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비춰대는 현란하고 몽환적인 불빛...웃고 떠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선 난 어찌할줄 몰랐다.




김현지.내가 2년동안 그 아이에 대해 크게 착각하고 있었나보다.


그 2년동안 내가 보았던 그 착하고 순수했던 김현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날라리학생과 사귀고 있는
날라리 여고생이 대신하고 있다.



2년전의 착했던 그 아이를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퍼진다. 내가 아까 그녀에게 한 행동이 잘한 것일까.



그 아이를 좋아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만약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광철과 시비가 붙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내가 이렇게 혼자 그 아이를 그리며 뒤에서 지켜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랑은 머리로는 제어할수 없는 성질의 것인데.



띠리링~!


전화가 걸려왔다.


난 수신자확인도 하지 않은채 전화를 받았다.



"민수 어디야? 나 급히 할 얘기 있는데 만나자"




박진영이다. 같은 학교에 배정받고도 다른 반이라서 만날 기회가 몇번 있지도 않았는데


막상 고등학교에가고나서 오랜만의 통화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너 어디있는데"


"나 여기 한x공원 너 옛날에 맨날 데이트하면서 쳐놀던데 있잖아"


"알았다. 금방갈게"



막상 전화를 끊어놓고 보니 의아해졌다. 얘가 갑자기 왜 만나자고 하는거지?




아무튼 난 오랜친구의 부탁에따라 서둘러 한x공원으로 달려갔다.



야밤에 뛰어가니 마치 조깅하는 기분이었다.쾌적한 공기를 마시니 저번날의 안 좋은 기억이
모두 사라지는 듯 했다.


저 멀리 박진영의 모습이 보였다.



"야 왜 불렀..."


갑자기 박진영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마치 조용히 하라는 듯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녀석의 불안한 표정이 더욱 눈에 잘 띄었다. 얘가 평소답지 않게 왜 이렇지.





내가 녀석 옆으로 다가가서 앉자 녀석은 조용히 말했다.



"너 지금 큰일났어.지금 우리 주변에 이광철 패거리 쫙 깔려있어"


"뭐? 너 아까 할말 있다며"


"그거 애새끼들한테 협박당한거야 지금 빨리 튀자"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이광철패거리들이 어디에 있다는거지.


하지만 녀석의 얼굴에서 거짓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읺았기에 난 조용히 일어나서 뛰어갈 준비를 마쳤다






부릉부릉~!!


그때 엄청난 굉음과 함께 뉴스에서나 볼 법한 폭주족의상을 입은 녀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 근처로
모였다.



녀석들은 오토바이를 타며 엄청난 위압감을 조성했다.


녀석들이 날 왜 또 불러낸거지. 학교에서의 일만으론 부족했나.





그중에서 한 덩치하는 녀석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헬맷을 벗었다.


녀석은 내 예상대로 이광철이었다.



그리고 이광철이 헬맷을 벗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머지 녀석들이 가오를 잡으며 헬맷을 벗어던졌다.




"몇시간동안 평화롭게 있었냐?이제 죽을수도 있는데 어떡하냐"


"아까 학교에서 일로 됬잖아. 또 왜이러는거냐"


"몰라서 물어? 학교에선 애들 눈치보여서 제대로 못 때렸거든.물론 현지가 내가 애들 때리는거 안 좋아해서
이기도 하고"



이광철은 말을 마치고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다.저런 미소를 흔히 썩소라고 하지.



"민수야 어떡하냐. 못 도망갈것 같은데"


"야 임마 그걸 말이라고 해? 우리 다 죽게 생겼잖아"



패거리들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가온다.


이판사판이다. 일단 싸워보는거다.




그때 발밑에 누가 먹다버린 캔이 눈에 띄었다. 난 본능적으로 그 캔을 패거리들에게 던졌다.


그리고 그들이 당황한 사이,발등으로 놈들의 얼굴을 가격했다.



"박진영 튀어!!"


"너는 어떻게 할거야!"


"몰라 새꺄 그냥 튀라면 튀어!!"




박진영이 온힘을 다해서 도망친다.제발 도망가라.멀리...



그러나 나의 바람은 금방 깨져버렸다. 박진영은 바로 녀석들에게 붙잡혀 구타를 당했다.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잘 버텼다.




