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날씨엔 전혀 안어울리는 글 -_-

원래 하루라도 더워지는 날이 오면 올릴라 그랬으나

이제 추석이니 기회를 놓쳐버린 듯 싶군요;;

기냥 지난 여름 어느 무더웠던 날을 떠올리시며

마음껏 짜증내 보시길...-_-;;;

저도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그런지 읽으면서 저절로 짱날 정도로

더위와 삶에 지친 인간의 심리묘사가 뛰어난 글입니다.

그럼 들어갑네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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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None. Nobody.Yep}




덥다. 이렇게 미칠 듯이 더운 날씨는 정말 질색이다. 온 몸의 땀구멍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끈적한 기운들. 조금씩 셔츠에 묻어가며 그것들은 차분히 적셔 들어간다. 그리고 내 피부에 달라붙어서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그 불쾌한 기분은 점점 더 번져가겠지. 시간이 지나면 어느샌가 그 불쾌한 것들은 셔츠 전체에 물들어서 등에 쫙 붙어버리고 그때가 되면 불쾌함의 극치로 다가간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내 책상. 내 일터에 가만히 앉아서 워드 파일을 칠 때마다 데스크 위에 올려놓는 내 팔들은 뜨뜻한 기운을 차가운 책상 위에 남기고, 역시나 그 미지근함을 전달한다.

머리카락은 이마에 조금씩 달라 붙기 시작하고, 그것이 귀찮아 쉴새 없이 넘기는 내 손의 움직임은 워드를 치는 동시에 그 행동을 반복하며 일의 능률은 조금씩 떨어져 간다. 책상은 이제 어디에 팔을 두든 뜨뜻한 기운만이 반겨준다. 지겹다. 지겨운 여름. 그 아무리 싱싱한 것을 내 놓아도 금방 상해버려 차마 코로 맡기 힘든 냄새를 흘뿌리며 주변의 공기 마저 장악하고, 지독히도 뜨거운 햇볕에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개 같은 놈의 여름. 온 몸에 젖어 나오는 땀. 빌어먹을 놈의 여름. 어딘가로 떠나가 버린다면, 예를 들어 큰 바람이 없이도 유유히 철석이는 파도가 있는 바닷가라던가, 울창한 푸른 나무들 사이로 망할 콘크리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와는 거리가 먼 흙바닥의 냉기가 흐르는 숲 속...그런 곳으로 가버린다면, 아니 가버릴 수 있다면 이 정도의 기분은 아니겠지. 그런 한가한 일은 나와 거리가 멀다. 그러니 이런 개같은 한탄만 늘어놓을 수밖에.

내 주위엔 백과 사전만한 두께의 서류뭉치들이 여기저기서 수정해 달라고 늘어져 있고, 가지 각색의 플로피 디스크들. 그리고 수북히 쌓여버린 담배꽁초와 거의 비어 있는 마일드 세븐, 아직 트지 않은 마일드 세븐... 걸레 빨고 나온 구정물 맛이 나는 자판기 커피 반잔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컴퓨터. 저 사양의 하드와 랜을 가지고, 파일을 조금이라도 세이브 할라 치면 사정없이 하드 읽어대는 이 불쌍한 컴퓨터. 뜨거운 여름이 되니 안쪽에 돌아가는 좆 만한 냉각기로는 스스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지 속도는 더욱 더 느려져 간다. 이 빌어먹을 컴퓨터로 어떻게 일주일 동안 저것들을 다 끝내라는 건가.

세원이는 지금쯤 푸르른 숲속의 별장에서 애인과 히히덕 거리며 신이 나겠군. 그녀는 일에 치여 사는 내 꼬라지가 더 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일 없이도 돈을 잘 쓰고 항상 자신에게 신경을 써준다는 어떤 중년의 남자에게 가버렸다. 젠장. 세상은 그런 것이다. 개 좆도 노력을 끊임 없이 해가도 어느 순간의 기회를 놓쳐버리면, 더 이상 그 기회를 기다려 주지 않고 새는 날아가버린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지직지직 읽어대는 컴퓨터. 키보드 위로 무의미한 엔터 키의 남발.. 내 분노는 이런 식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까.

탁탁탁탁탁탁탁탁. 엔터키를 수 없이 누른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 조그만 사무실에 엄청나게 쌓여 있는 서류들 안에서 키보드를 쳐대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 이런 것이었나? 내가 원했던 것들이 이런 것이었나? 세원이. 좋았었나?. 내가 사랑했었나? 사랑했었다...사랑했었다면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어야 하지 않았던가? 사랑이 돈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란거 분명히 알고 있다. 더 이상 애가 아닌 지금. 그래도 분명 난 항상 얼토당토 하지 않게 바쁜 내 모습을 지난 4년 간 이해해 줬던 그녀를 위해서 마지막에 뭔가를 했어야 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 보내고도 사무실 앞에 앉아서 한탄만을 해대야 하는 게 내 사랑인가. 사랑을 과연 했던 것일까.

젠장. 땀이 목위로 흐르기 시작한다. 집중. 집중. 집중을 하게 되면 몸은 긴장을 하고, -설령 그 집중이 생각이든, 아니면 키보드를 맹타하는 것이든..- 긴장을 하게 되면 근육이 죄어든다. 근육이 죄어 든다는 것은 열량을 소비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몸 안의 노폐물들은 땀이 되어 흐르게 되겠지. 목위로 땀이 흘러 내린다. 손수건으로 슥 닦아 내지만..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턱 살과 목살이 겹쳐지며 끈적이는 느낌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빌어먹을 내 껍질.


