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로 당신만의 소울 푸드를 맛 보세요'

인터넷이 떠들썩하다. 배달앱이 또 한번 신기원을 이뤘나보다. 21세기 초엽에 태어난 나로서는 배달앱이 지금처럼 커질 줄은 몰랐다. 배달앱은 단순한 배달, 요식업계를 넘어 국제적인 식량 자원의 큰 손으로 농어업까지 주도하고 있다. 지구를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엄청난 성장을 이뤄낸 역사적인 티핑포인트는 AI가 배달 음식을 알아서 선택해주는 구독 서비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의 일상 기록에 관한 정보를 오픈하면 사람의 행동 패턴과 취향을 분석해 좋아하는 음식을 보내주는 서비스.

물론 처음엔 엉망진창이었고 고객들의 항의도 많았다. 먼저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부분을 정의내리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사람마다 다른 것은 물론이고 그때그때 기분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니까.
아무리 좋아하던 음식도 연속으로 먹으면 물리고 조리 상태에 따라 같은 요리라도 평가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의 민원은 폭주했고 업계에선 이 서비스를 실패작으로 규정했다. 게다가 개인정보 관련한 재판이 끊이지 않았고 배달드론을 공격하는 약간의 소동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개인 일상기록 데이터가 쌓이고 AI가 고도화 될수록 서비스는 안정화 되어갔다. 상담조차 AI가 하는 바람에 민원의 양도 급감했다. 민원의 본질은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는 일이었으니까. 상대가 사람이 아닌 이상 지저분한 실랑이의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차차 타협하고 받아들였다. 일상기록 데이터를 세세하게 오픈할 수록 구독 할인률은 높아졌고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이라면 오히려 엄청난 수입이 되기도 했다. NFT로 발행된 그들의 먹방 영상은 종종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특히 연예인 2세가 무언가를 처음 먹는 영상이 가치가 높았다. 현재 연예인이란 직업은 최상의 외모 유전자를 보존하는 세습제에 가까웠기 때문에, 연예인 2세도 연예인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래도 소울 푸드는 선 넘었지 어딜 감히 소울을 들먹여'

나는 반발심이 들었다. 배달앱이 이렇게 된 과정을 보면서 늙어온 나는 앱이 인간의 도구로 쓰이던 시절을 기억한다. 나는 인간이 앱의 자원으로 쓰이는 지금이 역하다.

개인 VR영상 플랫폼엔 인플루언서들의 '소울 푸드' 먹방 영상이 NFT로 발행되어 이미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나는 딱히 먹방 따위를 보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온갖 미디어가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강제로 보여주기 때문에 화제가 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미 수십년에 걸쳐 쌓인 조 단위의 먹방 영상이 있다. 그런데도 가치 높은 먹방 영상이 최근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영상까지 보기는 귀찮고 짤만 잠깐 보도록 해야겠다. 훑어보니 대부분 오열하거나 흐느끼는 영상이다. 화내면서 음식을 던지는 영상도 있다. 진짠가 싶다가도 페이크 영상이 워낙 많은 세상이라 안심할 수가 없다. 하지만 호기심이 동하기엔 충분했다.

'아니 저 양반은 소울푸드가 뭔 사발면이야? 뭐야 울어? 왜 저래?'

몇 가지 짤을 보고 파악한 것은 일단 음식의 종류를 종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희귀한 위스키부터 컵떡볶이까지. 어떤 음식이 나올지 모른다는 것도 강력한 마케팅 포인트로 소구하는 모양이다. '아니 근데 위스키도 푸드야?' 이 열풍속에 홀로 불편한가보다. 가격은 오픈 후 후불제라는데 환불건이 거의 없단다.

내가 졌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이것은 배고파서 시키는 것이 아니다. 배달앱 소울푸드 배너를 누른다. 그동안 구독료만 내고 대충 받아먹었는데 오랜만에 시켜 먹으려니 정신이 아찔하다.

배달은 커녕 조리 단계부터 온갖 옵션이 가로막는다.
"소울푸드 조리 영상을 NFT로 발행하시겠습니까? 발행하시면 배달월드 거래소에 자동으로 등록되며..."

안해 안한다고. 속으로 울컥하는 뭔가를 꾹 누르며 거절 버튼도 누른다.

"포장부터 드론으로 고객님께 배달하는 모든 과정에 고속모드 옵션을 추가하시면 15분 시간 단축 효과를 경험하실 수.."

