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엉.


뻥 뚫려있던 지상에선 자동차의 엔진 소리도, 거리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차츰 사그라들더니,

너저분히 길가를 배회하던 쓰레기들이 막다른 벽에서 멈추었다.

마치 소설의 한장면처럼

사람의 형상을 한 잔상들이 내 주위를

바람처럼 휘감아 오가는 듯 하더니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에 일순 정전이라도 내린 것처럼

모두가 멈춰섰다.

" ... ? "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오른손을 마디마디 힘을주어 쫙 펴보았다가

다시금 천천히 오므렸다.

정말 마약이라도 한 듯 주체하기 힘든 심장의 쿵쾅거림은 설렘과는 다른 떨림이었다.

" 몸에는 이상이 없는 건가.. "

두눈을 지긋이 감으며 （혹은 찡그리며） 머리를 좌우로 두 번 털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온통 회색빛이었다.

나를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들의 옷가지, 각종 건물들, 봉지과자들이나 담뱃갑 등의 것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호등의 삼색을 포함한 그 기둥조차 전부다 잿빛이었다.

" 이게 무슨... "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구와 다를 바 없는 학생으로써의 삶을 20여년 간 살아왔고, 국가 수호를 위한 의무복무인

대한민국 군대도 경기도에서 2년 복무하고 왔다.

그리고 새마음으로 복학한 지 일주일 째.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아니, 차라리 귀신이 빨리 이 곡을 끝내고 날 정상으로 돌려놨으면 했다.

귀신에 쫒기 듯 미친듯이 동네방네를 뛰어다녀봐도 세상은 날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내 눈물이었을까 걱정의 땀방울이었을까 스륵 액체가 떨어졌다.

허겁지겁 그것들을 닦아 내고는 크게 소리쳤다.

" 으아아아아아아아아 !!!!!!!!!!!! "

그 순간이었다.

낡아 헤진 신호등의 색 신호기가 빨강에서 녹색으로 바뀌었다.

텅텅 뚫려있던 지상에선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거리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도시를 메우고 너저분히 길가를 배회하던 쓰레기들은 이곳저곳 휘날리고 있었다.

멈칫. 사람들은 나의 이유없는 괴성에 미간을 지푸리고는 각기 제 갈길을 가는 듯 했다.

나의 두팔에는 선명한 잿빛 땀자욱이 방울방울 묻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