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호프집 그녀에게 사귀자고 말한 소리를 들은 해희는 전화기 너머로 화가 난 목소리로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호프집 그녀는 나의 사귀자는 말과 내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에서 어느 여자의 목소리에 당황한 듯 보였다.

그녀의 시선이 계속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에 있어 종료버튼을 누르고, 자리에 앉았다.


방금 그녀에게 사귀자고 말한 상태여서 나 역시 긴장을 하고 있는 상태여서 테이블에 놓여진

내 소주잔에 들어 있던 소주를 한 번에 들이키고 다시 일어서서 호프집 그녀가 앉아

있던 옆으로 다가가 술김에 무릎을 꿇고 다시 말했다.


"이름이 뭔지도 모르겠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저랑 만나주세요.."


호프집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요?"

"네..."

"저 누군지도 모르면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만나면서 알아 갈게요.."


호프집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제가 누구냐 하면요..."


이 때 또 눈치 없이 휴대폰이 울렸고, 번호를 보니 해희였다.

통화 버튼만 누른 상태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으니 화가 난 해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지금 너거 집으로 갈 테니깐 빨리 와라!"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는 해희의 말에 나도 화가 나서 딱딱하게 말했다.


"나 지금 안 들어간다."


여전히 해희는 화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릴 테니 빨리 와라!!"


-네가?? 진짜 해희는 날 오빠라고..아니 사귀던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날 만났을까..-


해희의 막말에 목소리를 깔고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가고 싶을 때 갈 거니깐 기다리던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고, 통화하는 내 모습을 본 그녀가 왠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릎을 꿇은 체 그녀의 대답을 듣기 위해 다시 물었다.


"갑자기 만나서 이런 말해서 뭐한데...정말 잘 할 테니 저랑 만나줘요.."


주위의 다른 손님들이 나의 행동이 재미있는지 킥킥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호프집 그녀는 일어서서 나를 일으켜주며 사랑스럽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 앉아서 이야기해요.."

"네.."


그리고 그녀는 결심한 듯 약간의 뜸을 들이고 말했다.


"오빠를 만나는 건 좋은데요..저 사실 시은이에요.."

"시은?? 나 모르는데...누군지..."


시은이라고 말한 호프집 그녀는 빙긋 웃으며 다시 말했다.


"예전에 고등학교 때 오빠랑 동네 친구였던 지은이 언니 동생 시은이라고요..."


- 지은...지은.. 혹시 예전에 내가 만나던 그 지은이를 말하는 건가?? -


군대 가기 전에 잠시 만났었던 지은이라는 여자애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나랑 잠시 만났었고, 내가 군대를 가면서 헤어졌던 친구 같은 때로는 여자 같은 편했던 지은이라는

여자가 머리에 떠올랐다.



"지은이 동생이라면??"

"네...저예요,...시은이.."


내가 기억하는 지은이 동생은 통통하고 젖살이 많고 못 생겼던 기억인데,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녀가

그 지은이 동생이라고 생각되는 그 이미지와 전혀 맞지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시은이라는 여자는 너무 귀여웠기에 그 당시 내가 기억하는 얼굴과 쉽사리 매치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반말을 해야 할지 존댓말을 해야 할지 어색해졌다.


"많이 예뻐졌네...요??"

"오빠,,그냥 말 편히 하세요.."

"응...그럴까.."


떨떠름한 내 표정을 보며 시은이는 웃어 보이며 대답을 했다.


"네~ 오빠는 웃는 모습이랑 남자답게 말하는 게 너무 근사하거든요~"


내 기억에서는 시은이와 대화한 기억도 별로 없고 기억도 안 나는데 시은이라는 내 앞에 있는 여자애는

첨 볼 때부터 나를 알아봤던 것이었다.


"오빠 예전에 우리 집에 놀러오면 라면도 끊여주고 했었는데...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도 주고.."

"그랬었나??"

"기억이 안 나시져?"

"미안한데...기억이 안 나네.."

"그 때 오빠 되게 잘생겼는데....그래서 오빠 몰래 많이 좋아했었어요.."

"정말??"

"그거 때문에 언니랑도 많이 싸웠고..."


예전에 누가 날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오빠가 집으로 전화 오면 일부로 언니 없다고 말하고 안 바꿔주고 그랬었는데..."

"아... 그랬었구나...언니는 잘 있고?"


언니의 안부를 묻는 말에 시은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네...시집갔어요.."

"아...그렇구나...그런데 너 몰라보게 이뻐졌네?"

"그냥 쪼금...고쳤어요..."

"고쳐?? 뭘 고쳐??"

"그냥 성형 조금 했어요.."


-역시 한국은 성형대국이구나..이제는 거의 보편화가 되었나 보네..-


내 앞에 있는 시은이를 보며 여전히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답했다.


