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게는 바다에 간 적이 없답니다.

소라게의 기억에서 처음으로 떠오르는 풍경은 작은 문방구입니다. 그곳에서 소라게는 지폐 한 장과 바꿔져 소년의 집에 오게 됐습니다. 소년의 방은 시시했습니다. 언제나 새하얀 형광등 아래 똑같은 풍경이 반복됐거든요. 하지만 그건 소라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년은 매일 똑같은 소라게가 귀찮아져 버렸죠. 언젠가 소년의 가족이 바닷가로 여행을 갔던 날, 소년은 소라게를 물병에 넣고 해변에 버리고 왔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소라게를 풀어줬다고 하더군요.
소라게는 이 물병이 마냥 좋았습니다. 늘 똑같았던 문방구나 소년의 방과는 다르게 해변은 멋진 풍경이 펼쳐졌거든요. 그럼에도 소라게는 얌전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세상과 소라게 사이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길을 막고 있었으니까요.
소라게가 철없던 시절에는 투명한 벽 너머로 벗어나려고도 했었습니다. 소라게의 집게로 벽을 두드렸지만 투명한 벽은 꿈적도 하지 않았습니다. 타고 올라가려고도 해봤지만 소라게의 껍질이 무거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시간이 흐른 후 소라게는 깨달았습니다. 투명한 벽은 사실 바깥세상으로부터 소라게를 지켜줬다는 걸요. 가령 소년의 집에 있던 고양이는 늘 호시탐탐 소라게 앞을 어슬렁대며 무시무시한 앞발을 들이밀곤 했습니다. 투명한 벽이 그걸 막아줬었죠. 해변에서는 무섭게 달려드는 파도들로부터 소라게를 지켰죠. 소라게는 투명한 벽 안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불편한 건 단 하나, 소라게의 몸이 성장하면서 소라껍질에 맞지 않아 갑갑하고 간지러운 것이었죠.

