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문예부에 가입하려고 했어.."


...


지효의 솜결 같은 말.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풀꽃 같이 여린 가슴을 가진 아이.

언뜻 살펴본 나의 긴장된 얼굴과

움찔거리는 표정에 흐르는 땀방울을

쉽사리 뿌리칠 수 없었던 마음이

거짓된 대답으로 흘러나오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아이의 꽃 같은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에

감히 어떠한 의심조차 품어보지 못했는걸.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음 그래

바보 같이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어.

한심했지. 나



...



"..왜 그래? .."

미안해. 이런 바보라서.

하지만 아까 해준 말에는 꽤나 기뻤어.

고맙다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자전거를 많아 타서 다리가 아파."



...



이렇게 문예부 1학년 부원은 두 명이 되었다.



...



사실

우리 학교 문예부는 주위에서도 알아주는 인기 좋은 동아리였어.

다른 학교와 연합해서 문집도 발행하고, 여름방학에는 동아리 캠프도 가고

해마다 가을이 되면 문학의 밤까지 열어 시 낭송회를 개최했을 정도였으니 말야.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작년을 끝으로 그 모든 것이 중지되었어.

이건 나중에 문예부 부장으로부터 들은 말인데

우리가 입학하기 직전 기수의 선배들이 일으킨

어떤 '사건' 때문이래.

불순한 의도로 문예부에 가입한 몇몇 학생들이

문예부를 연애의 장소로 변질시켜 동아리 활동에는 거의 참여를 안하고

풋익은 사랑만을 속삭이다가

어느 날

모두가 빠져나간 오후의 부실

감미로운 노을녘이 다가오는 창가에서

두 사람의 선배가

'사고'를 쳤다지 뭐야.

그렇게 말하는 문예부장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어.

아마 부장도 그 때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

자신이 부장으로 있으면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났으니.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앞으로 다가올 어떠한 악몽에 대해 감조차 잡지 못했어.

사고라니?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걸.



...




가입신청서를 내고 온 지효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를 몰랐어.

거듭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도 이상했고

한편으로는 이 아이의 진심이 궁금했어.

정말로 문예부가 좋아서 그랬던걸까.

아니면...

아

모르겠어.


...



그러자 문득

동아리 회원이 8명이 안되면 자동으로 폐부가 된다는

아찔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

아직 우리는 두 명일 뿐인데.

다른 아이들에게도 물어봐야 하나.

그러나 생각해봐.

요즘 누가 두꺼운 문학책을 뒤적거리며

예쁜 시 구절이나 암송하고 다니겠어.

글쓰는 것도 귀찮아하는 시대에...

나 같은 바보가 아니고서야.

답답했어. 어디서 부원들을 구한단 말야.

그래도 일단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2학년 문예부장에게 부탁해 지금까지 문예부에 이름을 올린 아이들을

찾아보려 했어.

급하지도 않은 일인데도 숨가쁘게 문예부실로 달려간 나는

사뭇 어둑한 얼굴로 가입희망자를 받고 있던 부장에게 다가갔어.

나를 보고 살그머니 미소를 짓는 부장.

묘했지. 생각보다 예쁜 사람인 것 같아서 말야.

...


"응? 왜 또 왔어? 가입 신청은 이미 됬는걸."

그게 아니에요.

부원이 8명이 되지 않으면 문예부가 폐부된다고 했잖아요.

왜 그렇게 침착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거에요.

부장이잖아요.

-라는 말은 내 입의 문턱에만 머물렀어.

한 대 맞을 것 같았거든.

부장의 어둑한 얼굴을 대하는 것도 왠지 모르게 껄끄러웠고

그래서 나는 내 볼 일만 보고 어서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지

그래서.

조용한 목소리로 부장에게 말을 걸었어.

"지금까지 문예부에 가입한 올해 1학년의 명단을 받을 수 있을까요."



...



부장으로부터 문예부 회원 리스트를 받은 순간

나는 입에서 새어나오는 한숨을 주체할 수 없었어.

선명하게 보이는 굵은 검정 마크의 이름.

지효와 내 이름이였어.

첫번째 페이지에는 그게 다였어.

아

역시 아무도 가입을 하지 않았구나.

맥이 탁 풀렸어.

이대로 문예부는 폐지가 되는 것 같았고

지효와의 인연도 이렇게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몸이 떨려왔어.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벌써 지효를 내 친구로 마음 먹은 거야.

...

두 번째 페이지를 걷었어.

아찔거리는 눈길을 종이에 주었지.

내 눈동자에

어떤 이름이 서서히 스며들었고

그것은 차라리 하나의 감동이었어.

...

새파란 싸인펜으로 멋대로 휘갈겨 적은

그러나 그 자신만큼 상쾌한 기운이 담긴

세 글자.

뿔테 안경의 바가지 머리.

항상 나를 북돋아주며 용기를 주었던

나의 소중한 친구

형우가 그 곳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