"아 그렇구나..."

"근데 오빠도 왜 이렇게 달라졌어요? 몰라 볼 뻔 했잖아요.."


몰라 봤다는 것은 내가 살이 너무나 쪄버렸기 때문이기에 괜히 심술이 났고 스스로가 작게 느껴졌다.



"오빠가 살이 많이 쪄서 보기 싫지..."

"살은 쪘지만...외모만 달라졌을 뿐 나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그 때랑 같은 사람이니깐여..괜찮아요."


여전히 시은이는 나를 호감 있게 보는 듯 했고, 그런 느낌이 전혀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괜히 옛 여친 여동생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아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까 내가 흥분해서 헛소리 했는데...이해해주라.."

"무슨 헛소리요???"

"오빠가 시은이랑 사귀자고 한 말 말이야.."


그녀가 얼굴이 빨갛게 변하면서 말했다.


"아니예요...오빠..그냥 저랑 만나요.."


나는 그냥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사귄다는 게 어떤 건지나 알고 말하는 거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시은이는 의자에서 일어서서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 얼굴을 내밀더니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시은이의 돌발 행동에 나는 놀래서 시은이를 쳐다보고 있었고, 시은이는 웃고 있었다.

어리둥절히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입을 맞추며 시은이가 말했다.


"오빠 저 그 때 그 중딩 아니랍니다..저두 성인이에요~"


내 입술이 입을 맞춘 시은이의 얼굴을 보니 괜히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

"네~ 이제 저도 성인이라니깐요~"


귀엽게 말하는 시은이를 보며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그래 성인끼리 술 한 잔 더 하자~"


시은이 잔에다가 술을 잔득 따라주니 시은이도 나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옛이야기 하면서 술을 몇 잔 더 마시다보니 시은이가 너무 취한 듯했다.


-진짜 시은이는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는구나..나 때문에 나에게 맞춰주기 위해 이렇게 마신건가..-


괜히 걱정과 염려가 되어 시은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시은이 많이 취했네..이제 그만 나가자.."


시은이도 자기가 취한 것을 아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약간 혀가 꼬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


계산을 하고 나올 때 시은이가 심하게 비틀거렸고, 넘어질 것 같아 뒤에서 시은이를 안았다.

흔히 말하는 백허그를 의도하지 않게 한 것 이었다.

백허그를 할 때 내 양손이 시은이의 가슴에 닿은 것 같아 손을 떼며 모른 척 말했다.


"괜찮어?"

"아뇨..안 괜찮아요.."


-이런 대답을 바란 게 아닌데..어떡해야하지..-


시은이는 뒤에 서있는 나에게 돌아서서 정면에서 안기며 여전히 혀가 꼬인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오빠 저두 아직 성당동에 사는데..집까지 업어주시면 안될까요?"

"업어 달라고??"



- 이 녀석이 취해서 제 정신이 아닌가?? 지금 여기서 집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 간만에 만나서 날 죽이려 하나..술 마신 사람 업는 게 얼마나 힘든데..-


내 생각을 읽은 표정으로 혀가 꼬인 시은이가 다시 말했다.


"저 보기보다 가벼워요~~히.."


-별로 가볍게 보이지는 않는데..-


하지만 여자가 업어 달라고 하는데 업어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남자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업혀.."


업히라는 말을 하고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녀는 앞으로 털썩 쓰러지며 업혔고, 무거웠다.


업힌 시은이는 내 목을 양손으로 감사며 내 귀에 살며시 말했다.


"오빠 저 가볍죠~히.."


-진정 네가 가볍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게 가벼운 거면 도대체 무거운 기준이 뭔데..-


하지만 생각이 나는 대로 말 할 수 없기에 입에서 나도 몰래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어???...응..가볍네..네가 등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런 빈말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하는 능력이 있구나..-


업혀있는 상태에서 시은이가 자꾸 미끌리 듯 내려 와서 시은이 엉덩이를 잡고 다시 등위로 밀쳐 고쳐 업으면서 말했다.


"진~~~짜 가볍네.. 가벼워..에구~"

"치~ 오빠 말하는 게 너무 얄미워~"

"사실 가볍진 않아~~~~"


웃으면서 장난치는 내가 재미있는지 시은이는 업혀 있는 상태에서 양손을 내 양 뺨에 가만히 대었다.

묘한 느낌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그리고 내 등에 업혀 있던 시은이가 내 등에 가만히 뺨을 대고 기대고 있었고 잘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진짜 꿈꾸는 거 같아요..지금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내 귀에는 엄청 크게 들렸다.

하지만 못 들은 척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은이를 업은 체 집으로 계속 걸어갔다.

