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여보세요!"




내가 떨어뜨린 핸드폰에선 여전히 익숙한 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전혀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는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잘못들은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그래서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핸드폰을 다시 잡았다



"여...여보세요"


"너...김민수 맞지?"


확실하다 이 목소리. 아직도 잊을수 없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도대체 2년이나 지난 지금 나에게 전화한 의도가 뭐지?




나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혹시... 누나 맞아?"


"응 맞아, 2년전에 유학갔던 네 전여친"


한편으론 전화해준 그녀가 고마우면서도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연락할수 있었음에도 연락 한통없던
그녀에 대해




"....지금와서 왜 나한테 전화한거야"


"나 일주일뒤에 잠깐 한국에 들리기로 했어. 나 너 아직도 못 잊었어. 너 보고싶은데."


"나 지금 너무 혼란스러우니까 나중에 얘기하자. 전화줄게"





난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혀 예상치못한 상황이여서 너무 혼란스러웠다. 난 아무생각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우리아들 왔어?근데 얼굴이 왜그래? 무슨일 있어?"


"친구랑 좀 크게 싸웠어요"


난 아무말없이 내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너무 피곤한 나머지 침대에 뻗어버렸다.


눈을 뜨고 방을 돌아보니 온통 복싱선수들 사진만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중에서 하나의 편지가 눈에 띄였다. 몇일전부터 보였던것인데 아무생각없이 지나쳤었다.




난 그 편지를 펼치고 보낸사람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예지.그녀의 이름이다. 난 밑의 내용을 천천히 읽었다.







to 민수


안녕 민수야. 이렇게 편지로 글을 쓸려니 좀 어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우리가 벌써 100일이나 된건 알지?


우리가 이렇게 100일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너가 나와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마워.우리가 이렇게 한번도 안 싸우고 잘지내는걸 보면 우리가 잘 맞나봐.


짧게 쓰는거지만 내 진심은 너에게 확실히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어.


좋아해!! ^^ 아직 사랑한다고 하기엔 좀 무리인것 같지?;;


from 예지



이 편지, 내용을 읽어보니 기억났다. 그때는 정말 좋았었는데...


하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때 아름다운 것이다. 더이상 그녀에 대한 미련따윈 없다.



지금 중요한 일은 그녀가 아니다. 내 학교생활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할만한 것이 필요했다. 난 내 방안에 있는 샌드백을 발견했다.




그러고보니 요즘엔 체육관도 가지 않았는데...


난 샌드백을 설치하고 망설임없이 샌드백을 쳤다.



뻑!!


너무 오랜만에 복싱을 해서 그런지 자세도 흐트러지고 파워도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난 복싱연습을 할려고 이 샌드백을 설치한 것이 아니다.난 그저 화풀이대상으로 이것을
선택한 것이다.




뻑!!뻑!!!



난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며 샌드백에 내 스트레스를 실려보냈다.


아랫집에서 올라오지 않을까하는 걱정따위는 없었다. 샌드백을 치는 동안 잠깐이나마 내 근심걱정이
사라졌다.




쿵쿵!


내가 너무나 오랫동안 샌드백을 치자 급기야는 밑에서 천장을 두드렸다.


오늘만큼은 누가 날 방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난 바닥을 크게 발로 두드리고서 계속 샌드백을 두들겼다.


땀이 나고 거친숨이 나올때까지 계속.






"야 임마 시끄러워 좀 자라!"


어머니께서도 화나셔서 난 다시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누우니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몇분간의 어지러움이 지나가고 나서 난 불을끄고 다시 누웠다.





요즘은 잘때마다 라디오를 듣곤 한다.


난 오늘도 여지없이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맞췄다.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유명 연예인
A씨가 진행하는 고민상담 프로그램이다.






"예 오늘의 사연 나갑니다.서울 노원구의 김현식씨께서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라디오가 요즘 내 일상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것 같다.


라디오 속의 해설자는 유창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저렇게 유쾌한 사람은 나같이 근심걱정없이 살까?





"아...이거이거 정말 안타까운 사연이군요. 그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진 사람입니다.예...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거겠죠.

하지만 저는 제 여자친구가 더 보고싶습니다. 왜냐면 제 여자친구는 얼마전에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갔거든요.

이제 볼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제 여자친구에게 이 말이 전해졌으면

좋겠네요. 지은아,너무 보고싶고 사랑한다. 기회가 되면 꼭 보자"



사연은 왜 또 이리 나랑 비슷해가지고...눈시울이 뜨거워진다.사연 신청자의 마음이 이해되서일까?


"자 그럼 노래 나갑니다. 잔잔하고 애절한 노래죠.가수 장혜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스피커 사이로 전주가 흘러나온다. 정말 엄청나게 옛날 노래일것만 같은 느낌의 전주다.


신청자가 나이 지긋하신 분인가? 옛날노래 좋아하시고 참 특이하시네.


하지만 이내 가사가 흘러나오자 난 입을 막고 조용히 음악을 감상한다.







스치는 바람결에 사랑노래 들려요.


