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에 취미로 출간한 시집인데,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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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참으로 억울할 것 같습니다.
산 채로 묻어야 했던 그 사람을
뜬 눈으로 예고 없이 바라본다는 건,
어떤 심정으로
누구를 탓해야 한답니까.
간혹
밤마다 무너지는 날이 있어
하늘도 나의 처량한 모습에
마음이 아파 우연을 가장했더라도
만남 후에 이별처럼
이별 후에 만남은
준비되지 않아
산 채로 겪을 고통
그간의 마음을 하늘에 적었더라도
우연히 그대를 눈앞에 마주한다면
나는 갈대처럼 아무리 고갤 저어도
전할 말 없습니다.

-

달빛/
​
떠나보내라는 말에
무심히 강가에 홀로 서
순리에 제 몸을 맡긴
물줄기를 숨죽여 바라보았습니다.
한동안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눈물 훔친 건
아무리 흘려보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흔들거리기만 하는 달빛이
제 마음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

닿을 거리/
​
꽃잎아,
내가 너를 손꼽아
기다렸음을 모를 거다.
시린 겨울 널 닮은 눈꽃은
참으로 아팠다.
닿을 때마다
녹아 부서지는 사랑으로
이 겨울의 밤은
왜 이토록 투명했나.
나는 다만,
너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이 고통을 너는
알 필요 없다.
하염없이 기다린
어느 봄날,
네가 나를 만난 것이
우연이래도
너는 나에게
기적이란다.

-

짝사랑/
​
그 알량한 거리에
당신의 꽃가루는
분명 나에게도 묻었을 거다.
그 알레르기로 나는
며칠 밤을 앓고 있거든.
그깟 당신의 꽃가루
그 양이 얼마나 되길래
살포시 앉은 봄의 무게로
나는 무너졌을까.
한편에서는
나의 속절없는 마음속
봄꽃을 따라 피우는
그 잎들을
두 손에 꽉 쥐고 서는
“짝사랑도 봄이 될 수 있냐고.”
누구에게 다가가
물어야 하나.

-

첫 이별/
​
이별했습니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걸어야만 했습니다.
설움을 토해내는
나의 모습에
나조차 놀라
조용히 걸어야만 했습니다.
흐느껴 우는 모습이
진정이 안 돼
어디론가
걸어야만 했습니다.
지금 그대에게
나의 모습 숨길 순 있지만
지금 나는
눈물을 피할 길 없기에
그대로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습니다.

-

이별/
​
이별 직후
거나하게 취한 친구 놈을
동네에 데려다준 뒤,
좁은 골목길을 지나
코너를 꺾은 바로 네 집 앞
헤어지기 며칠 전
새로 뽑은 차를 자랑하며
시승을 시켜주겠다던
너의 정갈하게 주차된 차를 보고서는
“우리 아가 다 컸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이유는
오래된 습관
그래,
단단한 얼음이 만들어지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깨지는 건
한순간이어서 그렇지.

-

빨대/
​
가장 깊이
들어와
여기저기
뒤집어 놓고는
두세 번의
입맞춤으로
나의 절반을
가져간 사람.
끝끝내
빈 잔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일 사랑.

-

때/
​
때 묻은 사물
깨끗이 씻으려면
물로 때를 불려야지.
때 묻은 사람
깨끗이 잊으려면
눈물로 때를 불려야지.

-

별의 거리/
​
손가락 하나 들어
그대,
가리킬 곳 몰라
별 하나 찍었다.
저기…
저만큼일까?
우리가 멀어진
거리가.

-

골목길/
​
어둑한
옛 골목길에
열 걸음을 간
하나의 가로등엔
헤어짐이 아쉬워
부둥켜안던 날이 있었고
또, 열 걸음을 간
하나의 가로등엔
서로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팔을 흔들던 날이 있었다.
그렇게
가로등 불빛이
끝나가는 길목엔
긴 밤이 있었다.

-

도장/
​
잉크 가득
묻혀 찍어보니
그대가 번진다.
이번에는
잉크를 닦아서 찍어보니
그대가 희미했다.
몇 번을 어설프게
시도하다가
그대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당신이 내 것이라고,
보이지 않아도
서로가 안다고,
그대가 말했다.

