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이 별로 없어서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하지만 내 발걸음을 집이 아닌 다른곳을 향했다.

꽤 허름하지만 주황불빛아래 여러사람들이 삼삼오오 시끌되는 작은 포장마차였다.

그곳에서 나는 하연이의 눈을 꼭 닮은 40대 중반의 아저씨를 만날수 있었다.

가볍게 목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저씨의 얼굴은 그동안의 고생과 연륜이 잔뜩 베어 있었다.

조용히 술한잔을 따라주던 아저씨가 입을 땠다.

"하연이를 보살펴 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저희집에서 살고있습니다."

하연이 아버지를 직접 본건 처음이지만, 별로 반갑지 못했다.

하연이가 울고 힘들었던 시간을 지켜본 나는, 이 아빠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밉게 느껴졌다.

한동안 말없이 술잔이 오고가고,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하연이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

잘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선뜻 '그렇게 하십시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변명이라도 왜 가족들을 버렸는지가 듣고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한참을 대답을 하지 못하고, 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하연이가 정말 행복해지는 길이 뭘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무래도 가족과 함께 있을때가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메모지에 우리집주소를 적어주고, 내일 오시면 될거라는 말을 한뒤 일을 핑계로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한캔샀다. 하연이가 좋아하는 사이다도 한캔 샀다.

"오빠!!!! 왜 전화도 안받고 왜이렇게 늦었어요!!"

"미안미안 같이 일하던 아저씨가 다쳐서 병원좀 갔다오느라고"

심술이 난 하연이는 투덜투덜 되면서, 내가 먹을 저녁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하연아 오빠 먹구왔다."

"아아아아!!!! 여지껀 뭐한거야 힘들게 계란말이 해놨는데요!!"

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편의점에서 사온 사이다를 하연이에게 건내고, 맥주캔을 땄다.

"오자마자 술이에요? 으으~ 술냄새 으으~ 아저씨 냄새~"

코를막고 손은 휘휘 저어보는 하연이.

귀엽기만한 이런 하연이도 이제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실감이 좀 나질 않았다.

"하연아"

"네?"

"아빠 보고싶어?"

급 정적이 흘렀다.

"......"

"아빠가 하연이 보고싶어 하던데?"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냥 그렇지 않을까 해서 아니야?"

"잘 모르겠어요 아빠... 엄청 미웠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하연이는 어느새 내옆에 쪼르르 와서 사이다캔을 따고 벌컥벌컥 들이킨다.

잠시 머뭇하던 말을 꺼냈다.

"하연이 아빠... 내일 오신대...오늘 오빠랑 만났어"

푸후후후훕! 쿨러쿨럭

먹던사이다를 뱉어내더니 토끼눈이 되서 날 쳐다본다.

"내일 오실꺼야 미리 짐싸고, 아빠만나자 알았지?"

말이 없었다.

점점 뭔가 울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볼수가 없었다. 나도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아 담배없네 슈퍼좀 갔다올게"

자리에서 도망치듯 일어나 문밖을 나왔다.

한참이나 들어가지 못하고, 놀이터에 앉아 두시간쯤 있었을까?

쌀쌀해진 날씨가 꽤나 을씨년스러웠다.

아마 하연이와 처음 만났것도 작년 이맘때였다.

하연이와의 첫만남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후우~ 심호흡을 크게하고 집을 들어갔다.

하연이는 자고있었다. 방안은 캄캄했다.

하연이 머리맡에 조용히 앉아 하연이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앞머리가 가린 눈을 보이게 정리하니, 퉁퉁 부은 두눈이 보였다.

다시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보내줘야 한다는걸 알고 있기때문에, 맘이 더욱 아팠다.

창문을 열고 달을 봤다.

보름달이다. 눈이 아플만큼 밝았다.

내일은 저 달처럼 우리도 밝게 인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한참을

달구경을 했다.

그 날은 잠이 오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