'아 쫌. 뭐가 이리 많아.' 앱이 끝도 없이 떠든다. 어차피 인간의 60%는 아무 일도 안하고 기본소득으로 먹고 살며 소비하는 삶. 늘 시간만 많다. 들어주는 시간이 아까운게 아니라 내용이 괘씸하다. 소비만 하고 모으지 못하는 인류 양성 목적이라도 지닌 듯 어떻게든 뽑아 먹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소울푸드 드시는 동안 배달 로봇이 선사하는 고품격 다이닝 서비스를 즐기시려면 '동의'라고 말씀 해 주시기..."

배달앱에서 배달 로봇이 테이블냅킨을 팔에 걸치고 소믈리에 처럼 포도주를 따르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되뇌인다. '안동의. 안동의.'

"배달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착하실 때 까지 방송되는 광고를 봐 주시면 10% 할인이 적용됩니다. 광고 영상에는 홍채 감지 장치가 달려 있어 30%이상 시선 이탈시 할인이 적용되지 않.."

나 어릴적 공인인증서라는게 있었다. 문득 차라리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지금이었다. 소울푸드를 먹기전에 영혼이 망가지고 있다니.

이윽고 영혼을 지불하고 얻은 소울푸드가 도착했다. 귀에 익숙한 배달 드론의 등장 음악이 울리고（의외로 교향곡이다） 양손에 작은 상자를 든 녀석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근데 좀 작다? 뭐가 들은거지? 나 랍스터 예상했는데?

내가 내 소울푸드를 모를 수가 있구나. 아차, 사람들이 그래서 운 거였을까? 자기도 모르고 배달앱밖에 모르는 진솔한 자신의 영혼을 발견해서?

배달 드론을 퇴장 음악과 함께 돌려 보내고, 식탁 위 작은 상자만을 눈앞에 둔 나는 이카리 겐도*가 되었다.
（*에반게리온 참조）

맞춰보자. 이걸 못 맞추면 나는 진거다. 내 영혼에 나보다 배달앱이 더 가까울 순 없다. 크기가 단서다. 이건 정상적인 한끼 식사의 크기가 아니다. 마치.. 왕만두? 아니야 상자가 그것보단 높고 가늘어. 야쿠르트라고 하기엔.. 좀 크지? 공산품 같은데 마치 어린시절 편의점에서 팔던.. 아.

"커스터드 푸딩"

상자를 열었다. 그때 그 푸딩이었다.
아주 어릴 때, 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사 주신.
오래도록 안보여서 단종 되었다고 믿었는데. 확실히 그때 그 브랜드, 그때의 그 포장이다.

ㅆㅂ. 이 자식들 진심이구나? 욕이 나온다. 이건 좀 선을 넘은 것 아닌가? 턱관절에 힘이 들어가고 주먹을 쥔 손이 부들거린다. 스마트폰이 눈이 간다. 순간적으로 왜 화가 나는지 잘 정리되지 않지만 머리를 스치는 단어는 '장삿속', '이용해먹는' 따위의 것들이었고 입속에 맴도는 말은 '어떻게 알고'였다.

조용한 분노의 공기를 깨는 것은 배달앱의 음성이었다.

"그래서, NFT 영상을 발행하시겠습니까?"

"너 지금, 그래서 라고 했냐?"

미묘하다. 미묘하게 불쾌한 말투다. 마치 번역기를 착용하지 않고 직접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이라면 느끼지 못할만큼 은근하게 건방진 말투.
나는 AI를 아직도 대화 상대로 안정하지 않지만 방금은 반사적으로 토를 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니, 핸드폰은, 아니지 보이스웨어? AI? 어쨌든 그것은 침묵하고 있었다. 이젠 대답도 안한다. 내가 되도록 AI와 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방금과 같은 말에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리즘에 기록됐으리라. 앞으로 날 어떤식으로 긁어댈지 쎄한 느낌이 온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가장 아픈 개인의 과거를? 그 시절엔 모든 것이 이 정도로 발달하진 않았다. 스마트폰이 나의 모든 말을 도청하고 녹음하여 마케팅 리소스화 한다는 그 시절의 음모론이 어쩌면 사실이었을까?
내 기억으론 어머니와 관련된 무언가를 성인이 되고 딱히 언급하거나 검색한적이 없다. 21세기 초 어느 시점에 아마도 불법으로 기록된 무언가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이 빌어먹을 푸딩을 소울푸드랍시고 나에게 팔아치운 것이다.
잠깐, 근데 늘 오던 구독제 배달 음식은 오늘 왜 안왔지? 소울푸드를 시키기 전에 왔어야 정상인데..

하. 읽히고 있는건 나였어. 먹히고 있는건 나였구나.

혼미한 채로 창 앞에 섰다.
저 멀리 질서 정연하게 줄을 맞춰 날아다니는 배달 드론들은,
어머니의 사고를 눈 앞에서 본 어린 내가 떨어뜨린 커스터드 푸딩에 꼬이던,
마치 그 개미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