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내 앞에는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없이 걸어가고 있다.



아버지는 크게 한숨을 내쉰뒤 문을 열어 교무실로 들어갔다.







"아 아버님 안녕하세요. 저기 다름이 아니라 민수가..."



담임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이광철의 부모님이 아버지를 노려보며 따지듯 말했다.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킨겁니까?어떻게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드냐구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애들한테도 이야기를 들어봐야..."





이광철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아들의 상태를 살폈다.



아들을 살펴보는 그 눈빛은 마치 어떻게든 돈을 뜯어내려는, 어른들의 말없는 싸움이었다.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생각에 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이런 말씀드리면 죄송한대요...사실 광철이가 며칠전부터 절 심하게 괴롭혔거든요.그래서 제가 화가
나서 그만..."



"아니 얘좀봐라, 그럼 우리 광철이가 이유없이 널 때리기라도 했다는거니?"




난 그 말을 듣고 따지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말해도 그들은 믿지 못할테니.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의 말은 언제나 묵살된다. 예나 지금이나.








"저기 그럼 이 문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마치 아버지가 가해자 부모님인것 마냥.







"뭘 어떻게 해요. 합의금 받고 끝내야지."



그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역정을 낸다. 그래야 할건 우리인데.






왜 이광철도 가만히 있는데 부모란 사람들이 더 난리를 피우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진정 말없이 앉아있는


이광철을 보고도 녀석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때 담임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내 결백을 말하려는 거라면 빨리 말해라.제발.





그 담임의 모습이 이광철의 부모에게까지 보여졌나보다.







"무슨 일 있어요? 왜 그래요?"



담임이 죄송하다는듯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이광철군이 예전부터 김민수군을 괴롭힌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이광철학생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적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학교폭력 관련된것도


꽤 있고요. 우리 학교는 학교폭력 5건 이상 적발시 강제전학되는거 아시죠?


그래서 부득이하게 선도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이광철군을 전학조취시켜야 할것 같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나와 이광철의 부모는 상반된 표정을 지었다.





이광철의 부모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우리 부모님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의 부모는 잠시동안 패닉상태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다 말했다.






"그럼 강제전학을 막을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겁니까?"



담임이 조금 뜸을 들인후 말했다.




"그게...방법은 하나 있습니다. 피해 학생이 가해학생의 전학을 원치 않는 경우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이 비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담임의 말로 인해 상황이 역전되었다.









그들이 날 보는 눈빛에도 불구하고 난 그들을 향해 단호한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냥 전학보내는게 나을것 같네요. 아들 성격 좀 고치려면."






날 그렇게 비난하던 자들과 무슨 얘기를 한단 말인가.


어차피 상황이 역전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의 돈을 빨아먹었을 놈들인데...




아예 상종을 하지 말자.





"선생님. 이제 할말 끝났으니 가도 되죠?"




난 의기양양하게 교실을 나갔고 우리 부모님도 나를 따라 나왔다.



복도를 말없이 걷다가 아버지가 말했다.







"잘했다."



아버지가 날 칭찬해주는건 처음이다. 오히려 더 혼날것 같았는데.




"앞으로도 이런 일 있으면 참지 말거라."


"예..."



어머니는 그런 부자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잠시나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돌았다.





밖으로 나와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지고 있는 석양을 친구삼아 우리가족은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집을 가고있는 와중에도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무 녀석을 심하게 때린것은 아닌가?하고.








해가 다 저물어가고 있을 때쯤에 집에 도착했다.



난 문을 열고 들어가 녹초가 된 몸으로 소파위에 누웠다. 너무나 힘든 하루였다.






난 바로 tv를 틀었다. tv에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유한도전이 나왔다.



하지만 심신이 너무 지쳐버린 탓인지 tv가 전혀 재밌지 않았다.



더 보려고 했으나 이미 나의 뇌는 나를 향해 잠자라는 명령을 내렸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 난 그대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에서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렸다.



난 간신히 눈을 뜨고 전화를 받았다.



빨리 얘기하고 끝내야겠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들은 난 순간 굳어버렸다.




"야 김민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광철이었다.







"왜."


"지금 만나자. 너랑 화해하고 싶다."


툭.


전화가 끊어졌다. 왜 다 자기 할말만 하고 끊는건지 원.


어찌됬든 지금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충 패딩을 걸쳐입고 나왔다.



나오는 도중에 혹시 녀석이 술을 먹자고 하지 않을까해서 돈도 많이 챙겼다.






"술마시고 있었냐?"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대로 이광철이 한껏 취해있었다.



녀석이 붉어진 얼굴로 포장마차안의 사람들이 다 들리도록 소리쳤다.





"내 친구왔구나,친구!!"


난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쨋든 녀석은 지금 나와 화해하기 위해 날 부른 것이니.






녀석이 갑자기 술한잔을 따르더니 나에게 건냈다. 난 잠시 말없이 술잔을 응시하다가 오늘 제대로


화해하자는 생각에 술잔을 잡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래 이 자식, 남자네. 오늘 우리 쌓인거 제대로 풀자."


녀석이 술에 취하기는 했나보다. 이렇게 화통한 모습을 보인적이 단 한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도대체 몇번째 전화인지 모르겠다.


내가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받으려던 찰나 이광철이 내폰을 닫아버렸다.