“오늘도 하루가 시작됐어.”
소라게는 햇볕에 잘 달궈진 넓은 돌에 누웠습니다. 소라게의 하루는 늘 똑같았습니다. 편안하게 누워 투명한 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죠. 소라게는 잘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움직이면 몸의 갑갑함과 간지러움이 더 크게 느껴졌거든요.
넓게 펼쳐진 바다는 평화로웠습니다. 이따금 커다란 파도가 소라게의 근처까지 와서 부서지곤 했죠. 하늘에서는 대형을 갖추고 날아가는 새들이 보였습니다. 새들은 멋지게 날개를 휘두르며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새들의 무리가 사라진 반대편에서도 새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대부분의 새들이 무리를 이루며 다니는데, 특이하게도 그 새는 혼자였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소라게는 그 새를 유심히 봤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하늘을 선회하던 새가 갑자기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란 소라게는 길쭉한 눈을 번쩍 떴습니다. 소라게가 봤던 새 중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새는 없었습니다. 한참이 지나도 새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소라게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때, 잠잠하던 바다가 크게 요동쳤습니다. 파도는 소라게와 물병을 잡아먹으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밀려왔습니다. 소라게는 놀라 껍질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튼튼한 집게로 소라껍질의 입구를 굳게 막았죠. 한바탕 요란한 소란이 지나갔습니다. 소라게는 슬쩍 집게를 치우고 눈을 내밀었습니다. 커다란 파도였지만 물병 안의 세계와 소라게는 안전했습니다. 소라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습니다.
콜록콜록. 어디선가 기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라게가 몸을 돌려서 보니 물병 옆에 흠뻑 젖은 하얀 새가 크게 기침하고 있었습니다. 아까 하늘에서 바다로 빠진 새가 틀림없었습니다. 하얀 새가 큰 파도에 같이 떠밀려왔습니다. 곧 정신을 차린 새는 젖었던 깃털을 부르르 털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습니다. 고개를 돌려 바다를 확인하고는 다시 그쪽으로 향했죠. 소라게는 그 하얀 새가 너무나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저기, 안녕!”
바다로 향하던 하얀 새는 멈춰서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곧 물병과 소라게를 발견했습니다.
“괜찮은 거야? 갑자기 하늘에서 바다로 떨어지던데.”
“거기서 다 보고 있었어? 부끄러운 걸.”
하얀 새는 씩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멀쩡해. 그냥 바다 속을 구경하고 싶었던 거야.”
“그렇구나. 나는 새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어.”
“모든 새가 그렇진 않아. 내가 좀 이상해. 기러기 무리에서도 다들 그렇다더라고.”
“넌 기러기구나. 난 소라게야. 네 이야기를 더 들려줘.”
소라게는 기러기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기러기는 소라게의 질문에 기분이 좋아 자신의 이야기를 재잘거렸습니다.
“나는 온갖 곳을 여행하는 철새 중에서도 여행을 좋아하기로 유명해.”
“그렇구나. 하늘을 나는 새들은 무리지어 다니던데 너는 왜 혼자 다니는 거야?”
“그게 이야기가 좀 긴데 말이지.”
“괜찮아. 오히려 더 듣고 싶어.”
“정말? 흠흠, 며칠 전에 말이지. 저 먼 동쪽 바다를 여행하다가 커다란 고래를 만났어. 고래에게 내가 여행한 곳을 자랑했는데 고래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은 바다라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들으니 바다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말이지. 혼자서라도 바다를 여행하기로 결심했어. 그러고 보니 너도 바다에서 왔겠구나. 어때, 바다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지?”
“난 바다를 멀리서 보기만 했어.”
“정말? 바다는 저기 바로 앞에 있잖아.”
“하지만 갈 수 없어. 내 앞에는 투명한 벽이 있거든.”
“내가 도와줄게.”
기러기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더니 부리로 톡톡 투명한 병을 쪼았습니다. 그때마다 물병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모래와 자갈들이 통통 튀어 올랐죠. 소라게는 겁에 질려 껍질 안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만!”
소라게가 소리쳤습니다. 기러기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습니다.
“그러지마. 난 여기가 좋아. 바다는 가고 싶지도 않다고.”
“그곳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
“그래도 여기에 있으면 안전해. 찬바람이 들어오지도 않고 파도에 휩쓸리지도 않아. 난 여기에 있을 거야.”
“아쉽네. 바다를 가보면 마음이 바뀔 텐데.”
기러기는 정말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총총 걸으며 바다로 향했습니다. 소라게는 조심히 몸을 빼고 바깥을 봤습니다. 어느새 바다에 다가간 기러기는 퐁당 빠졌습니다. 소라게는 기러기를 보며 왠지 모르게 가슴에서 더 큰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다시금 커다란 파도가 쳤고 기러기가 밀려왔습니다. 기러기는 재미있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즐거워?”
소라게가 물었습니다.
“엄청나. 하늘을 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야. 그동안 보지도 듣지도 못한 친구들이 많아. 하지만 아쉬워. 난 그냥 엿보는 정도인걸. 깊이 들어갈 수도 없고 그들과 말할 수도 없어.”
“그리고?”
“내 이야기가 궁금해?”
“응. 무척 재밌는걸.”
“다른 친구들은 내가 이야기하면 항상 재미없고 지루해했는데. 혹시 내 지난 여행들은 궁금하지 않아?”
“다 듣고 싶어!”
이후 소라게와 기러기는 한동안 같이 지내게 됐습니다. 소라게는 기러기의 여행담을 듣는 걸 좋아했고 기러기는 신이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말했죠. 어느덧 소라게는 기러기가 파도에 휩쓸려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기러기는 이야기 한보따리를 풀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늘에는 커다란 먹구름이 빽빽하고 바다도 크게 울렁였죠.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기러기는 기분 좋게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비를 처음 보는 소라게는 떨어지는 빗방울에 겁을 먹고 껍질 안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껍질이 있어서 다행이야. 소라게는 안도했습니다. 그러다 기러기가 걱정이 된 소라게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런 소라게를 보고 기러기는 까르르 웃었죠.
“이건 그냥 빗물이야. 겁먹지 마.”
소라게는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빗방울은 천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오기도 하고 물병을 때리며 경쾌한 소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소라게는 심장이 크게 쿵쿵 울리는 걸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빗방울이 소라게의 집게에 닿았습니다. 소라게는 깜짝 놀라 집게를 뒤로 뺐죠. 그런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소라게는 몸을 크게 빼서 내리는 비를 맞이했습니다.