-

편지/
​
1년 전
느린 우체통 앞에서
보낸 손 편지가
도착했네요.
서투른 글씨로
우리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데.
까만 글씨에 적힌
우리 둘만 변했습니다.
이제 받을 편지도 없으니
마음 보낼 편지는
떠날 채비하는
철새에게 부치겠습니다.
내년 이 계절,
하늘에서 편지로 만납시다.

-

귀이개/
​
그이 무릎에 누워
지그시 눈 감으면
고단했던 상처들과
딱지들을 시원하게 긁어주네.
당신의
“이제 없다.”라는 그 말에
내 지친
어깨를 두드리며
그 모질었던
슬픔까지 한 번에 털어내면
난 당신의
그 따뜻한 무릎에 기대어
한동안은
가만히 누워 있고 싶었네.

-

달고나/
​
너의 모양을 따라
나는 날카로운 칼을
들이밀었다.
너의 완성된 조각품을
드는 순간
뒤편에서야
비치는
너의 진짜 모습.
“아… 아….”
누군가는
사랑이 참 달다고 했다.
사랑할 때
맛본 적 없는 조각의 파편들.

-

풍선/
​
나는
한없이 작아지니
그대 입 뗀 숨 멎어가는 줄
알겠습니다.
한때는 부풀려진 모습에
하늘까지 닿는 줄 알았으나
이젠 어린 날의
장난인 줄 알겠습니다.
가득 찼던 풍선이
텅 비고 나서야
진짜 터질 것 같은
아픔은
그대 숨결 잊힌 뒤에야
알았습니다.

-

테이프/
​
한 번 붙인 테이프를
떼어 낸다는 건
얼마만큼의 아픔일까.
한 번밖에 붙이지 못할
사랑은 이별이 되어
붙여진 테이프를 반쯤 떼어냈을 때,
살갗까지 찢어지는 건
꼭 내 아픔이라.
그대여!
아무 고통 없이
모두 떼어내셨나요.
나는 이 아픔
이루 말하지 못해
잠시 그대로 두었습니다.

-

이사/
​
그대,
이사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마주칠 일은 없겠군요.
잠들 때마다 켜놓는
전구를 아직 다 못 달았다면
잠든 사이
여기 별들을 좀 두고 갈까요?
이젠 우연한 만남은 없다길래,
그대여,
행여 그 동네 보름달이
찡그릴 때
은하수가 떨어져도
놀라지 마세요.
내 슬픔 아직도 감출 데를 못 찾아
그 속에 잠시 숨겨두었습니다.

-

도자기/
​
언제,
내가 너를 만든다면
세상 아주
예쁜 꽃 피운 흙으로
가득 담아 빚을 게다.
물레로 너를 돌리다
내 지문 하나 남기지 않을 테고
네 아름다운 태로 굳기를
밤낮으로 불어
내 입가에 침 하나 없이
입술이 말라붙을 게다.
마른 장작 가득 넣은
온도 높은 열 가마에
너를 꽉 품고
들어가다
영영 그대로
굳을 게다.

-

중력/
​
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지.
그런데,
만약
하늘이
한 번이라도
뒤집혀
내 모든 마음
너에게로 쏟아진다면
너는,
아마
감당치 못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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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소원/
​
별들아!
이 여인의 눈을 보아라.
고귀한 눈빛의 반짝임을.
그대들도
두 손 모아
소원하리라.

