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한히 이어지는 시간을 일컫는 추상적인 개념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것이란 무엇인가.
영원은 시간에 예속된 채 특정 개념에 영속되는가? 영원은 오직 형용사로서 기능하며 독자적인 존재로는 실재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영원이 영속된 존재의 개념이 변질된다면, 그것은 영원하다고 할 수 있는가?
불로불사란 무엇인가.
세월에 마모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를 뜻할 것이다.
그것은 본디 도교에서 말하는 선인이요, 불자가 일컫는 부처이겠지.
불로불사란 영원한 존재인가.
우주가 무너지고 짓이겨지더라도 그 삶이 끊어지지 않는 존재라면.
그야말로 무한한 시간 아래 실존할 수 있는 존재라면 영원할 수 있는가.
무한한 삶에 개인이 개인으로 실존한다면, 그것은 영원한 것인가?
유명한 형이상학적 난제 중, 테세우스의 배의 난제가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난제.
테세우스의 배에서 낡은 판자를 하나씩 갈아 끼우다 보면, 어느 시점에는 테세우스가 탔던 원래의 배의 조각은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볼 수 있는가?
이러한 이야기를, 아까의 이야기로 옮겨 보자.
우리는 세월의 파도 속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바꾸어 나간다.
불로불사의 존재가, 세월이 파도 속에서 변화해 간다.
그 불사자의 모습에서 과거의 그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면, 그 존재는 '영원하게'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절대적으로 옳은 답을 낼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판자를 갈아 끼운 배는, 누군가에겐 테세우스의 배고, 누군가에겐 아니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테세우스의 배라는 개념 자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허상으로 볼 것이다.
근본적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서, 우리는 늘 무엇에 의존해 왔는가.
우리는 늘 믿음에 의존해 왔다.
우리의 불완전함을 믿음으로 메워서 살아남아 왔다.
자아는 참으로 오묘한 것이어서, 스스로 사고할 수는 있으나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지라 홀로 남겨 두면 멋대로 붕괴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모순적인 우리의 자아를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메운다.
과학이 세상 모든 이치를 밝혀낼 수 있다 생각하는 이들은 과학을 믿고
초월적인 무언가, 또는 옛 현자들의 말들에서 믿음을 얻고자 하는 이들은 종교를 택한다.
이에 옳고 그름은 없다. 모든 사회현상이 그러하듯이,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실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니까.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상 그 모든 것을 불신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인 것만큼은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임을 믿어야 인간으로 남는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알던 그 모든 것은 사고의 근간으로부터 뒤엎어져 붕괴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과거와 이어져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영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불사자처럼 무한한 시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지라 할지라도, 그것을 과거와 분립하는 순간 그것은 현재라는 외딴섬에 남겨져 존재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 순간 그것은 과거의 것과 다른 것이 되고, 현재의 그것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나는 불완전하다.
두려움을 지워낼 수 없다. 모든 두려움을 지워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초월한 것이겠지. 끊임없는 두려움과 망설임이 자신을 잡아먹으며, 수많은 망상과 공상과 썩어빠진 생각들이 자체를 갉아먹을 때 나는 믿음으로 구멍 난 자아를 메워 생각의 풍랑을 헤쳐나온다.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그저 나를 고깃덩어리라고 불러야 할 뿐, 나를 나라고 부르지 못하게 되겠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언제까지나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라고 믿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나는 변하고 싶지 않다. 변해버릴 내가 너무나도 두렵다.
그럴 때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내 믿음 자체를 의심한다면 그 믿음은 무엇으로 지켜내야 하는 것인가.
그럴 때, 나는 영원을 믿는다. 우리의 삶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설령 내 삶이 죽음이라는 덧없는 개념에 덧칠될지라도 그것은 또 다른 무언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믿음을 또 다른 믿음으로 덧칠해가는 그 과정마저 영원이라고.
그것을 영원히 반복해가는 것이 영원이다.
우리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미숙한 사고를 또 다른 사고로 덧칠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음이 있다. 우리의 모든 믿음이 붕괴할 때 또 다른 무언가로 그것을 덧대어
무한히 두꺼워질 뿐인 사고의 댐을 땜질할 수 있다.
이 영원의 굴레 속에서 내가 어디까지나 나임을 믿는다면
그리고 우리가 끝난 후에도 우리의 육신은 그리고 정신은 흙이 되어 땅에 묻힘을 알고
그리고 그것마저 형태가 바뀌었을 뿐인 우리임을 믿는다면
결국 얼마나 세상이 졸렬하게 우리의 목을 졸라올지라도
우리는 우리 다음이 있음을 믿고
그 다음 역시 우리임을 믿기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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