다시는 사지 않는거야! 그 어떤일이 있어도!!"



다시한번 전의를 불태우며 다짐을 해보는 그녀였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곧 다시 조금 의기소침해지며 자신의 손목시계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도데체가 오기는 하는거야?"



괜히 안절부절 하지 못하며 또 혼자 신경질을 부려본다.
커피 때문이 아니라 뭔가 다른 문제가 따로 있는건 아닐까.


똑똑똑.



"들어오세요."



그녀가 팔목에 차고있는 손목시계를 쭉 노려보며 중얼중얼 무언가 불만을 토로하고 있던 그 순간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짐짓 언제 신경질을 냈냐는듯 순식간에 안면근육을 움직여 그 험악하게 찡그리고 있던 얼굴을 활짝 피고는 노크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안녕하십니까?"

"…왜 이렇게 늦어요?"



손님인줄 알았나보다.
요즘들어 이 곳엔 귀한 손님들이 자주 왕래를 하기 때문에 접대에는 신경을 쓰는 그녀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가 요즘 새로 계약한 신인 작가-하지만 실력은 굉장히 좋다. 그의 행태로 보아 인간성은 조금 의심이 가지만 작가로써는 분명히 얼마 안되 엄청난 작품을 내고 말겠지-라는 사실을 알고는 맥이 풀려버린건지, 지금까지 기다린 상대가 이제야 나타나 이제 힘이 다 빠져버린건지 알수 없는 허무맹랑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튼 방금 그 부드럽던 목소리와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그대로 싸악 표정이 풀리고는 냉담하고도 사무적인 말투로 그 신인 작가를 질타하고있다.



"예? 아, 죄송합니다 편집장님."



자신을 반기는듯했던 그녀의 분위기에 약 3초동안-그녀의 대답을 듣고 문을 열던 그 찰나의 시간-기분이 좋아졌었던 그는 그녀의 분위기가 갑자기 냉담하다 못해 싸늘해 지기까지 해버리자 기합이 필요 이상으로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는 잠시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간 그녀의 눈초리가 조금씩 이지만 더욱 더 싸늘해지자 준비해온 말을 서둘러-그렇다고는 하지만 준비해온 것의 반도 채 내뱉지 못했고. 게다가 고작 그 몇마디 말도 더듬거리는 데다가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채 시선이 천장을 향해있었다.-내뱉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며 그의 시선을 피해 살며시 웃고 말았다.



"푸흡."

"…뭡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원고는요? 설마 깜빡하고는 두고왔다고 말하진 않겠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 덕에 그가 말을 멈추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뭔가 의심쩍은듯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고
우스꽝스럽게도 이번엔 그녀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을 회피하며 화제 돌렸다.



"아, 설마 그럴리가요. 여기 챙겨 왔습니다…."



그는 그녀가 앉아 있는 그 책상에 종이뭉치가 한가득 담겨있는 헌 종이가방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곧 종이가방에 담겨있던 종이뭉치들을 정리하여 다시금 차분하게 마음을 다지고 원고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그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