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나는 타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학교도 전학을 갔었다.

학기 중에 전학을 간 게 아니고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중에 간 거라, 따로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시간 같은 게 없었다.

게다가 나는 말주변이 별로 없고 모르는 사람한테 쉽사리 말도 못 거는 성격이라, 며칠 동안은 그냥 혼자 외롭게 지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짝이었던 여자애가 겨우 처음으로 제대로 말을 걸어 주었다.

어디서 왔냐, 왜 이사왔냐 등등을 묻고답하며 어느정도 말이 트였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아 집에서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며 친해졌다.

그러면서 그 애, 지유의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안면을 트게 됐다.

덕분에 나는 전학 초기에 직감했던 외톨이행은 면하게 됐고, 나름대로 행복한 학교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지유는 공부에는 그닥 소질이 없었지만, 그림은 꽤나 잘 그리는 편이었다.

나 또한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에, 지유와는 그것을 공통점 삼아 자주 얘기를 나눴다.

같이 그림에 대한 얘기를 하거나, 내가 그린 그림을 지유가 평가해 주거나,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되어서도 우리는 자주 같이 만나서 카페에 가거나 풍경 좋은 곳을 알아봐서 찾아가 그림을 그리거나 했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꿈이 뭐냐고.

확실한 꿈은 없지만, 예술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나한테 꿈이란 그저 '선생님', '변호사', '공무원' 등등 그저 직업의 대체어로밖에 인식되지 않았었는데

지유에게 있어서 꿈은 인생의 방향성이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멍해지면서, 나도 내 꿈을 다시 정의해 보자고 생각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내 마음은 지유에게 향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 보면 언제나 눈과 마음으로 지유를 좇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것이 동경인지, 좋아하는 것인지는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지유와 눈이 마주쳤을 때, 지유가 내게 눈웃음을 지었을 때

이것이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지유의 마음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학교의 마지막 행사인 학교 축제날이 되었다.

나와 지유는 학교 이곳저곳 체험 부스를 돌아니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 행복했다.

그렇게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니 벌써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있었다.

지유와 나는 같은 방향으로 하교하다가 중간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야됐었는데

서로 갈라지기 전, 지유가 갑자기 나에게 줄 것이 있다고 했다.

아쿠아리움 티켓 2장이 지유의 손에 들려 있었다.

지유는 괜찮으면 다음주 주말에 아쿠아리움에 같이 가자고 했다. 가서 이것저것 그림도 그려 보자고.

나는 설레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마음을 숨기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지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주 토요일에 보자고 말한 뒤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유는 며칠 뒤 하교하던 중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였고

약 사흘 간 혼수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나는 지유의 장례식장에 찾아가지 못했다. 아니, 찾아가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가면 지유가 더 이상 없다는 걸 스스로 인식시켜버리는 게 되는 거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완전히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집에서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우며 지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리기로 하였다.

이렇게 폐인처럼 울기만 하며 지내는 건 지유도 원하지 않을 거라고.

내가 지유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야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정말, 정말로 모든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지유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림은 그냥 취미 정도에 그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림은 내 삶의 중심축이자 원동력이 되어 있었다.

나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고등학교에서도 미친듯이 그림만 그려서 결국 내로라하는 예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그렸을 양의 그림까지 전부 내가 그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림을 그린 결과였다.

지유 덕분이었다.


이제 내 인생의 꿈, 즉 방향성은 확실하다.

그림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그러면 언젠가 다시 지유를 만나게 되었을 때, 지유도 내 그림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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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소설을 써보고 싶었지만

나는 글에 재능이 없어, 시간이 부족해, 할 일이 너무 많아 등등

각종 핑계를 대면서 도망쳐 왔습니다.

하지만 도망치기만 해서는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 뭐든 시작을 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는 거였습니다.

여전히 형편 없는 글솜씨이지만

몇 달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이 되더라도

조금씩 글을 끄적여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