"야 임마 오늘은 우리 둘만 있는거야.방해꾼없이."


녀석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술을 마셨다. 그래,나도 오늘 한번 취해보자.



난 있는대로 술을 따라 마셨고 술잔을 비워갈수록 분위기는 더 달아올랐다.







"그니까 나도 처음엔 장난이었다. 이 말이지."



술을 많이 마시니 녀석과 나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얘기했다.



물론 녀석이 장난으로 나를 때렸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거짓임이 뻔했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관대하게


넘어갈수 있을것 같다.






"미안하다..."



"응?뭐가?"



"내가 오늘 너 때린것 말야."



"아 그거? 별로 신경쓰지마. 내가 먼저 시작한건데 뭘."






이 자식이 술을 먹더니 정신줄을 놓아버린건가. 내가 아는 이광철이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녀석이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서 말했다.





"사실 나 말이야...어릴 때부터 집안이 안 좋았어. 아버지는 맨날 술에 취해 어머니를 때리고


어머니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어. 우리 집은 한시라도 조용할 날이 없었어.


그 때문에 나도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래서 중학교1학년떄 아버지에게 반항하려고, 당신 때문에 내가 이 지영이 되버렸다는걸 보여주기 위해서


질 안 좋은 녀석들과 어울려버렸지. 물론 지금은 내가 그중에서도 으뜸이 되버렸지만."






그 말을 듣고있다가 무심결에 녀석의 눈에 맞힌 눈물을 보았다. 정말 안 좋은 기억이었나 보다.



이렇게 강해보이던 녀석이 그런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 놀란 표정을 무시한채 녀석이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은 두분이 이혼하셨어.아까 본분은 새아버지야.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괜찮은것 같다."




난 녀석에게 왠지모를 동정심이 생겼다. 그리고 결심했다.


녀석을 용서하기로.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녀석의 말은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 강제전학가는거 어떻게 막아주면 안될까?"



난 그 말을 듣자마자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여태까지 녀석이 날 이용한건가? 단지 자신의 전학을
막기 위한 용도로?







"이광철 실망이다. 나랑 화해하려고 한것 아니였냐?"



"아니 그건 맞는데 화해하는 참에 내 상황도..."



"그니까 날 이용한거 아니냐고."





그러자 이광철이 잠시 날 노려보더니 나를 향해 술잔을 던졌다. 술잔이 내 옆에서 깨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녀석이 날 처음볼때의 말투로 말했다.







"그래 애초에 너랑 화해할 생각도 없었어 더러운 새끼야."



그 말은 나에게 녀석을 용서할 마음이 더욱더 사라지게 만들었다. 난 더 볼것도 없다는 듯 일어섰다.






"됬다. 애초에 너하고 난 물과 기름 사이였어."



그 말을 내뱉고는 난 사납게 포장마차를 나왔다. 녀석과 이야기해서 얻은 것은 더러운 기분 뿐이었다.


덕분에 술기운이 다 깨버렸다.





그런데 어쩌지? 이대로 집에 들어간다면 죽을텐데...



그러다 갑자기 배에서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인도에 앉았다.





그래도 이렇게 앉아있으니 울렁거리는 느낌이 사라지...기는 커녕 훨씬 더 심해진것 같다.







결국 쓰레기 봉투를 발견한 난 그곳에 대량의 분비물을 방출하고야 말았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후 난 바를 부여잡고 나 자신을 진정시켰다. 조금 지나니 몸이 괜찮아진것 같았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너 김민수 아니니?"


뒤를 돌아보니 김현지와 우리 반 여자애들이 있었다. 꼴을 보아하니 여자애들끼리 화끈하게 한바탕 벌인
모양이다.




난 여자애들을 향해 반갑다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게 애들의 눈에는 아픈환자의 다 죽어가는 미소로
보였나보다.





"어? 너 상태가 왜 이래. 어디 아파?"



"그게 아니라 술을 마셨더니 어지러워서."



"에효. 작작좀 마시지."








김현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전화온거 아니야?"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주머니 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정신이 없어서 듣지 못했나보다.


아까 전화 걸었던 사람인가? 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누구세요 말하세요."



"나야..."





목소리만 들어도 알수 있었다. 2년전에 떠난 그녀다. 갑자기 왜 전화한거지?






"어...왜 전화했어?"



"나 사정이 바뀌어서 내일 5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할것 같아."





그 말을 듣고 순간 할말을 잃었다. 난 아직 그녀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난 말없이 폰을 내려놓았다. 옆에서 김현지가 물었다.





"너도 혹시 다음주에 시험 끝나고 우리랑 놀지 않을래? 남자는 너 혼자인데."






난 그 말을 무시하고 귀신에 홀린듯 눈 앞에 있는 택시를 향해 달렸다.


그러자 뒤에서 김현지가 소리쳤다.





"대답은 해야지!!!"



"알았어 그날 같이 놀자!!"







대충 대답을 한 나는 그대로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은 사람처럼 자신있게 말했다.



"인천공항으로 가주세요."




내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듯 택시 아저씨가 거칠게 차를 몰았다.



잘됬다. 어차피 지금 집에 들어가면 반죽음일테니...






지나가는 가로수를 보며 다짐했다.



그녀와 김현지에 대한 혼란스러운 이 마음을 확실히 정리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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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못 쓸것같아 오늘은 좀더 썻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