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 이상황은.




"귀썩었냐? 빵 사오라고."



이게...그 말로만 듣던 빵셔틀? 이게 진짜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녀석의 횡포에 더는 견딜수 없었다.



"저기...돈은?"


이런 멍청한놈. 항상 이럴때 입이 제멋대로 행동해가지고.





"미쳤냐? 니돈으로 사와. 카스테라 2개로."



원래의 내 성격대로라면 당장에 주먹을 날려줬을 터이지만 나도 모르게 내 몸은 최동민과 함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으로 달려가는 순간에도 이 수치심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고 내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다.



불과 몇개월 전만 해도 이런상황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나인데.






난 허겁지겁 카스테라를 고른뒤 계산대 위에 올려두었다.


"4000원입니다."




난 이내 소심한 손으로 내 피같은 내돈 4000원을 알바에게 쥐어주고 편의점을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것 같았다.내가 왜 저런 녀석에게 이런 수모를 받아야 하는지.






우사인볼트도 울고갈 스피드로 다시 그 뒷골목에 들어갔다. 역시나 그 안에는 놈들이 한껏 폼을 잡고
있었다.



"빵 여기있어."


"수고했다.수고비로 너 빵 하나 먹어."


이 자식이 지금 장난치나...



"넌 뭘봐 새끼야."


이광철이 최동민의 뒷통수를 후려친다.



난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보고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말았다.




"쳐돌았나 뒤질려고."


"뭐라했냐?"


"아...아무것도 아니야."


큰일날뻔 했다.





딩동댕동~!


수업의 시작을 알려주는 종이 울린다. 제길.이 녀석들때문에 너무 늦어버렸다. 오늘 쓴소리좀 듣겠군.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더니 역시나 이광철이 날 죽일 듯한 기세로 노려보고 있다.




"왜? 볼일 끝났으니까 꺼져."



참자...이런 놈들 때문에 내 주먹을 더럽힐순 없잖아.




뒤를 돌아 최동민과 함께 교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놈들의 대화소리가 내 귀를 파고든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아 미친 어제 김현지가 뭐라는 줄 아냐? 내가 싫증난다고 그만 헤어지재"



"헐...그년이 미쳤네. 감히 광철이를 찰 생각을 하고 말이야."



"상관없어. 걔 어차피 먹고 버릴려고 사귄 거였으니까."







이광철과 김현지가 헤어졌다고?




물론 난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그떄 내가 고백한 이후로 김현지에대한 이미지가 깨져버렸으니까.


근데 이 가벼운 발걸음은 뭐지?






"야 최동민 빨리 가자 늦겠다 ㅎㅎ"



"얘 왜이래 갑자기 설마 아직도 김현지 좋아하냐?"



"뭔 소리야.빨리 가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늦었다는 것에 대한 감정은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산뜻하다.



김현지가 이광철과 헤어졌다고 내가 이러는 건 아니겠지?


난 이제 김현지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복도로 들어서자 마자 내 들뜬 기분은 한껏 다운됬다. 공허한 복도가 내가 얼마나 늦었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세게 잡았다.



"어떤 놈이...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내 목덜미를 잡은 사람은 다름아닌 우리반 담임이다. 난 이제 큰일났다.





"너 임마 장난해? 지금이 몇분인줄 알아? 너희들 삼십분이나 늦었어 삼십분이나. 고등학생이 이래도 되?"



"죄송합니다."



"빨리 들어가."



최동민과 나는 담임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걸어가고 난 뒤에 담임을 헐뜯었다.



얼마 욕하지도 않은것 같았는데 벌써 교실에 다다랐다.


교실안을 보니 수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우린 최대한 피해 안 가게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것들 왜 늦었어?빨리 들어가 앉아."


다행히 언어선생은 성격이 괜찮은 편이라서 조용히 넘어갈수 있었다.







"자 그래서 이 시를 보자. 이 시는..."





김현지가 이광철과 헤어졌다... 수업시간 내내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사이에 김현지를 슬쩍 보았다.




그 표정을 보니 전과 크게 다른것 같진 않은데.차인게 아니라서 그런 건가?



그때 김현지가 나를 보았다.난 그만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젠 다시 수업을 하고 있겠지하고 돌아보았는데 아직도 나를 또렷이 응시하고 있다.


김현지가 당황한 내 얼굴을 보고 살짝 웃는다.이건 긍정의 웃음인가?






나도 김현지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김현지가 갑자기 종이에 뭘 적기 시작한다.


설마 좋아한다고 편지라도 쓸 셈인가?






난 알면서도 모를는척 고개를 돌리고 수업에 집중하는 척했다. 물론 수업내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난 멍청하게도 좋아한다는 고백편지이기를 바랬다.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야 김현지가 이거 너한테 전해달래."




내 짝에게서 바로 그 쪽지를 낚아채갔다.티나게 싱글벙글 거리면서.



난 쪽지를 펼치고 거기에 쓰여진 내용을 읽었다.





ㅡ저번에 내가 장난친 일은 진심으로 미안해.내 사과 받아줄거지?

ps.나 너무 좋아하지 마 티 다나는거 알지?




누가 너를 좋아해.


김현지를 향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야하는데 이미 그 애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다.