내 곁에서 떠나 버렸던, 내 곁에서 떠나버렸던


그립던 사랑의 노래 들려와


내 맘은 떨려요




어둠이 지나가고 내일이 찾아오면 애태웠던 지난 날들이


내게로 살며시 다시 다가와 줄것만 같아요


이제는 울지 않을래,이별은 너무 아파요


다시 떠난다해도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기억하지는 않아도 지워지지가 않아요


슬픔뒤 밀려드는 그리움


세월이 변한다해도 언제까지나 그대로


내 곁에 머물러줘요




노래가 끝났다. 마치 그 가수의 애잔한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잘들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좋아하거나 미련이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난 조용히 라디오의 스위치를 내렸다.



그리고 난 비로소 내가 해야할 일을 깨달았다.사실 아니라고 했지만 부정할수 없었다.



지금 이 감정을 잘은 모르겠지만 난 2년전 그녀에대한 약간의 미련이 남아있었다.



머리론 아니라고 했지만 가슴은 부정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를 만나봐야 알것 같다.





이번에는 한층 더 안정된 손놀림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띠리리~ 딸칵!!



"여보세요?"


"나 민수야. 일주일 뒤에 한국 온다고 했지? 얼마나 있을거야?"


"한 일주일정도?"


"일주일후에 만나자. 내가 마중나갈게."


"그래. 그럼 끊어."




전화를 끊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긴 한숨을.


2년만의 통화도,만나기로 약속한 사실도 전혀 좋지 않았다.




난 그저 지금의 내 마음을 확인하고 싶다.



----------------------------------------------------------------------------------------------------





잠을 깊게 자지 않았던 탓에 새벽일찍 잠에서 깨고 말았다.



더 잠을 자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부지런하게 새벽부터 씻고 공부한뒤에 학교를 갈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결국 머리도 감지 않은채 나 혼자 아침밥상을 간소하게 준비했다.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맛이 없어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시간이 가는 동안 할일도 없었던지라 그냥 대충 교복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공기가 차가웠다.하지만 너무나도 상쾌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고 중간중간 파릇파릇한 잎사귀들이 보이는 가운데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최동민이다.




"야 최동민!!"


"어? 너 벌써 학교가냐?"


"그러는 너는 왜 교복입고 등교하고 있냐?"


"나 요즘 공부열심히 한다. 임마 너랑 다르게"


"웃기고 있네"




새벽부터 이 녀석을보니 너무나 반갑다. 그런데 녀석이 내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깜짝 놀랬다.


"야 너 얼굴이 왜 이 모양이야?"


"...이광철패거리한테 맞았다."


"그 새끼.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감히 내 친구를 건드려? 죽여버려야지"


"허세 좀 부리지마 임마, 그러다 다친다"



이놈은 새벽부터 날아다닌다.


마땅히 학교가서 할일도 없을거라 생각했던 우리는 바로 오락실로 향했다.





"야 이거 죽이지?요즘 나온 레이싱게임인데 그래픽 쩐다."


"레이싱게임 관심없다.난 총게임이 좋아"


오락실이 돈을 많이 잡아먹긴 하지만 난 pc방보단 오락실을 더 선호한다. 애초에 오락실이 게임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총게임을 하다보니까 어제의 일은 다 잊혀지는것 같았다. 그래, 그냥 이 순간을 즐기자



최동민은 레이싱게임에 푹빠져있다. 꽤 오래한것 같은데...



시간을 보니 이미 늦어있었다.



"야 최동민 우리 늦었다. 빨리 가자"


"어..? 그래"



우린 서둘러 가방을 챙겨들고 오락실을 빠져나왔다. 전속력으로 입구를 나가는 순간 갑자기 내 팔에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누가 내 손을 꽉 잡고 있는지 보니...



"김민수 안녕? 또 만나네."


정은영이다.하루만에 또 만난건가. 아무튼 지금은 얘기할 시간이 없다.


"시간 없으니까 먼저 간다."


난 그 아이의 손을 뿌리치고 학교를 향해 뛰었다. 저런 학교도 안 가는 완전 날라리와 상대해줄 필요는 없다.




그렇게 최동민과 난 미친듯이 뛰었다.


이번에 늦으면 필시 좋게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저기 앞에 입구가 보인다. 좋아. 시간안에 도착하겠어.


하지만 그때 예상치 못한 방해꾼이 내 등교길을 방해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놈들이.




"야 너네들 이리와바."


목소리는 학교 옆 좁은 골목에서 들려왔다. 누가 명령질이야라는 생각으로 돌아본 난 흠칫했다.


이광철과 패거리들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옆에 최동민을 보니 잔뜩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이광철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옆에선 최동민이 슬슬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것을
아는 녀석인지라 섣불리 도망가지 못했다.




곧이어 이광철은 내 초등학교 동창회때 그랬던 것처럼 내 멱살을 강하게 움켜쥐으며 말했다.








"저기 편의점에서 빵사와. 뒤지기 싫으면 빨리 사오는게 좋을거다."


----------------------------------------------------------------------------------------------------


앞으로 전개를 빨리할게요.읽어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추천 부탁드릴게요

죄송합니다.수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