-

갈대/
​
고개가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이었나요?
얼굴이 붉게 물든 건
노을 때문인가요?
내가 사랑을
잘 모르기에
그대와 마주 서
바라본 갈대숲처럼
나중엔 그대도
이렇게 흔들릴까요.
가을 녘 노을 따라
도망가 버릴까요.
사랑도, 갈대도
가을 한 철이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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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
나의 가난으로
사랑을 적는다.
마음을 정갈하게 정리하고는
나는 그댈 심연 속으로 불러들여
을씨년스러운 바람에
보여줄 것이라곤
한 줄의 영감.
고단히도 가난한 나는
그댈 종이 위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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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
지난밤
진흙에 남겼던
사랑들이
눈 나린 새벽
새하얗게
덮이는구나.
나!
후회는 없걸랑
이른 봄 오거든
피는 꽃마다
가시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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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수십 킬로
떨어져 있어도
한달음에
달려갔던 길.
아…
그 길….
이젠 눈 감아도
다 알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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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길/
​
함박눈 많이 내리는 날
어디에 잎을 띄워야
이 눈 천천히 올까요.
그대,
날 보러 오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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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끝/
​
한 해의
마지막과 처음이
겨울인 이유는
깨끗한 눈 위로
덮어질 마음들과
뽀얗게
다시 쓰일 까닭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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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김/
​
멀리 오는
그대 모습
눈 오는
하늘은 고요한데
따뜻한 언어로
내뿜는 입김은
저 멀리
들리진 않아도
저만치
보이는 듯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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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온도/
​
가을 마주하고
얼마 못 가
사랑이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사랑한 계절이
가을인 줄은 알았으나,
그대가
낙엽인 줄은 몰랐습니다.
가을 온도가
내 사랑까지
물들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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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사랑은
차가운 추위
또, 뜨거운 더위
가끔은 왔다가는 한 철
그래서인지,
바뀌는 절기마다
빼곡히 숨어있는 아픔들
일 년 사계절은
사랑하기 좋은 제철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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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
​
나의 말에 웃다니요.
마치 내가 바람이 된 것 같아요.
살랑살랑
그대 코끝을 건드려 봅니다.
그대는 꽃
나는 살랑이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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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웃음/
​
그녀의 웃음은
봄이었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의 간질거림에
이 겨울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