한 5분여 걸었을 때 시은이는 내 오른쪽 귀에 살며시 말했다.


"아까 통화 했던 사람...애인...이죠?"

"응...."

"앞으로 저 만나실 거예요? 진짜로?"

"글쎄...."

"오빠가 진짜로 오빠였으면 좋겠다.."

"너 친오빠 있잖아.."

"그런 오빠 말고 좋아할 수 있는 오빠..."


이렇게 그녀가 술주정 비슷하게 할 때 거의 집 부근으로 다다랐고, 저 멀리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쳐다보니 해희의 모습이 보였다.


해희는 진짜로 우리 동네에 온 것이었다.


-어..우리 집은 뒤쪽인데 해희가 왜 저 앞에 서 있을까..?-


해희는 아까 통화 후 나를 찾는다고 동네 여기저기 다니다가 나를 발견 했던 것 같았다.

해희는 시은이를 업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어두워서 내가 맞는지 아닌지 확인을 하려는지

내가 있는 방향으로 한 동안 쳐다보다가 내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에게 걸어왔다.


"야!! 지금 뭐하는 거야!!"


업혀있는 시은이를 보고서는 그녀가 흥분을 했는지 조용한 동네가 떠내려 갈 정도로 크게 외쳤다.

시은이도 해희를 보고는 놀란 듯 내 등 뒤에서 황급히 내렸다.


그리고 해희는 자기 것을 빼앗긴 억울한 사람의 표정을 하고는 시은이에게 사납게 달려들었다.

시은이에게 달려드는 해희의 팔을 막아서며 말했다.


"해희야!! 쫌!! 그만 좀 해!!"


시은이는 겁을 먹은 듯 내 등 뒤에 숨어 있었고, 해희는 여전히 시은이의 머리채라도 잡을 듯 손을

사납게 내밀었다.


내가 가까스로 말리며 시은이에게서 떼어내자 해희는 울기 시작했다.


"요즘 왜 이래??...내 말이면 껌뻑하던 오빠가...왜 말을 안 들어!!!"


나를 사랑해서 배신당했다고 우는 것 같진 않았다.

아마도 자기 어장에서 벗어나려 하니 속상해서 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매몰차게 말했다.


"너 나 사랑하지 않는다며.."

"내가 언제!!"

"며칠 전 내가 나 사랑하는 거 맞냐고.. 물었잖어!"

"그걸 말을 해야 알어!!!"

"말을 안하는데 어떻게 아냐~! 맨날 다른 남자 만나고 ...만날 때는 연락도 안 되고.."

"그래서 지금 복수 하는 거야???"

"복수는 무슨...나도 속상해서 그런다!! 맨날 돼지라 놀리고..."


그녀도 자존심이 상했는지 나에게 말했다.


"그래!! 이제 우리 그만하자! 앞으로 절대 나에게 연락하지마!"

"그 말도 너한테 수십 번은 더 들었다!"

"진짜로 연락하지마 돼지새끼야!!"

"자꾸 돼지돼지 그러지 마라!!

"그럼 살을 빼던가!!미친 돼지 새끼!!"


자꾸 돼지라는 말과 여전히 막하는 말에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 살 빼고 만다!! 너 같은 년한테 돼지라는 소리 안 들으려고 살 빼고 만다!!"


화가 난 내 표정과 외침에 시은이는 내 뒤에서 한 걸음 떨어져 서 있었고, 그런 시은이의 왼 손목을

잡아끌며 해희의 옆을 지나갔다.

해희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고, 한참 걸어서 뒤를 봤을 때도

해희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서 있는 그녀의 어깨가 심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슬퍼서가 아닌 자존심이 상해서 그리고 너무나도 분해서 떨리는 어깨처럼 보였다.


같이 그 모습을 보던 시은이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오빠..오빠가 지금보다 더 뚱뚱해져도 좋아할 것 같애..그러니 살 안 빼도 돼.."


심란해 있는 나에게 살 빼니 마니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시은이에게도 괜히 짜증이 나서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아니 뺄 거야...나도 살 빼고 남들처럼 예쁜 옷 입고 여기저기 놀러 다닐 거란 말이야.."


내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던 시은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오빠...내가 말실수 했나보네.."

"아니 시은이는 실수 한 거 없어..내가 그 동안 너무 한심했던 것 같아.."

내 말을 들은 시은이는 아무 말도 없었고,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시은이를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누워서 생각해보니 그 동안 내가 너무 한심하게 살아왔던 것 같은 기분에 너무 화가 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며칠 사이에 해희와 불화, 뜬금없는 옛 여친의 여동생, 그리고 다이어트 결심 등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


-그래 1년 동안 잠수 타고 살만 줄기차게 빼보자!!-


4부 끝