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아이의 이름은 윤석.

그리고

또 한 명의 소중한 문예부원이야.



...



"도서관? 언제 갔는데?"



"음...한 시간정도 된 것 같아..."



윤석

검은테 안경을 쓴 그 아이의 눈매는

시베리아 타이가를 스쳐가는 매서운 눈발처럼

차가운 오로라를 훅훅 뿜어내고 있었어.

왼손에 들고 있는 소설에만 눈길을 쏟으면서

말을 거는 우리는 바라보지도 않았지.

기분 나빠.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정말 적당한 체구에 살짝 마른 몸.

와이셔츠 소매에 맞닿은 묵주는 천주교 신자임을 조용히 반증하고 있었고

단정히 자른 머리는 자기 성격마냥 차분한 느낌을 주었어.

그야말로 모범생.

역시 기분 나쁜 녀석이야.

여하튼

저 녀석하고는 친해지기 힘들 것 같다..라는 기분?

그래도 지금은 녀석이 필요하지.

형우를 찾아야 하니까.




...





귀에 꽂아두었던 Mp3 이어폰을 슬그머니 빼더니

주머니에서 책갈피를 꺼내 책장 사이에 끼워넣고

내키지 않은 듯 퉁명스레 던지는 말.

"뭣하면..같이 가줄까?"


어라?




...




그렇게

지효와 윤석과 나는

세 명이 나란히 학교 도서관으로 가게 되었어.

어쩔 셈이지. 도대체.

도서관으로 가는 도중에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내 뒤를 바쁘게 따라오는 지효도 아니였고

낯빛 한 점 변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윤석도 아니였다.

그건 말이지. 바로 나였어.

이 임시 문예부장이 말야.



...



"너말야, 문예부장 한 번 해보지 않을래?"

부장으로부터 받은 리스트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있을 때

느닷없이 들려오는 부장의 묘한 회유는 나의 마음 속에서 상당한 동요를 일으켰다.

"그건 무슨 말이죠? 문예부에는 원래 부장이 한 명밖에 없지 않나요? 3학년에......"

어느 동아리든지 3학년에서 뽑힌 부장이 동아리 전체를 진두지휘하게 되어 있는 것이 동아리 교칙이다.

그렇기에 부장이 하고 있는 그 말은 단순한 장난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지.

무슨 생각일까, 이 사람은.

"아니, 그게 말야. 원래 이건 계획에 없었던 일이거든. 음, 너한테는 말을 해두어야겠지. 작년에 부장이였던 선배가 어제 방과 후에 나를 따로 부르더니, 자기는 이제 3학년이 되니까 문예부에 쏟을 시간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네가 문예부장 자리를 이어달라고 그러는거야... 이건 사실 조금 무책임하다고 해야 하나...... 말이 이어달라는 거지, 사실상 떠넘기는 것이거든. 애당초 2학년인 내가 동아리 부장을 맡게 되면 동아리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 우리 학교 문예부는 말야, 3학년이 중심이 되고 1,2학년이 보조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동아리야. 평소의 활동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봐도 괜찮아. 그러니까 2학년에도 부장격인 존재가 있기 마련이지. 문예부 특성상 부장 혼자서만 동아리를 꾸려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말야.

작년에는 내가 부부장....이러면 말이 이상하지? 음...부단장 격이였어. 말 그대로 부장이 하는 일을 도와주는 역할이였지. 그랬는데.......이건 아까 말했지? 여하튼 그 '사건'이후로 우리 문예부는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어. 지금은 3학년이 된 당시 2학년들이 대거 퇴학당하거나 자퇴를 해서 남아있는 사람의 수도 턱없이 적었고, 남아있다고 해도 그 충격의 여파가 사라지지 않아 그나마의 활동도 모두 중지되었지. 작년 부장도, 말이 3학년이 되었으니까 그만 하겠다는 거지, 사실은 이제 문예부에 남기가 싫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충격을 받았을 부장이었거든. 이건 비밀인데, 그 때 부장 자신도 문예부를 나오려고 했어.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고 일을 끝맺으려고 한 거야. 그런 걸 어떻게 보고만 있어. 나는 당연히 반대했지. 정 그렇다면 부장에서 물러나면 되지 않느냐고. 지금 와서 문예부를 나와버리면 남은 우리들은 어떻하냐고. 그랬더니 부장이 내가 물러나면 비어 있는 부장 자리는 누가 채우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임시 부장을 하겠다고 나섰지. 부장의 슬픈 얼굴을 보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고,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부장의 짐을 짊어지겠다고..... 부장이 나를 보고 싱긋 웃더니, 그러면 임시 부장직을 맡아보라고...그랬어."


아 그랬던 거였군.

이 사람

작년에도 문예부장이였다고 하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런 것이였군.

뭐야. 부장도 사실 그 사건하고는 별로 관련이 없는 단순한 일반인이였잖아.

그러면 이른바 그 '임시 문예부장'이라는 직위는 작년에 신설된 따끈한 자리...라는 건가.



"이제 내가 문예부장이 되었으니 그 '임시 문예부장'자리가 비게 되거든."

"네가 그 자리를 꼭 채워주었으면 해. 안되겠니?"



그 자리에 내가?

왜?

그럴 이유가 있을까?


"나도 모르겠어. 왠지 너라면.....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요? 그다지 능력있는 놈은 아니라서요.


사실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올해 새로 가입한 부원도 아직 3명밖에 되지 않고...네가 가장 빨리 신청하기도 했고."


그러니까 딱히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겠네요.


"그리고 네 눈....네 눈이라면 믿을 수 있어."


에? 무슨 소리? 아니 그런 낯부끄러운 소리를 당당하게 내뱉을 수가 있으세요?


얼굴이 진홍빛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와중에도 마음속으로는 이런 저런 말들이 가득.


하지만 부장의 그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를 모른채 하기란 정말 어려울 것 같았지.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은 내 특기가 아니라서 말이야. 젠장. 또 걸려들었구나.


"-그럼....."



"...네."


언제 준비했는지 부장은 부실 서랍에서 계약서 비스무리한 종이를 꺼내더니

만년필과 함께 나에게 건냈다.

싸인이라고 할 것도 없이 내 이름을 적는 걸로 계약 성립.



"고마워. 이제 너랑 나랑은 한 배에 탔네."


어?


"무슨 소리야. 이 망해가는 빌어먹을 문예부를 살리는데 네 몸을 불사르라고. 젊은 청년."


잠깐


이건 또 뭔가.


뭐냐고



...
















나는 그 아이를 사랑했다.6입니다.

하하

요즘 글을 너무 잘쓰시는 몇몇 분들이 돌출하셔서

자신감을 잃어가네요 헤헤

슬픈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