이 껍질.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껍데기 인간. 그저 자리에 앉아서 남이 가져다 주는 일을 그대로 해주며 6년을 살아왔다. 주름살이 생겨가고, 허리는 굽어가고, 손가락 끝은 두꺼워졌다. 일어서서 거리를 돌아다니면 숨이 차기 시작하고, 무릎은 금방 쑤셔온다. 1시간쯤 걸으면 다리에 힘이 풀려간다. 뭘 한 것일까.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 내가 생각하는 것들. 겉과 그 속의 주체. 모두 나라는 사실을 인지해봤자, 그건 항상 상황과 직결되어 있다. 뭘. 도대체 뭘? 내가 뭘 해야 나 자신이 만족 할 수 있는 건데? 이 사무실을 뛰쳐나가서, 저 위 높은 곳, 시원한 에어콘이 있는 곳에 멋드러진 책상을 가져다 놓고, 책상 위에 올려 져 있는 건 결제용 도장 몇 개와 그 인간들은 그다지 쓰지도 않을 메킨토시 컴퓨터를 올려 놓은 사람에게 가서 사표를 제출한다. 그리고 반바지를 입고 차를 한 대 렌트 해서 바닷가로 가는 거다. 머리에는 멋진 모자와 귓가에는 모하비 선글라스를 올려놓은 체 영원할지도 모를 휴가를 보낸다.

그게 내가 원하는 건가. 그러면...빌어먹을 침대 위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매일 등에 종기가 나서 아프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내 어머니는 누가 보살펴주지? 내가 휴가 가 있는 동안 당신이 싸 놓은 똥과 오줌은 누가 치워주지? 당신을 일으켜 그 등뒤에 나있는 좁쌀 만한 종기 고름을 따주는 건 누가 하지? 누가 당신 밥을 먹여주지?....그리고..어떻게 내가 운전을 한다는 거지? 하하하하하하....빌어먹을..운전 면허도 따지 못한 주제에 항상 생각의 나래는 우주 끝까지 날아가지.

잠시 쉬고 싶을 뿐이다. 오로지 쉬고 싶을 뿐. 그러나 내 책상을 잠식해버린 저 서류 뭉치들과 이 좁다란 사무실에서 벗어나봤자, 오물 냄새를 풍기며, 침을 흘리는 여자가 누워있는 또 다른 사무실이 기다린다. 이 모든 게 무엇 때문일까. 나 자신이란 존재의 한계가 이런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징그럽게 덥다. 이제 땀은 목을 지나서 셔츠 아래 가슴부위까지 흘러내리고, 이마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곱게도 달라붙었다. 내 피부 위에는 땀들이 송글송글 맻혀 있다. 빌어먹을 껍데기. 이 껍데기를 쓰고 지금까지 내가 뭘 해 온 건가. 패배자의 껍데기. 여름이 되면 낭심은 축 늘어지고, 이마의 주름살 사이에는 땀이 고이며., 조금씩 송글송글 솟아 나오는 불쾌한 것들을 가지고 있는 껍데기. 타의인지. 자의인지 모를 상황들 속에서 꿈틀대기만한 미련한 번데기...

덥다...벗어버리고 싶다. 이 끈적거리는 불쾌하고 무능한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싶다. 항상 무덤덤한 자세로 이 곳에 박혀서 그들의 일거리, 기초단계를 다듬어주며 허무한 만족을 느끼는 빌어먹을 껍데기.

칼..칼이 있으면 되겠는데.. 커터 칼이 있던가? 커터 칼..이걸로 벗을 수 있을까? 젠장...서랍을 뒤져본다. 반쯤 끊어져 있는 공업용 커터 칼. 아크릴 판도 잘라버리는 데 살이라고 못자를까... 커터칼을 내 왼손 위에 박아서 죽 그어야지. 그리고 팔부터 조금씩 벗겨 내려가서 완전히 껍질을 벗겨내야지. 그리고 혈관은 건드리지 말고...동맥을 건드리지 말고 이 지긋지긋한 껍질을 벗어버릴수 있을까? 벗을 수 있겠지. 이런 껍질도 벗지 못한 다면..죽어버리는 게 나아. 얼굴은 나중에 벗겨내야지. 눈 꺼풀이 없는 상태에서 온 몸의 껍질을 벗겨내긴 힘들테니까..젠장...


허물을 벗자. 허물을 벗고 근육이 나오면 새로운 껍질이 씌워지겠지. 새롭게 태어나야해. 칼이 박히는 고통. 살이 찢어지는 고통. 그것은 내가 변신해 나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화학적인 반응일 뿐이다. 나는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남자는 자신의 손목 동맥을 잘라 내었다.. 살 껍질이 두꺼울 것이라고 생각한 그가 처음 꽂아 놓고 죽 그어 내린 부분이 동맥을 건드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출혈이 심하다. 라고 생각했을 뿐. 그는 동맥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어설픈 의학 상식의 말로. 결국 그는 그의 껍질의 10분의 1도 벗겨내지 못한 체 출혈 과다로 정신을 잃고 다음 날 아침 시신으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