하여튼 내 몸이 이상한건지 뭔지.난 너무 착한가 보다.안 좋은 일도 금세 잊어버리고.



몇 차례 더 쪽지를 주고받다보니 어느새 쉬느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이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마치 전쟁이라도 난 마냥 교실 이쪽저쪽을 뛰어다녔다.




"내 사과 받아주는 거지?"




내 옆을 바라보니 어느새 김현지가 내옆에 앉아 나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고 있다.



최동민이 나에게 올려다 김현지를 보고는 다시 되돌아갔다.




김현지와 오랜만에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려고하니 매우 어색했다.물론 나만의 착각일수도.





"빨리 말해! 내 사과 받아주는거지?"



"어?...당연하지 내가 그렇게 쪼잔한 놈으로 보이냐."



"역시 넌 남자야 남자. 너 너무 귀여운거 알지?"







귀엽다고? 그 애의 말한마디에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 갑자기 왜 이러지.고작 이런거에 흥분하는 거야?




잠깐, 귀엽다는 건 남자로써의 매력이 없다는 말 아닌가.






"그럼 우리 오늘부터 친하게 지내자."


"그...래"







사실 2년동안 김현지와 제대로 말 한번 해본적이 없다.그 2년동안 난 그저 그 애의 친구만이라도
되고싶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되기가 이렇게 쉬운 것이었다니.


갑자기 김현지가 내 어깨위에 대담하게 손을 걸쳐놓는다. 난 깝짝놀랐다 그리고 불안했다.



혹시 이 애가 떨리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쾅!!!


그때 우리 교실 안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평소에 학교에 잘 오지도 않는 이광철이다.



그냥 담배나 계속 피고 있지 짜증나게...



그리고 이광철이 김현지와 날 돌아보았다.문득 아직도 김현지가 내 어깨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난 불안해야할 이유가 없다.지금 둘은 사귀는 사이가 아니니까.





"야 너 왜 재수없게 내 전여친이랑 놀고있어."



뭐? 하다하다 이런 억지까지 부리다니. 정말 답이 없는 녀석이다.


내가 따지려고 들자 이광철은 다짜고짜 내 멱살부터 잡았다.






그래. 이 녀석은 날 그냥 때리고 싶어했던 거였지.






"이광철 그만해!!너랑 나랑 이미 헤어졌잖아.너 그냥 민수 괴롭히고 싶어서 그런거지?!"



"닥쳐라 너까지 맞기 싫으면."





녀석이 다시 나에게로 고개를 돌린다.점점 이 사이코가 무서워졌다.




"이 새끼야 눈 안깔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난 눈을 아래로 내려깔지 않았다. 오히려 놈의 눈을 당당하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당연한듯 내 얼굴로 주먹이 날아왔다.




"죽어!!이 찌질이 같은 새끼!"






쓰러져있는 내 몸위로 녀석의 발길질이 날아왔다. 그래 때려라.이제 너한테 벗어나는건 꿈도 못꾼다.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다. 녀석은 날 그냥 이유없이 괴롭힌다는 것을


하지만 이번에는 좀 심하게 때리는 것 같다.



이번에 맞으면 등에 피멍이 들것같다.





퍽!!퍽!!


맞고 있는 와중에도 눈을 떠서 주위를 살펴보니 아이들이 모두 겁에 질린 얼굴로 말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



뭐, 당연한거다. 여기서 자칫잘못하다간 같이 휘말릴수 있으니.


그때였다.그 속에서도 이광철을 말린 사람은.





"내가 진짜 그만하라고 했지!!!"




소리를 지른 사람은 다름아닌 김현지다. 나의 수호천사가 나타난 것인가.



이광철이 씩씩대며 김현지를 바라본다. 마치 살인마의 눈빛처럼. 마음만 먹으면 김현지를 죽일 것만 같다.



하지만 김현지는 그 눈빛을 당당하게 맞서고 있었다.






그래도 김현지는 여자이고 자기 전 여자친구이니까 못 때리겠지...


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짝!!






"이게 진짜 오냐오냐해주니까 눈에 뵈는게 없냐?'




내 예상을 처참하게 깨부수고 이광철은 김현지의 빰을 때렸다.





김현지는 바닥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광철은 김현지의 빰을 한차례 더 때렸다.













옛날에 태권도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관장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관장님.제가 태권도를 배워서 정의에 쓰라고 했잖아요.그럼 그 정의란게 뭐에요?"



"허허...정의란건 말이야 약한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을때,

그럴때 자신의 힘을 쓰는게 정의라는거야. 너의 힘을 약한자를 괴롭히는데 쓰면 안되고 강한자한테

당하는 약한자를 보호하는데 쓰는거야 알겠지?"




그때 관장님의 말씀...아주 오랜시간이 지난 뒤에도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 지나간다면 더많은 나의 친구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내가 지금 해야할 일을 깨달았다.




내가 지금 해야하는 일은 이광철을 바로잡는 것이다.











"야 이광철."



"뭐? 미쳤냐?"




날 어이없다는듯이 바라보는 이광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녀석이 그랬듯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가드 올려. 광대뼈 부러지기 싫으면."



"이 새끼가 진짜 미쳤..."






난 녀석의 말을 무시하며 바로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꽃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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