-

눈꽃, 벚꽃/
​
겨울은 눈꽃
봄은 벚꽃
하나는 하늘의 꽃
또 다른 하나는 땅의 꽃
그래서 따뜻하면 녹아버리고
차가우면 영글지 못하나
나는 저 둘이 하나임을 안다.
계절이 달라도
바람을 만나면
흩날리는 저 모습은
한 번은 하늘에서
한 번은 땅에서
그렇게 두 번을
남모르게 피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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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
그늘막에
눈이 아니 녹나.
그대 비켜야
이른 봄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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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
​
늦겨울에 이른 봄
그대여
나는 이제야
눈이 내려도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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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작별 인사/
​
어느덧,
노란 복수초 활짝 핀
그대 집 앞까지 왔습니다.
제 이야기가 길었네요.
저는 이만 돌아섭니다.
그대 어서 들어서세요.
따뜻하게 불러볼
마지막 이름이여.
그대여,
나의 봄이여.
그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돌아갈 길도 멀지요.
압니다.
그래도
그대 들어서는
모습은 보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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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
​
창가에
한철 쏟아지는 비
저 하늘의 긴 설움을
나는 알 것만 같다.
봄철 사랑도 살다 보면
기약 없이 한순간인데
하루 이틀에 씻길 수 없는
난생 첫 이별
“괜찮다.”, “괜찮다.”
그 모질게 여린 내가
얼마나 모른 척 삭혔을까.
그동안은
꾸역꾸역 잘 참다가
그럭저럭 잘 참아내다가
고독 나무에 매달려
한사코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그만
와장창 무너져
나도 따라 터져버린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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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월/
​
춘삼월 그대가 왔소.
이미 들녘에 걸린 바람꽃에
그대 소식 알았소만.
보고 싶었구려.
아니, 조금 더 찬찬히 오셨을 것을
그대 얼굴
보기가 영 부끄럽소.
내 꽃은 작년 가을에 무너졌소.
일 년 내내 꽃 한 송이
건재하기가 쉽지 않더이다.
작년 동 십일월
눈꽃, 그 속에 파묻혀 엉엉 울었지 뭐요.
보고 싶었구려.
아니, 조금 더 일찍 오셨을 것을
이제 그대가 알려주시오.
나, 피는 법은 알아도
묻는 법은 모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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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
언젠가는
그대의 한숨이
지구를 돌아
내 길 앞,
봄바람에
실린
꽃잎 한 송이를
놓아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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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우리/
​
봄이다.
어제 울던
부은 눈에도
꽃봉우리가 피우려나.
분홍 꽃잎
만개한 나무 아래
마음 따라
작아진 눈을
어디 숨길 데가 없나.
부어오른 눈을 보고
혹, 내게 물어오는 이 있다면
서럽게 부는 봄바람에
꽃봉우리 부풀은
까닭이라 전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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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
그대가 좋아하던
가을입니다.
제 기억은
잘 떠나보내셨는지요?
저는 단풍 쌓인
길목에 서서
그대 기억 새기며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하늘이 높습니다.
온통 그댈 채우기에
좋은 날입니다.
부디 아프지 말고
잘 지내세요.
우수수 떨어진
가을 낙엽 많으니
나는 이 가을
찬찬히 다 쓰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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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
겨울이 온다고
나무는 잎을 덧대지 않는다.
앙상한 가지로
얄궂은 그 추위를 맞이한다.
나 한때 아픔을
덮으려 했으나,
이제는 하늘 향해
두 팔을 가득 벌린다.
오거라!
시련아! 고통아!
내 피부에 맞닿으면
금세 녹아버릴 눈송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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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잎/
​
가을 잎에
마음 쓰셨나요?
올해
그 위에 앉은 눈은
아니 녹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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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일생/
​
꽃의 잎과 향은
흙 속에 있다.
방향 모를
그 추위 속에
그저
따뜻해져 오는
길을 믿고는
땅을 일으키는
놀라운 힘으로
한 일생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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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
나에게 피어나는 꽃잎의 개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남을 위한 나의 희생 또한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를 너무 희생하여
꽃잎이 떨어지지 않을 삶을 사세요.
그대의 꽃잎은
행복 속에 피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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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열병처럼 붉어져
어둠 속에서 빛이 난다면
아마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한 번쯤은
별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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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꽃/
​
별이 만든 밤을
어디 피할 길이 있던가.
고독이 밤비에 서려
꽃잎은 서럽다.
말이 없는 별을
보고 배운 까닭에
언덕 아래 한 송이
소리 없이 피어도
지난 밤비를
버텨온 꽃들은
별들의 향기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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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전（文殊殿）/
​
“티슈 좀 가지고 와라.”
스님이 말씀하셨다.
자리에서 일어나 헐레벌떡
티슈를 찾으러 뛰어갈 때
문이 활짝 열려있는
문수전 부처님의 상을 보고
합장하던 중
‘내 부모의 말에도
이렇게 즉각 움직이지 않는데,
나의 행동과 생각은
나이든 부모님을
너무 잊고 살고 있구나.’
오늘 문수전 부처님이
부모님을 많이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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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
“누나.
전생에
내 엄마
맞지?
하늘나라에서
나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 누이로
태어난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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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쓰는 밤/
​
누군가
내게
글을 쓸 때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고 말했습니다.
아!
오늘 달이
빛나는 이유는
밤을 쓰고
있기 때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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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
나,
어둠으로 돌아가리.
한때 반짝이던
별이었으나,
누구의 소원도 되지 않게.
나,
감은 눈으로
돌아가리.
뜬 적 없는 날
잔상의 흔적도 남기지 않게.
모두 잘 있으시오!
당신들의
밤하늘 고요함 속으로
당신들의
반짝이는 어둠의 찰나로
우리 모두는
언젠가
돌아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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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의 자화상/
​
밥 먹이는 제 자식
한참을 바라본다.
커갈 때야
네 어미를
닮았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제 자식을
더 닮아가는 이유는
그 사람의 삶 속에
나를 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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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
철새 따라
빨라지는 저녁노을
한산한 날씨에
하늘도 일찍 잠이 드는데
방 안에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깔아놓은 장판.
그 노인은
평생 손자 꿈속을
신경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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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
비어 있길래
큰 화분인 줄 알았지.
살다 보니
뚜껑 덮이는 날 오더라.
말 못 할 사연
흙 속에 묵히면
언젠가
꽃피우는 날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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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
웃으면 초승달이요
뜬 눈은 보름달이네.
달은 밝다 하였는데
눈동자는 검다 하네.
눈 속은 온통 검은 밤이니
바라보는 것 모두가 달인가 하네.

-

안개/
​
햇살이 이토록 뚜렷한 이유는
이른 새벽, 안개가 껴서 그렇지.
그대, 지금 앞이 흐리다면
앞으로의 생이 얼마나 눈부시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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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업/
​
나의
글 한 문장은
나의
죄업이다.
이 글을
느끼기 위해
희생된
모든 것들에 대한
죄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