오히려 놈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뒤에서 뭔가 휘두르는게 느껴지더니


내 머리를 가격했다.


난 혹시하는 마음에 내 머리를 문질러보았고 아니나다를까 내 머리에선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뒤에선 각목을 들고 있는 놈들이 서있었다.



"치사한 놈들... 난 주먹만 갖고 싸우는데 너희들은 무기들은 싸우냐..."





말이 끝나자마자 내 머리위로 엄청난 수의 각목이 날아들었다.


각목을 맞을때의 그 고통은 학교에서 맞았던거에 몇배는 되어보였다. 이 놈들은 확실히 미쳤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 이렇게 심하게 때릴리 없다.


난 날 때리는 놈들중 한명의 다리를 잡아 그대로 넘어뜨렸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좀 수가 많았다.


그들을 도저히 상대할수가 없었다.


이내 내 얼굴은 피범벅이 되고 더이상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가 눈을 적셨다.



"나대는 새끼들은 다 죽여야되!!"


놈들이 나를향해 알아들을수 없는 욕지거리 해대며 날 밟았다. 몇분이 지난지도 몰랐을 무렵,
놈들이 구타를 멈추고 돌아섰다.



그리고 희미하게 날 향해 다가오는 발이 보였다. 이광철이다.



"민수야 너가 왜 맞는지 알아?"


"그냥 너가 싫어서야.사실 내 여친한테 고백해서 그랬다는건 다 핑계라고 인정할게.그냥 너가 나대는게
싫었어.그래서 버릇 좀 고쳐줄려고 꼬투리 잡느라 되게 힘들었다."



역시 내가 김현지한테 고백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단지 핑계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야 이광철!!내가 애들 때리고 다니지 말랬지!!"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 목소리...보지 않아도 알수 있다.아까 들었던 친숙한 목소리...


정은영이다.


"어차피 다 끝났어 반 죽여놨다."




놈은 말을 마치고 유유히 돌아섰다. 정은영이 내 얼굴을 곰곰히 살펴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너 김민수 아냐? 너 왜 이렇게 심하게 맞았어.얼굴도 못 알아볼 뻔했잖아."


정은영이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나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짜 미안해.나도 광철이 저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내가 너 괴롭히지 말라고 말할게
다음에 보자 미안해"


그러고는 이내 정은영도 이광철쪽으로 달려갔다.그러고는 그들과 함께 사라졌다.



너가 때린게 아닌데 뭐가 미안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말할수 없었다.



"민수...민수!!!"


희미하게 날 부르는 박진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배신자 시키...





이내 내 몸이 일으켜 세워졌다. 옆을보니 박진영이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미안해...미안해"


"너가 뭐가 미안해 임마.저 놈들이 협박한거잖아."


박진영이 눈물을 글썽거리는것을 보니 나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순간에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버렸다니.




"내가 집에 데려다 줄게 빨리가자"


"아...너무 아프다. 집앞까지 데려다줘라.그럼 용서해주마"


내가 생각해도 이 녀석에게 화를 내지 않은게 신기했다. 그만큼 우리의 우정은 짙고 깊었나 보다.


박진영은 날 부축하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박진영의 부축을 받으며 집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박진영은 여전히 미안해했다.



"야 가라. 나 진짜 너 전혀 원망하지 않으니까"


"미안하다. 그럼 갈게"




박진영이 몸을 돌려 쓸쓸히 갔다. 뒷모습이 마치 나만큼이나 쓸쓸해보였다.


나때문에 굳이 죄책감가질 필요는 없는데...



그나저나 부모님한테 뭐라고 말해야할지 너무나도 걱정됬다.


어떻게 핑계를 댄다 한들 지금의 내 꼴은 누가봐도 맞고 들어온 얼굴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집앞에서 서성거렸다.


어둠이 완전히 하늘을 지배할때까지...







띠리링~!!


이번에는 두려웠다. 수신자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기는 계속 울렸다.


몇번을 무시했건만 전화기의 벨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심호흡을 하고 번호를 확인해보니 이광철이 아니었다. 아예 모르는 번호였다.


난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혹시 너 김민수 아니니?"





그 목소리를 들은 난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고 눈에는 이미 눈물로 가득차있었다.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그 목소리는 2년전에 내가 들었던 목소리.





바로 2년전 학원에서 만났던 내 첫사랑 그녀의 목소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