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는 오늘도 결국은 사람을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절대 이해하실 수 없으시겠지만.

아니 사실 저는 어머니께서 저를 이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같이 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일 때면 추악한 나의 모습이 퍽이나 더 드러나버리더군요.

육교에 올라가서 바라본 꽃의 색깔은 분홍색이었습니다.

육교 위에서 바라보는 그것들의 몸부림은 퍽이나 애처로워 보이더군요.

저는 끔찍하게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것을 보고

조금이나마 그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육교 위에서 저를 떼어내려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분홍색을 만드는 법을 아실련지 모르겠습니다.

흰색에 빨간색 조금을 섞으면 분홍색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분홍색을 다시 흰색에 조금 풀면 살색이 된다고 합니다.

분명 어머니가 바라보는 세상은 검정과 하양 둘 중 하나인 것이 확실합니다.

그대의 입에서는 제가 그리도 혐오스럽게 묘사되지 않던가요.

만약 이것이 사실이 아니어도 다음 문장은 사실임이 자명하겠지요.

세상은 검정색 혹은 흰색 아니면 다른 색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세상도 나보다 검정색이지 않다.

그대는 새하얀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저는 견딜 수가 없이 끔찍하더군요.

제가 본디 검정색으로 태어나서 그런 까닭일련지요.

그렇기에 제가 새하얀 이 세상을 한 번 물들여보려 합니다.

새하얗던 세상도 피가 적셔진 후에는 봄바람에 흩날리던 그 꽃들처럼 분홍빛을 띄겠지요.

그리고 그 분홍빛이 다시 새하얗던 세상에 묻혀갈 때쯤에는 조금은 인간의 색을 갖추겠지요.

어머니 저는 오늘도 결국은 사람을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허나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일도 마지막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마지막에 죽이는 존재가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닌 현재의 나일 것을 알기에

어느새 해가 진 채로 되어버린 달밤 속에서는 더 이상 난간을 잡은 채 걸어갈 수 없었습니다.

새까만 하늘을 핑계로 헛디딘 척 난간 밖을 디뎌버리는 것은 퍽이나 무서울 일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