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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입학을 하루 앞둔 어느날, 초등학교 동창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참으로 반갑지 않을수 없었다.


"김민수 맞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하긴 초등학교때 봤던 놈이겠지.

"응 근데 왜 전화했냐?"

"오늘 저녁 7시부터 00호프집에서 초등학교 애들끼리 놀기로 했는데 같이 올래? 너 얼굴 보고싶다"

"짜식~ 그래 내가 특별히 가주마, 근데 너 누구냐?"

"....나 김성진인데"

이 녀석을 기억 못하다니, 이 녀석에 대해 떠올리려면 초등학교때 자기도 일진이 되고싶다며

일진이라 불리는 아이들을 쫓아다녔던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원하던 일진이란 건 됬을려나.



패딩을 걸치고 나가려다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내 멋을 뽐내고 싶어졌다. 또한 이런 날에 동네 앞 마트 가는

옷차림으로 가는 것은 시례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생각을 마친 난 옷장을 열어 평소에는 귀찮아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코트를 꺼내 입었다.

와이셔츠에 맞춰보기도 하고 니트에 맞춰보기도 하면서... 마치 여자친구를 만나러 갈때처럼 설레였다.

초등학교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면서.


그러고보니 최동민도 나랑 같은 초등학교였는데 그 녀석도 오겠지?

설마 하는 마음에 녀석에게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칵

"여보세요"

"야 최동민 오늘 초등학교 애들끼리 만나기로 한거 아냐?"

"아...당연히 알지 너한테 막 전화해 주려던 참인데, 그럼 좀 있다 보자"

자기 할말만 하고 끊는 녀석이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접고 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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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자 코를 찌르는 술냄새가 풍겨왔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은 이미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었다. 3년만인가.


"왔냐? 너 임마 나도 못 알아보고 진짜 섭섭하다"

아까 내가 알아보지 못했던 김성진이다. 술을 먹은게 확실하다, 나한테 이런 소리를 하는걸 보니.

"술 많이 먹었네. 그나저나 얘들아 진짜 반갑다"

몇몇아이들은 누군지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바뀌고 누구는 얼굴은 그대로지만 목소리만 바뀌었다.


"민수야 너 진짜 많이 컷다. 자 여기 술 마셔라"

무리중의 하나가 나에게 술을 권해왔다. 어쩌지 나 술 한번도 못 먹어봤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튕기면 대한민국사람들의 정서상 100% 강제로라도 먹일 것이었다.

난 이런 대한민국의 술 문화를 저주하면서 이젠 너무 많이 커버려서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주는 술잔을 들고 한입 들이켰다.


내 인생 처음으로 술이란 것을 먹어본 느낌은.... 맛없다.

이런걸 어른들이 도대체 왜 먹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애들이 얼굴은 많이 노안인가 보다.

술도 이렇게 먹을수도 있고,


"얘들아 술 마시고 노래방 어때?"

"콜~~!!"

항상 초등학교때도 그렇듯 지금도 항상 분위기를 주도하는 김성진이었다.

녀석을 보자 피식하며 비웃음이 나온다. 생각해보니 내가 초등학교때 김성진과 같이 나도 일진이란 것이

되보겠다며 김성진과 같이 일진들을 따라다녔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창피하고도 웃긴 기억이다. 녀석은 지금 정신을 차렸겠지,

나는 지나가다가 내던지듯이 녀석에게 물었다.

"야 너 그내서 초등하교때부터 그렇게 되고싶어하던 일진은 됬냐?"

녀석이 머쓱한 듯이 웃음을 짓는다. 하긴 그땐 철이 없었던 때니까...

"당연하지~ 우리 학교는 이미 내가 먹었다."

충격이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니. 어쨋거나 이건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그래도 고3이 되면 알아서 정신차리고 공부하겠지.그나저나 친구들이 권해주는 술을 한두잔씩 마시다 보니

정신이 약간 몽롱해졌다.



"최동민 얘는 왜 안와 아까부터 온다고 해놓고"

우리중에 유일하게 여자인 조승현이 짜증을 냈다. 왠지 아까 전화했을 때부터 최동민 이 놈이 안올것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아까 목소리 들으니 지금쯤은 침대에 누워서 자고있겠지.


조금만 더 술을 먹었다가는 말로만 들어왔던 필름이 끊기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아이들을 살펴보니 조금 많이 취한것 같았다.

"얘들아 이제 노래방 가자"

내가 조금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친구들도 술에 많이 취했는지 수긍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가긴 어딜가, 조금만 더 마시고 가자"

김성진이 애들을 붙잡았다. 술을 먹어서 눈치란걸 잊어버린건지 어떤건지 녀석은 친구들의 취기어린

얼굴을 전혀 보지 못했다.


"새끼야 눈치좀 가지고 다녀라, 애들 취한거 안보이냐?"

"그...그런가? 미안 얘들아 필름끊기지마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만나겠냐 이런 날은 기억해둬야지"


그렇게 우리는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호프집을 빠져나올수 있었다.