“비를 맞고 있으면 기분 좋지 않아? 바다에 들어가면 이것보다 열배는 더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
소라게는 떨어지는 비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소라게는 기러기를 처음 만났던 밤을 떠올렸습니다. 그때의 밤하늘은 하늘의 달이 실눈을 뜨고 있었죠. 하지만 오늘밤 달은 눈을 크게 뜬 것처럼 크고 환했습니다. 평생을 여행했던 기러기도 처음 본다고 말했죠. 덕분에 밤이었지만 낮처럼 밝았습니다. 소라게는 바다를 봤습니다. 언제나 바다를 보며 지낸 소라게는 달이 커져갈수록 바다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렇게 커다란 달이 뜨면 내일은 바다가 코앞까지 가까워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소라게와 기러기는 제법 친해졌습니다. 소라게는 기러기가 해준 이야기들을 자신이 직접 여행한 것처럼 떠올릴 수 있었죠. 소라게는 이 일상이 계속 이어질 거라 믿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물병 속의 세계처럼 말이죠. 그러나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달을 보면서 자신의 날개를 크게 펼쳐본 기러기가 말했습니다.
“난 이제 떠날 거야.”
소라게는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어디로 갈 건데?”
“글쎄.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다면 나랑 여기에 계속 있으면 안 돼? 굳이 떠날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나는 여행이 너무 좋은 걸. 내 생각에 세상은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거 같아. 아직도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한참 남았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참기 힘들어.”
고마워. 덕분에 즐거웠어. 소라게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하고 기러기가 날개를 크게 펼치고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소라게는 기러기가 점점 작아지다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기러기는 앞으로도 수많은 곳을 여행하겠죠. 소라게는 온몸이 조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달이 너무 밝아서 낮일 때보다 바다가 더 잘 보였습니다. 늘 같은 풍경이었지만 소라게는 바다를 보기 힘들었습니다. 소라게는 소라껍질로 들어가 눈을 감았습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소라게는 꿈을 꿨습니다. 물병에서 벗어난 소라게는 파도를 타고 작은 섬을 오갔고 하늘에서 구름 사이를 여행했죠.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숨이 탁 막혔습니다. 소라게의 껍질은 점점 작아지더니 소라게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죠. 소라게는 비명을 지르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소라게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소라게는 아직도 자신이 꿈속에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온통 파란색인 주변이 풍경이 넘실댔거든요. 지금껏 본 적이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라게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바다였습니다. 어제 커다란 달이 떴기 때문에 바다는 이렇게 눈높이 까지 차올라 투명한 벽을 에워싼 것입니다.
소라게는 기러기가 말해주던 바다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바다의 돌들은 이곳과는 다르게 하나하나 알록달록해서 눈이 즐거웠습니다. 줄무늬 물고기들은 지느러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매혹적이었고 수면을 날카롭게 가르고 등장하는 햇빛은 또 얼마나 멋있었는지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풍경이 소라게를 압도했습니다. 소라게는 상상했습니다. 저 돌들을 기어오르고 물고기들과 대화하며 그들과 바다를 여행하는 자신의 모습을요. 그러다 무심코 소라게가 집게를 뻗어버렸습니다.
툭 하고 소라게의 집게는 투명한 벽에 막혔습니다. 그렇죠. 소라게와 세상 사이에는 언제나 투명한 벽이 있었습니다. 소라게는 투명한 벽을 똑바로 보았습니다. 소라게가 벽 너머가 아닌 투명한 벽 그 자체를 응시하자, 아름다운 풍경만을 보여주던 투명한 벽은 낯선 누군가를 보여주었습니다.
투명한 벽에는 소라게가 있었습니다. 소라게는 바다의 어떤 친구와 비교해도 초라했습니다. 집게는 작았고 껍질은 화려하지도 않았죠. 어찌나 부끄러운지 소라게는 제 모습을 마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투명한 벽은 마치 소라게에게 너는 바다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다그치는 것 같았죠.
소라게는 기러기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과연 저 바다는 얼마나 시원할까요. 문어 아저씨의 먹물은 밤하늘만큼이나 진할까요. 말미잘이라는 친구는 얼마나 까칠할까요. 새우의 등은 얼마나 휘어있을까요. 바다를 보던 소라게는 몸의 갑갑함과 간지러움 때문에 숨이 막혔습니다. 더 이상 바라보기 힘들었죠.
소라게는 껍질로 몸을 숨겼습니다. 껍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갑갑함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빗방울을 처음 맞았던 때처럼 심장이 크게 쿵쿵 거렸습니다. 과연 소라게는 이 갑갑함과 답답함을 참을 수 있을까요.

“아니. 나는 참을 수 없어. 더 넓은 세계로, 기러기가 말해줬던 바다로 가겠어.”

소라게가 크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투명한 벽 앞에 섰습니다. 집게발로 벽을 타고 오르려 하는데 소라껍질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소라게는 망설임 없이 작고 갑갑한 껍질을 벗어냈습니다. 그동안 껍질에 가려져 있던 가늘고 약한 몸이 드러났습니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일은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소라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걸요.

물병은 미끄러웠고 소라게는 몇 번이나 오르고 떨어졌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소라게가 벗어놓은 껍질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소라게는 다시금 바다에 대한 열정이 타올랐죠. 소라게가 물병의 작은 구멍을 빠져나온 건 다음 날의 아침이었습니다. 제일 처음 반겨준 것은 시원한 바람, 그리고 껍질에서 들었던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리였습니다. 소라게는 한참동안이나 그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소라게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기러기의 말대로 바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소라게는 바다로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