밖에는 처음 나왔을때보다 훨씬 더 어두워져 있는 하늘이 우리를 반겼다. 길거리에 있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간판들을 보니 진짜 지금이 밤인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아이들이 한참을 추억거리를 얘기하면서 걷고 있는와중에 내 팔에 따뜻한 감촉이 전해져온다.

누군가 하고 봤더니, 아까 최동민이 오지 않는다고 그렇게 짜증을 부리던 조승현이다.

정말 술 제대로 먹은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초등학교때도 별로 친하지 않았던 나에게 대범하게

팔짱을 끼고있을리가 없다.

내 표정은 당혹감을 숨길수 없었다.


"아휴... 남친있는 애가 왜이래? 민수야 미안하다. 얘가 지금 정상이 아니다."

김성진이 황급히 조승현을 부축했다.

근데 얘네들 어디가는거지? 아 맞다 노래방가기로 했었지.


친구들이 향하는 곳에 가다가 녀석들이 멈췄다.


'팬텀 노래방'

영어도 쓸줄 모르면서 폼은 내고 싶었던 모양인가 보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근데 애들이 나 노래시키는건 아니겠지? 나 노래 못하는데.


그때였다.


툭.

"아 뭐야... 이 새끼 너 김민수아냐?"

누군가하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놈의 가슴팍만 보일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더 고개를 올려

얼굴을 확인해본다.

그순간 나의 얼굴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녀석은 박진영을 밟아놓은 이광철이었다. 그 옆엔는 내가 한때 짝사랑하던 혹은 아직도 짝사랑중인

김현지가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친구들이 재빨리 달려온다. 상황이 안 좋다. 지금끼면 녀석들도 무사히 보내줄것 같진않다.

순간 난 내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고 어느새 녀석은 내 멱살을 잡고 있었다.

"누가 부딪치래? 아 진짜 빡치네..."

녀석이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을 박박 구기면서 말했다. 여기서 지면 안된다. 동창생들도 보고 있는데

내 체면이 있지... 난 아랑곳하지않고 녀석을 노려봤다.


아무렇지않은척했지만... 녀석의 위압감은 엄청났다.

녀석이 나를 노려보다가 작게 한마디를 뱉었다.

"눈.....깔아"

인간의 생존본능이라고 해야할까....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다.

녀석의 표정은 보지않아도 뻔했다. 가소롭다는 듯이 웃고 있겠지.


"어...광철아 여기서 뭐해?"

이 목소리는.... 김성진이 이광철을 뜻밖이라는 듯이 쳐다봤다.

그랬다. 김성진과 이광철은 친구사이었던 것이다.

나는 슬쩍 눈을 올려 이광철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비웃으며 말했다.

"나 여친이랑 놀러나왔는데 재수없게 김민수 이런놈이랑 만났네 넌 얘 아냐?"

"안다면 안다고 할수있겠지 초등학교 동창이야"

난 녀석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왠지 보지 않아도 동창 친구들도 날 비웃고 있을것만 같았다.

"야 김민수 고개 들어"

난 반박을 해보려 하지만... 내 고개는 어느새 녀석을 바라보고 있다.

"저번에 니 친구 박진영 나한테 밟힌거 알지?처신 똑바로 해라."

그러고는 녀석이 뒤를 돌아 떠났다. 안도할려는 찰나 녀석은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꽃았다.

"그리고 내 여친한테도 집적대지마라. 눈 깔고 다니냐 찌질이새끼야"

주먹이 떨린다. 지금이라도 가서 녀석의 얼굴을 때려주고 싶다. 하지만 그럴수 없다.

단지 힘의 차이가 아니다. 어쩌면 오랫동안 각종 무술을 배운 내가 더 힘에서는 월등할수도 있다.

그러나 차이는 세력이다. 소위 말하는 '빽'말이다.

우울한 생각에 빠져있다보니 어느새 녀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민수야 괜찮아, 쟤 5개학교 통합짱이야 기죽지마라"

김성진이 내 어깨를 두들기고 있다. 지금같은 기분으론 도저히 놀수 없었다.

"얘들아 먼저 갈게"

"어...그래 오늘은 그냥 집가서 쉬어라"

친구들도 내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비웃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터벅터벅

걷다보니 어느새 집앞에 왔다.

너무 화가 났다. 녀석에게 내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는게, 바보같이 당하기만 했다는게.

그때 저편에 한 여자아이가 분리수거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봐서 그런걸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은 마치 내 첫사랑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 정신을 놓고 말없이

그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그 여자아이가 내가 쳐다보고 있다는 걸 의식해서일까,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뭘봐, 예쁜사람 처음봐? 꺼져"

이런...처음보는 여자에게도 이렇게 무시당하다니.

황급히 고개를 돌려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밝게 빛나고 있는 초승달,

아마도 내 고등학교생활은 이렇게 밝지 못할것 같다.


오늘밤은 여러모로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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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기대하는 그런 내용을 못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추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